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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Apr 25. 2022

[환경] 소는 죄가 없다_소고기를 위한 변론


 업계 평균 소 한마리당 고기 약 215kg이 나온다. 닭은 한 마리당 1.8kg이고 이중 70%가 고기다. 즉 소 한마리를 죽이고 생기는 고기의 양을 위해, 닭은 150마리를 죽여야 한다. 윤리적으로 '소고기'만을 비난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하다. 급작스럽게 부양할 인구가 증가했기 때문에 가축의 수가 늘었을 것 같지만, 지구에 있는 가축의 수는 오늘날이나 100년 전이나 비슷하다. 적색육과 동물성 지방의 소비도 줄었다. 인류의 비만에 대해서는 '적색육'이 아니라, '설탕'이나 '가공식품'이 훨씬 더 영향이 크다. 소들은 지구의 광활한 대지를 무차별적으로 초토화하고 훼손할 것 같지만 실제 방목은 녹지화에 기여하는 부분도 적지 않다. 소를 이야기 할 때, 이산화탄소나 메탄, 이산화질소를 언급한다. 기후변화에 목축업이 커다란 영향이 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이산화탄소배출량(미국기준 전체 58%)은 개인 차량에서 발생한다. 또한 브라질의 열대우림을 파괴하고 목축을 한다는 생각도 잘못됐다. 열대우림이 파괴된 자리는 초원이 아니라 밭으로 변했고 마트그루수주는 대략 70%가 대두즐 재배한다. 대두는 돼지의 사료로 사용된다. 또한 20세기 후반에 인간이 유발한 메탄의 전세계 총량중 29%는 논농사가 야기 했다. 현재도 전세계 메탄 배출의 대략 10%가 쌀 농사가 야기한다. 즉, 윤리적인 이유에서, 환경적인 측면에서 '적색육'을 먹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시장주의로 보기에 인간의 대부분의 것들은 오묘한 흔들림을 겪으며 균형을 찾는다. 사람들은 '중론'에 '시장'이 움직인다고 생각하지만 '투자자'들은 이미 '규모'가 아니라 '성장 가능성'에 투자를 한다. 즉 자본이 '환경'에 투자하는 것은 '성장 가능성'에 있지 '규모'나 '중론'에 있지 않다.



 얼마 전, '빌 게이츠'의 '기후 재앙을 피하는 법'을 읽었던 적이 있다. 다독가답게 훌륭한 책임에는 틀림없다. 다만 다른 기사를 보자면 빌게이츠가 만든 민관 합적펀드가 미국과 유로, 영국의 청정기슬 프로젝트에 18조원을 투자했다고 한다. 일론머스크라는 세계 최대 부자는 '친환경 자동차'를 만들고 그 밖에 대부분의 '자본'은 '친환경 기술'에 집중 투자한다. '그들의 선의'를 깍아 내리는 것은 아니지만 자본은 '기성 산업'에서 '성장 동력있는 신산업'으로 이동할 뿐이다. 기후와 환경을 위하는 자본 중에는 태평양의 플라스틱 쓰레기섬의 쓰레기를 매입하거나 궤도권의 우주 쓰레기를 수거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 자본은 성장과 비전에 움직일 뿐, '지구'와 '환경'을 위하는 이타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사실이다. 성장동력이 있다는 것은 '산업 주류'가 아닌 '비주류'다. 즉 인간의 식문화의 주류인 '적색육'에 대한 위기가 '홍보'되면 성장동력있는 산업 블루오션은 꿈틀거린다. 유튜브를 보면 어렵지 않게 '채식'을 독려하는 영상을 보게 된다. 가령 병아리감별사가 병아리의 성별을 감별하고 그자리에서 숫병아리를 분쇄기로 던져 넣어 갈아버리는 영상이라던가, 제조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내듯 움직이는 컨베이어벨트에 돼지를 올려놓고 자동 도축하는 공장도 그렇다. 인간이 얼마나 잔혹한지에 대해 알리려는 동영상을 보면서 끔찍했지만 아이러니하게 나는 그날 저녁에도 친구와 삼겹살을 먹었다. 불필요하고 과도한 살육은 마땅히 피해야 한다. 다만 생물학적으로 피치못할 일에 대해 윤리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 또한 맞는지 모르겠다. 맹수의 왕 호랑이는 초식을 하지 않는다. 무조건 육식만 하며 사냥감에 올라타서 물고 뜯고 찢어버린다. 한 생명을 통채로 죽였음에도 한 끼에 배가 부르면 더이상 먹지 않고 자리를 떠버린다. 그렇다고 호랑이에게 윤리적인 잣대를 들이 대지 않는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생명'은 고귀하다. 그러나 우리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선 다른 '생명'의 '생명'을 앗아가지 않는 방법말고는 없다. 생물은 '섭취'를 통해 생명의 에너지를 지속시킨다. 즉 내가 살아있음은 어떤 누군가의 '생명' 위에 지속된다는 것이다. 동양에서 특히 '불교'에서는 이를 두고 생명을 함부로 앗아가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이를 언급했더 붓다 또한 육식을 피하지 않았다. 간혹 '원죄'를 말하는 '성경'의 이야기를 거북하게 여기는 이들이 많다. 다만 '성경'의 말씀도 '불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왜 죄없는 사람을 죄인으로 만드냐'는 질문에 '성경'은 대답한다. 우리는 피치못하게 어떤 생명을 '죽이며' 생명을 영위한다. 그것에 특별하게 감사해야하고 자신의 삶에 책임 의식도 가져야 한다. 축산업이 마치 환경을 파괴하는 죄업이고 비윤리적인 산업이라는 프레임은 사실상 모두 틀렸다고 할 수도, 모두 맞다고 할 수도 없다. 사실 축산업은 앞에서 말한 내용 외로 환경에 피해를 주고 있는 부분도 분명하게 있으며 비윤리적인 부부도 분명하게 있다. 특별히 소고기를 키우는 것이 기후변화에 극적인 영향을 줬고 물과 지구 생태계를 오염시키고 건강에 치명적이라고 하기에, '소'는 단순 '고기'뿐만 아니라 '뼈', '우유', '가죽', 농업보조, 이동 수단 등으로 특별하게 활용된다. 특히나 가난한 나라에서 이에 대한 의존도가 훨씬 높다는 것을 봤을 때, 인류에게 중요한 동물이다. 책은 변호사이자 작가이자 농업인인 '니콜렛 한 키먼'의 글이다. 두꺼운 책에 역시나 묵직한 무게로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롭게 '소고기에 대한 변론'을 펼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얼마나 진실이며 선동과 조작에 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운지 깨달아야한다. 물론 이 책이 말하는 모든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또한 특히나 경계해야 할 것이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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