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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Apr 26. 2022

[인문] 수학은 어떻게 수학이 됐나

교실 밖으로 꺼낸 수학이 보이는 세계사 독후감

 '110÷11=?' 굉장히 쉬울 것 같은 이 문제는 사실 쉽지 않다.  'One hundred and ten divided by eleven' 실질적으로 영어는 12진법을 사용한다. 11을 'ten-one'이라고 하지 않고 'eleven'이라고 하며 12를 'ten-two'라고 하지 않고 'twelve'라고 새로운 단어가 있기 때문에 빠른 연산에 '언어'가 장애가 된다. 한자도 마찬가지다. '百十除以十一' 한자에서는 다행이 10진법을 사용할 수 있지만 '百十(백십)'이라는 표기에 1의 자리는 생략되어 있다. 때문에 연산히 수월치 못하다. 1~9까지 숫자가 나열되다가 10번째의 순서에 '0'으로 자리를 대체하고 앞자리 숫자를 올리는 계산법은 '인도'에서 처음 발견됐다. 실제로 '인도'의 이런 발견은 인간 문명의 획기적인 발명품 중 하나다. '없다'는 '0'의 발견은 다른 숫자들과 함께 인도에 거래를 하러 온 아라비아인들에게 전파된다. 이들은 획기적인 '0'을 받아들이고 사용한다. 그리고 그것이 유럽으로 전파되어 '아라비아 숫자'가 된다. 언어의 능력 때문에 동양인은 서양인에 비해 '빠른 연산능력'을 갖게 됐다. 다만 더 합리적으로 고민하는 사고력의 부재로 사실상 수학은 '서양'에서 더 발달하게 됐다. 숫자를 가지고 하는 학문이라는 생각과 다르게 수학은 '숫자'보다 더 중요한 것이 '생각하는 학문'이라는 것이다. 다음은 2022년 수학 영역 문제 중 하나다.

 '두 상수 a, b(1<a<b)에 대하여 좌표평면 위의 두 점 (a, log2a), (b, log2b)를 지나는 직선의 y절편과 두 점 (a, log4a), (b, log4b)를 지나는 직선의 y절편이 같다. 함수 f(x)=a^bx+b^ax에 대하여 f(1)=40일 때, f(2)의 값은?'

이 문제에 숫자라고는 10번도 나오지 않는다. 이 문제의 정답은 '800'이다. 어린시절 생각해보면 '퀴즈'놀이를 좋아했던 것 같다. 그런 퀴즈 중에는 아이러니하게 수학문제도 있었다. 다만 어느 순간부터 수학을 평가하고 비교하는 '과목'이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부터 '수학'이 어렵고 싫어지기 시작한다. 대학만 입학하면 쓸데없어진다고 말하지만 사실 수학은 몹시나 '쓸데있다.' 나폴레옹부터 세종대왕까지 수학을 가까이 했던 인물들은 어쩐지 성공적인 해답을 찾는데 익숙한듯 하다.

 '좋은 말은 하루에 240리를 달리고, 둔한 말은 하루에 150리를 달린다. 둔한 말이 12일을 먼저 달려갔을 때, 좋은 말이 달리기 시작한 지 며칠만에 둔한 말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

이는 1299년 원나라 시대 쓰여진 '주세걸'의 '산학계몽'이라는 수학책에 실린 문제다. 이 책을 이용해 세종대왕은 수학을 공부했다. 어쩐지 몰라도 되지만 실생활에 안다면 남들보다 수월한 해답을 알 수 있을 것 같은 이 문제는 '방정식'을 이용한 문제였다. '240x=15(x+12)' 아라비아 숫자와 사칙연산 기호가 없었다면 언어로 길게 풀어야 할 이런 '문제'는 사실 점차 간편하고 쉬운 기호로 바뀌게 된다. 수학은 공허한 하늘 위에 떠있는 별의 위치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저 산 꼭대기를 기준으로 한뼘을 위로 올려서 좌측으로 두 뼘을 이동한 위치'라고 설명하기 어려운 이 언어를 '데카르트'는 '좌표'를 통해 설명할 수 있게 했다. 좌로 긴 축과 세로 긴 축을 평면 위에 긋고 거기에 눈금을 그어 별의 위치와 이동을 쉽게 설명할 수 있게 했다. 멈춰 있는 좌표 평면에 '시간'이라는 관념을 도입하여 그 운동을 확인할 수 있게 한 '미분'도 사실 우리가 몰랐다면 지금과 같은 문명생활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이 '수학은 국력이다'라고 말했던 이유도 분명 여기에 있다 그는 직접 길이를 재어보지 않아도 강의 폭을 계산했고 워털루 전투에 지고 난 뒤, 유배를 가는 길에서도 수학문제를 풀었다.

 머리가 지끈지끈 거리는 수학문제는 사실 굉장한 사고력을 요한다. 어린시절 어머니는 내가 손가락이 아프다면 오른쪽 허벅지를 꼬집으셨다. 더 큰 고통이 있으면 작은 고통은 잊여진다고 했던 어머니의 말처럼 사람은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처리하지 못한다. 더구나 수학과 같은 깊은 사고력을 요하는 경우는 그렇다. 고로 학창시절 '수학'은 아이러니하게도 '음악'을 들으면서 공부를 해도 되는 유일한 과목이기도 했다. 수학문제를 풀다보면 세상사 어렵다는 복잡한 문제가 잊혀진다. 자신을 둘러 싼 정치적 고통을 잊고자 마방진에 몰두했던 '세종'의 어린 시절처럼, 무언가를 잊기 위해 더 골똘하게 고민하는 무언가가 필요하기도 하다. 대뜸 문제나 잔뜩 던져주고 보는 여러 수학 문제집들보다 해답을 알려주는 듯한 이런 인문서적에서 더 수학에 매력이 느껴진다. 몇 해 전, 앞으로의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어떤 사고가 중요한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책을 읽었던 적이 있다. 앞으로의 세계는 '답을 찾는 이'보다 '문제를 제기하는 이'에 대해 더 큰 평가가 있을 거라고 적혀 있었다. 답을 찾고자 하는 이들은 많으나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이 적어지는 시대에 아직도 누군가 잔뜩 내어놓은 문제지에 정답만 찾는 것이 수학교육의 최선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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