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용사구', '명사절', '부정관사', '불가산 명사' 등등. 영어를 공부하는데 왜 이렇게 쓸 데 없는 한자어가 많이 나오는지....... 대한민국에서 영어라는 산을 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넘어야 할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영어단어'가 아니라 '한자단어'들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우리는 영어를 공부하기 위해 한자를 공부하는 기가 막힌 상황에 놓여 있는 걸까? 가만히 보자면 이런 한국어 혹은 한자어를 상세하게 설명하는 것을 간단하게 생략하고 문법을 가르치기 때문에 영어는 혼자 공부하기 막막한 학문이 되어버렸다. 어려운 문법을 정복하면 무언가 공부했다는 마음을 한 가득 품고 잠에 들 수 있는 것처럼 문법은 넘기 어려운 산처럼 느껴지지만, 따지고 보자면 굳이 넘어야 할 산인지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그럼 우리나라에서 영어는 언제부터 시작한 걸까? 고종 19년, 1882년 조선과 미국이 조약을 체결한다. 국교와 통상을 목적으로 한 이 조약은 '조미수호통상조약'이라고 부른다. 역시나 영어를 공부에 불필요한 한자를 피하기 위해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은 아쉽게도 한자를 피한 대신에 '근현대 역사'를 접하게 되었다. 하지만 별 수 없다. 따지고 들지 않는다면 해결되지 않는 의문을 가지고 겉할기식으로만 진행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앞서 말한 '조미수호통상조약'에서 조선은 난감한 상황에 처해진다.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청나라 관리의 통역을 통해 조약을 맺었던 무능을 설명하기 위해선 19세기를 시작하는 시기에 교체된 조선의 '왕조'이야기부터 해야 한다. 조선의 마지막 부흥기를 이끌었던 정조대왕이 승하하고 그의 후궁이었던 수빈 박 씨와 정조 사이에 태어난 순조가 11살의 매우 어린 나이에 조선의 왕이 된다. 사실 이 것이 500년 조선역사 비극의 시작인 샘이다. 너무 어린 나이에 순조가 왕이 되면서 60여 년간 안동 김 씨의 세도 정치가 시작된다.
23대 순조는 11세, 24대 헌종 8세, 25대 강화도령이라고 불려지는 강화도에 거주하던 철종이 난데없이 즉위한다. 그리고 26대 조선의 왕인 고종이 12세의 나이에 즉위한다. 지금으로 치자면 초등학교 4학년, 초등학교 1학년이 대통령직을 맡다가 난데없이 강화도에 거주하는 아무개에게 직무를 수행하고 다시 초등학교 5학년에게 대한민국 대통령직을 맡기는 꼴이다. 당연히 왕의 나 이거 어리기 때문에 왕의 어머니인 '외척 세력'의 힘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조선이 국가의 제도와 시스템이 무너지고 한 특정 가문이 국가 권력을 좌지우지하면서 운영이 불가능한 상태로 까지 무너 저 내렸다. 이런 망국의 끝에서 제대로 된 외교기능이 작동할리 만무했다.
미국과 외교 조약을 체결하면서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어, 청나라 관리의 통역으로 조약을 맺었던 무능의 국가의 말로는 비참했다. 1882년 5월 22일 제물포에서 조선의 전권대신인 신헌과 미국의 전권공사인 슈펠트 간의 조약 체결을 하게 되는데 이 조약이 조선이 서양과 맺은 최초의 조약이다. 사실 그보다 28년이나 앞서 일본은 서양과 맺은 최초의 조약인 '미일 화친 조약'을 맺혔다. 미국과 일본이 맺은 조약의 성질은 조선과 미국이 맺은 조약에 비해 상대적으로 평등한 편이었다.
조선의 비극은 사실 '언어'에서 시작한 샘이다. 앞서 말한 대로 당시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 청나라 통역관이 대동되었는데, 한자로 글을 써주면 미국 대표단에게 영어로 말해주는 이중 통역을 통해 조약을 체결했으니 제대로 된 조약일 수가 없었다. 이 조약은 우리가 모두 알고 있듯이 불평등 조약이었다. 하지만, 이는 서양과 맺은 최초의 조약이기 때문에 이후에 다른 유럽 국가들과의 조약들의 표준이 되어버렸다. 이 조약을 시작으로 조선은 영국과 독일 그리고 이탈리아, 러시아와도 관계를 맺어가기 시작했다. 이 조약이 불평등한 이유는 치외법권과 최혜국 대우를 규정한 조약이기 때문인데 치외법권이란 다른 나라 영토 안에 있으면서도 그 나라 국내법을 적용받지 않는다는 원리이다. 즉, 조선에 있는 미국인이 잘못을 저질러도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최혜국 대우는 이미 조약을 최결한 나라가 이후 상대국이 또 다른 나라와 맺은 조약에 자국보다 유리한 내용을 허용할 경우, 자동으로 그 내용을 적용받는 규정을 말한다.
이런 최초의 '언어 능력자 하나 없는 나라의 무능'으로 조선은 이후 서양 대부분의 나라들과도 불평등 조약을 체결하게 된다. 이런 최악의 실수를 나중에서 깨달은 고종은 영어의 필요성을 절힐하게 느끼게 되고 조약 체결 다음 날인 1883년 국가기관을 만들어 급히 영어 교육을 시작하였고 그 3년 뒤 1886년 육영공원을 만들어 영어 공부를 장려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육영공원은 정부 고관 자제만 수용하는 신문적인 제한을 두고 있었는데 이런 고리 타분한 유교전통과 신분질서 때문에 조선 내에 영어 교육은 정착하지 못했다.
우리의 비극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어학 학교가 제대로 정착되지 못한 조선과 다르게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은 외국어의 중요성을 인식했다. 1870년부터 1873년 사이에 '요코하마 어학 학교'를 다녔던 일본인이 있었는데 그는 다시 독일로 유학을 떠나서 국방과 과학을 전공했다. 그는 1905년 7월에 미국과 밀약을 맺었는데 그가 바로 가쓰라-태프트 밀약의 주인공인 '가쓰라 다로'이다. 1905년 7월 27일 동아시아 정세에 관한 주요 의제를 논의하고 7월 29일 회의 주요 내용을 담은 합의 각서를 작성하였는데, 이 조약에서 미국이 필리핀을 통치하고 미국은 일본의 한반도에 대한 지배적 지위를 인정한다. 그리고 한 달 뒤, 일본은 1905년 8월 12일 제2차 영일 동맹을 맺고 영국으로부터 한반도 지배권을 인정받고, 다시 한 달 뒤, 9월 5일 포츠머스조약을 통해 러시아에게도 한반도 지배권을 인정받는다. 그리도 다시 두 달 뒤에 11월 17일 을사늑약으로 대한 제국의 외교권을 빼앗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권을 앗아간다. 이처럼 가쓰라-태프트 조약은 한반도가 식민지 되는 길의 가장 중요한 길목에 서 있다.
그리고 주권을 빼앗긴 조선의 언어 교육은 어떻게 됐을까? 일단, 외국어 과목에서 일본어는 필수과목이 되었다. 영어는 선택과목으로 바뀌었고 교사를 채용할 때는 일본어가 통달한 사람만을 채용했는데 그러다 보니 대체적으로 일본인 교사가 많아지게 되었다. 이후 대학 전공에서의 영문학과에서도 가르치는 사람이 일본인이었고 원어민 교사들이 가르치던 교재를 일본인들이 사용하는 교재로 교체되었다. 일제의 시대 제1차 조선교육령 시기에는 일본어를 국어로 하여 조선어와 한문을 제외한 모든 교과서를 일본어로 편찬하였고 외국어 학교는 폐지하였다. 오죽하면 1920년에는 보성보통고등학교를 비롯해 다른 학교들에서도 질 낮은 일본인 영어 교사에 대한 불만을 터트리며 교사 교체를 요구하는 동맹 휴학을 감행하기도 했다.
1945년 해방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전쟁이 발발한다. 그리고 한국전쟁이 1953년 휴전을 하고 대한민국의 영어 교육을 위해 일본의 교재들의 구성이나 내용을 대거 참조하여 영어 교재를 만들었고 그 뿌리에서 현재의 영어 문법의 뿌리가 탄생했다. 영어를 알려주다 보면 참 기가 찰 노릇이다. 도무지 뿌리를 알 수 없는 '한자어'들이 많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일본식 한자어인 경우가 다수이고 도통 문법을 공부하는 것이 과연 영어를 공부하는 것은 맞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이다. 심지어 유튜브에서 간단한 검색만으로도 원어민들이 수능 지문을 보고 황당해하는 영상들이 부지기수다. 쉽게 학생들이 푸는 영어 지문을 읽어보면 도통 불필요한 수동태와 역접 등이 지저분하게 쓰이는데 그런 '쉬운 글'이 '좋은 글'이라는 만국 공통의 기준을 두고 도통 이해가 불가능한 지문을 내어 놓고 시험 중 높은 배점을 같아 붙여 놓는 것은 과연 진짜 영어 교육을 위한 교육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