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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Apr 20. 2022

[철학] 진리는 하나다

하나님 부처님 알라를 만나는 방법 독후감

 '연필'은 영어로 '펜슬(pencil)이라고 부른다. 일본어로는 '엔삐츠(鉛筆)'라고 한다. 중국어로는 '치엔비(铅笔)',  프랑스어로는 '크래용(crayon), 베트남어로는 '비엣(viết)'이라고 부른다. 세계 여행을 하며 연필 한 자루 가지고 다닌다면 사람들은 그것을 각자 다르게 부른다. 그러나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어떻게 부르는지, 어떻게 사용되는지, 가격이나 사용법, 판매루트, 디자인이 약간씩 달라질 수는 있지만 본질은 같다. 만약 연필이라고 부르는 것을 "'지우개'다."라고 말한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연필을 펜슬(pencil)이나 '비엣(viết)'이라고 부른다면 결국 같은 것을 부르고 있는 것이다. 나에게 '연필'은 분명, '연필'이 맞다. 다만 누군가에게 펜슬(pencil)이기도 하다. 이 둘은 둘다 맞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한복음 8장 31절"

본질은 '성경'에서 '진리'라고 표현되어 있다. '진리'를 아는 것을 불경에서는 '깨달음'이라 정의한다. 결국 진리를 안다는 것은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해탈'을 의미한다. 다른 말로 바꿔 말하자면 요한복음 8장 31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깨달음을 얻고 '해탈'의 길을 가라는 불경의 말과 다르지 않다. 동양 철학에서 '진리'는 '도'를 의미한다. 도를 아는 것을 '덕'이라 한다. 즉, 도덕경에서 도와 덕은 진리를 알고 깨달아 자유케 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성경에서 말하는 '죄'는 불경에서 '업'이라 부른다. '죄'를 씻어내는 회개는 불경에서 '업장소멸'을 의미한다. 천지만물을 창조한 유일신은 보기에 따라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 다만, 그것을 말하기에 따라, '하느님, 하나님, 야훼, 부처님, 알라, 한얼님' 등이 된다.

 창조주는 바람이기도 하고 별이기도하고 물이기도 하고 땅이기도 하고 나무이기도 하다. 예수이기도 하고 하나님이기도 하고 성령님이기도 하고 나 스스로이기도 하다. 삼위일체이기도 하며 삼라만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전체를 포괄하는 이름을 '도'나 '자연'이라 부르기도 하고 '신'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나'라고 부르기도 한다. 불상은 불상일 뿐이며, 십자가는 십자가일 뿐이다. 나무를 깎아 만든 모형물에 지나지 않으며 믿기에 따라 돌덩이가 부처가 되기도 하고 하나님이 되기도 하며 예수나 알라가 되기도 한다.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 이 포괄적인 존재의 흐름을 파악해야하며 전체를 아우르는 하나의 '본질'을 깨치면 '괴로움', '슬픔', '과업' 등에서 자유로워진다. 이처럼 모든 것이 사람의 마음 속에 있음으로 스스로 만들어낸 왜곡된 시선을 알아차리면 '행복'이나 '사랑', '감사'의 마음에 조금 더 가까워지니, 그런 상태를 '열반'이라 부르며 열반에 다다르게 되면 불교에서는 극락에 다다르고, 기독교나 천주교에서는 천국에 다다른다. 이를 깨치지 못하고 언제나 괴로움에 휩싸여 방해자(사탄, 마구니)의 방해에 의해 감정적으로 왜곡된 시선을 갖게 되면, 괴로움과 미움, 고통의 마음에 다다르니, 이를 '지옥'이라 부른다. 사람은 자신이 전에 쌓아만든 실수나 잘못(업)을 누구나 갖고 있고, 과거의 잘못된 반복을 통해 습(관습, 습관)을 형성하니, 이것이 '미래'와 '현재'를 고통에 이르게 한다. 이 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본질'을 파악해야 하는데, 이를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 부르기도 하고, '수행'이라 부르기도 한다. 극단적인 예로 쓰이는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은 단순한 종교 압력이 아니라, 그것이 갖고 있는 의미가 조금더 깊게 봐야 한다.

 누구나 어떤 일을 맞이하기에 '순리'가 존재하고 '방해'가 존재한다. 공부를 하고자 책을 펴면 몇 분이 지나지 않고 머릿속 방해꾼이 나의 이곳 저곳을 떠돌며 집중을 방해하는데, 이런 마음속 방해를 '사탄'이라 부르기도 하고 '번뇌'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것을 깨끗하게 수행하여 갈고 닦기 위해서는 순리를 깨닫고 질문하고 답하는 일을 스스로 반복하고 시각에 의해 들어오는 정보를 차단하고 나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데, 이때 들려오는 목소리가 '하나님의 음성'이기도 하고, 무의식의 자아 이기도 하며, 깨달음이라고 한다. 이런 행위를 부르는 이름에 '기도'나 '명상', '수행'이라는 이름이 불려진다. 태초에 창조주께오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자신의 모습과 닮아 있게 만들었던 이유는 우리가 곧 자연과 다르지 않고 자연이 곧 우리와 다르지 않고 나무와 내가, 상대와 내가 모두 다르지 않은 하나라는 것에서 우리의 모습이 '절대자'와 다르지 않음을 이야기 한다. 주의 곁에서 영생할 수 있는 '하나님의 나라' 또한 생물학적 죽음이 나니라, 영적 죽음이 사라짐을 이야기 한다. 사람에게는 '정'과 '신'이 있고, '영'과 '혼'이 있는데 육체적 수명의 다함을 초월한 영과 혼의 영생을 이야기 한다. 사랑하고 감사하고 깨어 있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고 업과 습과 몸은 과거의 나를 지속하게 하니, 그것을 벗어나야 한다. 절대주는 믿는자에게만 존재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하며 가짜에게는 없고 진짜에게만 있으며, 완성된자는 종말하지 않고, 완성되지 않는 자는 종말하니 그 끝을 '심판의 날'이나 '아마겟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연필은 연필이기도 하지만 그 모습과 생김새가 다를 수 있어도 문화나 지역에 따라 언어에 따라 다르게 생기거나 부르기도 하지만 결국 모든 본질은 하나이며, 그것은 나이기도 하고 만물이기도 하며 존재이기도 하고 무존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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