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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Apr 29. 2022

[생각] 인생은 바보같이_실패에 무딘 사람이 되기를..


싸움에서 절대 이기지 못하는 상대가 있다. '바보'같은 사람이다. '일자무식'한 사람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이기는 것은 어렵다. 말싸움에서 말을 잘하는 사람이나, 많이 아는 사람보다 더 이기기 어려운 상대는 아예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다. 60대의 연륜이나 30대의 똑똑함보다 어린아이를 이기는 것이 더 어렵다. '무서울 것 없는 10대'라는 말은 이후 닥치게 될 '냉혹한 사회'를 그들이 모르기 때문이다. 아무리 때려도 고통을 모르고 아무리 미워해도 눈치를 못채고 아무리 못된 말을 해도 '허허' 웃는 무딘 사람들은 도무지 이겨낼 재간이 없다. 영화 포레스트에서 주인공의 엄마는 주인공에게 '인생은 초콜렛 상자와 같은 거야'라고 말했다. 다만, 영화를 지켜 본 내가 느낀 인생은 '포레스트와 같이...'였다. 누군가가 무시해도, 힘든 시기를 겪어도,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에서도, 어마어마한 사건을 함께 해도, 높은 사람이나 돈 앞에서도 그저 담담한 이런 '바보'스러움이 언제나 승리하게 한다. 특전사를 나오신 아버지는 갓 스물이 된 아들에게 말했다. '군대가려면 뭣 모를 때 가라.' 이 말은 가끔씩 나를 자극케 한다. 어차피 해야하는 일이라면, 뭣 모를 때 후딱 해치워 버리는 게 낫다. 한 두 해 입대를 늦췄던 친구들은 온갖 군대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입대를 두려워 했지만, 갓 스물에 뭣도 모르고 군대를 갔던 나는 정신을 차려보니 힘든 것도 모르고 전역을 해버렸다. 무언가를 하려면 준비기간이 길 필요도 없고 깊이 알아 볼 필요도 없다. 마음의 준비 따위는 되려 두려움만 키울 뿐이다.



어린 시절 해외에서 일한 적 있다. 동양인 하나없는 쓸쓸한 소도시에서 직장과 집만 왔다 갔다하며 젊음을 태우고 있었다. 나는 겨우 하루하루를 유지했다. 외로움과 힘듬이 언제나 함께 했으나, 내가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함께 일하던 동료가 묵묵하게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족과 떨어져 있고 친구들과도 떨어져서 혼자 해외생활 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다만 같은 상황을 함께하고 있던 동료가 있음에 다시 또 하루를 겨우 버텼다. 그와 술 한 잔 한 적 있었다. 힘들게 하루를 버티던 내게 유일한 위안이었던 그는 이렇게 말했다.


 "넌 참고 있었어? 지금 엄청 만족스러운데?"


힘든 줄 모르는 사람은 이길 방법이 없다. 과정이 어쨌던 이유가 어쨌던 나는 나름 좋은 회사를 그만뒀다. 생각이 많으면 행동은 언제나 느려진다. 또한 생각이 많으면 언제나 두려움은 커진다. 인생은 그냥 바보같이 무덤덤하게 보내야 한다. 어린시절 가장 좋아하던 말 중 하나는 'Why so serious? (왜 그렇게 진지해?)' 였다. 인생은 한 번 뿐이라 몹시 소중하지만 그렇다고 아낀다고 아껴지는 성질의 것은 아니었다. 청나라 선통제는 '대청제국 12대 황제였으나, 말년에 '베이징 식물원의 정원사'가 됐다. 내가 지키고자 하는 것이 '청나라 황제 자리'도 아닐진데, 그까짓 쇄미한 허상따위는 언제라도 운명의 흐름을 타고 흩어져 버릴 것이다. 간혹 생각해보면 내가 지금 여기에 있는 이유가 궁금할 때가 있다. 사실 이 궁금증은 나보다 주변인들이 더 많이 물어본다. 이 질문에 적당한 답을 찾지 못했다. 운명의 흐름을 타고 떠다니다 정신을 차리니 지금 여기에 와 있을 뿐이다.



 보통의 생각은 '지난 후회'와 '남은 걱정'이 전부다. '생각'이라고 생각하는 것의 대부분은 '생각'이 아니라 '망상'이다. 진짜 생각은 '지금, 현재, 여기에 열중하여 골똘하는 것이다. 지금과 현재와 여기에 몰두하는 것이 옆에서 보기에는 지난 일에 무디고 앞선 일에 생각없는 바보같음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결국은 그런 바보 같음이 이길 뿐이다. 인생은 그깟 시험 점수에서 한 문제, 두 문제 더 맞추는 것 따위로 똑똑함을 알기 힘들다. 국내 최고 대학인 '서울대'를 졸업해도 형편없는 사람은 무지하게 많다.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느냐가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가 똑똑해야 한다. 젊은 나이에 성공하는 것은 '인생의 저주'라고 한다. 방송인 유재석은 아주 오랜 시기동안 무명시기를 겪었으나 지금은 대한민국 최고의 MC로 활동하고 있다. 같은 시기에 활동하던 수많은 사람들은 그 고통의 시간을 견디지 못했다. 한민족 시조신화인 '단군신화'를 보면 '곰'과 '호랑이'가 동굴 속에 들어가 100일 간 쑥과 마늘만 먹고 지낸다. 용맹스러운 전투력이나 날렵한 사냥능력이 아니라 '미련 곰탱이'같은 우직함이 성공 신화다. 마늘과 쑥이 아니라 그 어떤 고통과 어려움을 던져 준 들, 그것이 어려운지 모르는 사람을 이길 방법을 호랑이는 몰랐을 것이다. 실패를 하지 않으면 실패를 하지 않는 법을 알지 못한다. 실패를 해야 실패를 하지 않는 법을 알 수 있다. 실패를 하다가 더이상 실패를 하지 않는 현상을 우리는 '성공'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수많은 성공의 끝에 쌓여 있는 업적이 아니라, 죽어져 있는 실패라는 시체 위에 살아 있는 것이다. 성공은 끝이고 실패는 과정일 뿐이다. 인생은 바보처럼 살면 아이러니하게도 성공에 이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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