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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Apr 19. 2022

[계발] 행동 패턴을 만드는 방법

게으른 뇌에 행동 스위치를 켜라 독후감

 언제나 본질은 간단하다. '행동'. 그것이 전부다. 자기계발서의 좋은 내용들도 모두 그렇다. '행동'. 그것이 전부다. 언젠가 누군가가 물었던 적이 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날 수 있는 법은 무엇인가요?' 그는 아무리 알람시계를 여러 개 맞춰도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이런 늦잠의 버릇이 '질환'이나 '병'에 기원한 것이 아니라면 '일찍 일어나는 법' 따위는 없다. '그냥 일찍 일어나는 것'이 전부다. 100도의 끓는 물에 손이 닿았다고 해보자. 여기에 손을 빼는 법은 무엇일까. 그렇다. 그냥 빼는 것이다. '하긴 해야하는 데...' 싶은 일을 하는 법은 원래 그렇다. 그냥 하는 수 밖에 없다. 알람소리를 못듣는 누군가도 옆에 폭탄이 터진다면 틀림없이 일어난다. 이른 시간에 일어날 경우 100억을 준다고 약속하면 일어날 것이다. 결국 이것은 '방법'의 문제가 아니다. '행동력'과 '의식'의 차이다. 예전 '5초의 법칙'이라는 책을 읽었던 적이 있다. 방법은 간단하다. 그저 무언가 해야겠다고 여긴다면 그 어떤 생각도 접어두고 카운트 다운을 센다는 것이다. 그리고 '0'이 되는 순간, 그냥 실행한다. 즉, 5... 4... 3... 2...1 '실행', 그것이 전부다. 대부분 '실행'을 하지 않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을 들여다보면 그저 습관처럼 당연하게 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여러 생각을 한다. '공부가 잘 되는 시간대', '인간의 집중력은 최대 몇 분', '두뇌회전에 좋은 음식', '뇌 활성화를 위한 최소한의 휴식시간'. 이를 바탕하는 여러 논문과 실험 결과가 있기에 그들의 변명은 과학적 근거를 갖는다. 다이어트의 경우에도 비슷하다. '먹어도 되는 음식', '먹어도 되는 시간대', '스트레스가 더 비만에 안좋다는 심리적인 요인들'. 이 또한 여러 과학적 근거를 갖고 있다. 이런 과학적 근거는 '하지 말아야 할 좋은 근거가 된다.

 두 번 말해도, 세 번 말해도, 행동할 수 있는 법은 '그냥' 행동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도 여러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 이 중에도 굉장히 괜찮은 방법이 꽤 있다. 가령 '첫 걸음이 힘들 때는 10초만 움직여본다'가 그렇다.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일을 그만두고 설령 그것이 해야 할 일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실제의 몸을 움직여 보는 것이다. 이는 일리가 있다. 굉장히 추운 겨울에는 따뜻한 이불 밖으로 꼼짝도 하기 싫다. 그런 날에도 해야 할 일들이 있고 머리로는 몇 번이나 일어나야지 하면서 일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우리가 움직이지 않는 이유는 앞서 말한 것처럼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리는 원래 '불필요한 위험'보다는 '안전'하고 '편안한 상태'를 선호하도록 유전적으로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즉, 가만히 있는 일이 더 위험한 상황이라는 판단이 들어서는 경우, 우리는 무조건 움직인다. 이 유전적 디폴트값을 거스르기 위해서는 분명 일단, 움직여 더이상 안전하고 편한 위치가 아니라는 사실을 뇌와 몸에 일러줘야 한다. 우리 인간은 원래 '지구력'의 동물이다. 지구상 그 어떤 종의 동물보다 지구력에서는 월등하다. 그 것을 반증하듯 우리는 포유류 중에서 희안하게 '털'이 없다. 털이 없으니 땀이 배출되고 금새 증발한다. 땀이 증발하면서 체온을 함께 앗아가면 피부표면은 빠르게 냉각된다. 이런 지구력의 동물이 점차 산업화를 겪으면서 움직이지 않는 쪽으로 변화해 오고 있다. 사실상 생존과 위협에서 '지구력'이 강한 무기였던 시기는 지나갔고 우리는 역시나 다른 포식자의 눈에 띄지 않아야 오래 생존하는 방식으로 변해가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무늘보' 또한 비슷한 진화의 과정을 겪었다. 나무 늘보는 덜 움직이는 방식으로 생존하여 왔으나, 환경이 급격하게 바뀌면서 멸종위기를 맞이했다. 반대로 인간의 경우에는 민첩하고 높은 지구력을 바탕으로 부지런히 환경에 적응해 왔다. 

지난 환경에 최적화 된 종이 다음 환경에 멸종하는 상황은 인간을 보더라도 이처럼 도돌이표처럼 돌아온다. 나또한 행동이 망설여질 때 사용하는 몇가지 방법이 있다. 이 방법은 나와 같이 '게으르고 수동적인 사람'에게 잘 어울리는 방법인 것 같다. 스스로 나는 '굉장히 수동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다수의 사람들 사이에서 주도적으로 리드하지 않는 쪽을 선택한다. 그런 스스로의 성향을 잘 파악해서 보기에 가장 확실한 나를 움직이는 방법은 바로 '내가 움직여야만 하는 상황을 스스로 설정하는 것'이다. 가령, 환불이 되지 않는 티케팅을 해버리거나, 약속을 지켜야만 하는 누군가에게 다음과 같이 확언을 하는 것이 그렇다. "너 내가 하나, 못하나 봐바. 나는 원래 한다면 하는 사람이야!!!" 혹은 인터넷에 거부할 수 없는 공약을 걸어 버리는 것 또한 그렇다. 예전 나는 오전 6시에 맞춰진 알람시계를 6시 2분, 6시 5분, 6시 7분으로 조금씩 늘리며 더 잠을 잤던 기억이 있다. 늘어져 있는 신체와 머리속에서도 그 짧은 순간 엄청난 회전력을 발휘하여 준비 시간과 이동시간을 계산하고 조금 더 자도 좋다는 계산을 한다. 편하게 자지도 못하면서 그처럼 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 이유는 당연하다. 원래 '자연'에는 '몇 시에 일어나야지?' 하는 관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대게 자연에는 눈부신 햇볕에 눈이 떠지거나 포식자의 위협에 눈이 떠질 뿐이다. 스스로 자신의 수면시간을 의무에 의해 조절하는 것은 인간이 유일하다. 즉, '거부할 수 없는 어떤 현상'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생체 리듬이 그렇다. 혹은 창이 있는 방에 침실을 두는 것도 방법이다. 예전 학창시절에 굉장히 독한 우등생이 있었다. 그녀는 부모님과 따로 떨어져 자취를 하고 있었는데 부모님께 자취방 TV 때문에 공부가 되지 않는다고 몇 번을 이야기 했던 모양이다. 그녀의 부모님은 그녀에게 말했다. "의지력의 문제지, 네가 보지 않겠다고 다짐하면 TV가 있던 없던 보지 않으면 된다!" 그러나 그녀는 얼마 뒤 그 TV의 브라운관을 장도리를 가지고 깨버렸다.

 굳이 불필요한 '의지력' 테스트는 할 필요가 없다. 내가 일어날 수 있는 의지를 가졌는지, 가지지 못했는지를 굳이 테스트 할 필요가 없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과 현실을 만들어 간다면 우리는 시키지 않더라도 의무감에 찌들어 살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해야 할 일들을 할 수 있게 된다. 사실상 그 밖에 좋은 말들은 많다. 그러나 앞서 말한대로 '행동'하지 않은 지식은 가치 없는 '지식'일 뿐이다. 나의 책인 '유대인의 하루는 저녁 6시에 시작된다'에서도 언급했지만 '행동'은 거의 모든 것이며 그것이 전부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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