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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Apr 28. 2022

[일상] 타이어펑크 난 날


 몰아치듯 바쁘려니까 생각치도 못한 변수가 일어나곤 한다. 갓길에 급하게 주차를 하려다가 인도 보도 블럭을 밟았다. '퍽'하는 소리와 함께 조수석 바퀴가 주저 앉았다. 몰아치고 몰아치던 일상에서 타이어 펑크 덕분에 약간의 쉼표를 갖고 다시 하루를 시작한다. 평소 너무 읽고 싶었으나 읽지 못했던 책을 꺼내들고 조용히 견인차를 기다린다. 자동차 바퀴를 교환하고 나니, 대략 4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됐다. 그만큼 일과와 일과 중의 여유가 생겼다. 행운과 불운은 한끗차이라 자세하게 들여다보지 못하면 착각하고 만다. 그것이 행운이었다는 사실을 잊곤 한다. 세상 모든 행운과 불운은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해석'하는 것이다. 해석은 언제나 주체적이다. 어떤 상황을 어떻게 바라볼지는 '나'에게 있지, 상황에 있지 않다. 집에서 다시 나오면서 새로 산 스마트폰을 아스팔트 위에 떨궜다. 스마트폰 한쪽에 하얗게 상쳐가 생겼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예전에 내가 사용하던 만년필이 생각난다. 우연하게 나에게 찾아왔던 만년필을 나는 소중하게 대했다. 너무 소중해서 본질을 잃은채 사용하지 못하고 모셔두기만 했던 만년필을 언젠가 누군가를 마중하기 위해 '공항'에 가다가 떨궜다. 흠집하나 없던 검정색 만년필이 아스팔트 위에 떨어지면서 찌그러졌다. 이미 발생한 일에 대해 두 번, 세번을 아쉬워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지만, 나는 나의 흔적을 남겼다고 생각했다. 누군가가 사용했던 흔적은 '정체성'을 만들어준다. 그저 대량 생산되었던 청바지이지만 마릴린 먼로가 입었다는 청버지는 3벌에 5천 만원에 팔렸다. 진짜 그것의 값어치는 생산단가나 판매가가 아니라 그 주인의 흔적에 담겨져 있다. 찌그러진 스마트폰이나 만년필의 가격이 떨어진다는 것은 '나'의 값어치가 없기 때문이다.



 내 흔적에 값을 붙이기 위해선 물품을 소중히 하는 것보다 '내 몸값'을 올리는 편이 맞다. 살면서 대단한 사람이 되야한다는 강박이 있을 필요는 없다. 가장 평범한 것이 가장 어렵다는 말처럼 그저 평범한 삶을 사는 것 마저 여러운 일이다. 다만 세상을 바라볼 때는 객관적인 시선을 갖되, 상황을 바라볼때는 주관적인 시선을 가져야 한다. 치마폭에 튄 오점을 이용해 멋진 그림을 완성했다는 신사임당의 이야기를 보자면 모든 오점은 좋은 재료가 되기도 한다. 그것은 해석의 여지를 언제나 자유롭게 만든다. 비가 오는 날은 비가 오는데로 좋고, 날이 맑은 날은 날이 맑아서 좋고, 더운 날은 더워서 좋고, 추운 날은 추워서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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