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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May 12. 2022

[역사] 제3의 눈으로 본 생물학적 인간_털 없는 원숭

 인간은 머리에 수북하게 털이 나있다. 그 밑으로 마치 탈모증에 걸린 침팬지 마냥 맨 피부를 들어낸다. 누군가는 인간을 '털 없는 원숭이'라고 부르겠지만 우리 털이 원숭이에 비해 '적다'고 하긴 힘들다. 우리의 털이 조금 더 가늘고 연약할 뿐이다. 이에 흥미로운 진화론적인 주장이 있다. 우리의 잔털 방향이 다른 원숭이와 다르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우리 조상들이 해변가나 강가에 모여 물속 생활을 했다는 것이다. 물밖으로 빼꼼하게 얼굴을 내밀던 원숭이는 자신들의 정수리를 태양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머리털을 길렸을 것이다. 흥미롭다. 어떤 하나의 사건으로 우리 조상들이 털을 벗어 던졌을리는 없다. 낮에 물속에서 '해산물'을 채집하여 생존을 유지한다. 이는 '산'과 '들'에서 다른 포식자과 경쟁하고 위협 당하며 생존하는 것보다 수월했다. 물가에서 살아가는 생활양식은 '식수'를 구하기도 쉽다. 인간이 '불'을 발견함으로써 밤에도 따뜻한 체온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의 '털'이 가늘어지게 하는데 큰 몫이 됐다. 우리 손가락에 물갈퀴처럼 얇은 피부막이 붙어 있는 걸 볼 수 있다. 유인원에 비해 넙데데한 발또한  수영하기 적합하다. 스스로를 '털 없는 원숭이'라고 칭하는 것에 거부감이 들수도 있지만 자신을 객관화하는 시각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통해 이미 너무 흥미롭게 느꼈던 바다. 

 초식동물이던 원숭이가 '육식'을 시작한 것은 진화의 중첩점이다. 과일을 주워 먹던 원숭이가 육식을 하면서 숫컷 원숭이들이 사냥을 나가야 했다. 암컷 원숭이는 육아를 전담했다. 역할분담이 시작됐다. 비교적 유약한 어린 원숭이가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했다. 일부일처를 하며 '혼인'이라는 '약속'을 하고 불필요한 '종족 간의 유혈사태'를 제도적으로 방지했다. '단독 생존'이 어려웠던 무능한 '사냥꾼' 원숭이는 상호 믿음 통해 종족을 번영시켰고 그러기 위해서 '신뢰'는 필수적이었다. 눈에 흰자위가 보이지 않던 원숭이는 상대에게 자신이 바라보는 방향을 분명하여 믿음을 주어야 했다. 믿음을 주기 위해 인간은 '흰자위'를 키워 나갔다. 눈 위로 길다란 눈썹을 만들어 표정을 쉽게 읽힐 수 있도록 진화해 갔다. 숫컷은 암컷의 신뢰를 전적으로 필요로 했다. 다른 동물과는 다르게 외모를 통해 호감과 신뢰를 얻는 생물학적인 변화도 일어났다. 나무 위에서 주로 생활하던 원숭이가 땅 위로 급하게 내려오면서 오감 중 '시각'을 제외한 나머지 기능은 발달하지 못했다. 이런 문제는 '늑대'와 '살쾡이'를 키우는 방식으로 보조했다. 외부의 적에 대해 후각이 뛰어난 '가축화 된 늑대'를 이용했다. 그들을 통해 경계를 세웠다. 비위행적인 문제로 많은 사람들이 죽자 내부적으로 남은 식재료를 보관하고 처리하는데도 고민해야 했다. 남은 음식을 처리하는데도 '가축화 된 늑대'가 필수적이었다. 그들의 후각을 도움 받아 자신들의 부족한 부분을 채웠다. '가축화 된 살쾡이'는 인간의 거주지 내부에 존재하는 '쥐'와 '벌레'를 퇴치시켰다. 이처럼 사축화 된 늑대와 사축화된 살쾡이는 인간과 함께 같은 방향으로 진화하며 야생동물에게는 없는 '흰자위'를 갖게 됐다. 가축화 된 늑대는 '개', 가축화된 살쾡이는 '고양이'가 되어 인간과 정서적 교감을 함께하며 진화해 갔다.

 인간은 왜 옷을 입기 시작했을까. 기후변화를 겪은 원숭이는 밀림에서 초원으로 거주지가 바뀌었다. 나무에서 내려온 원숭이는 대략 무한대로 펼처진 초원을 걸어야 했다. 굽어진 허리가 점차 곧게 펴지면서 인간은 두 팔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지만 생식기가 밖으로 노출됐다. 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해 '육아'에 굉장한 에너지를 쓰는 동물이다. 거대해진 지능이 다 자라기까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실제 막 태어난 신생아는 자연계에 유례없을 정도로 무능하다. 아기 인간은은 태어나서 자그마치 4~5주가 지나서도 제 스스로 턱도 들지 못한다. 심지어 뒤집어진 상태에서는 스스로 다시 뒤집지도 못해 질식하고 만다. 무지막지하게 자다가 두 시간에 한 번 씩 일어나 밥을 달라고 칭얼거려, 부모의 생산력을 심각하게 떨어뜨린다. 태어남과 동시에 굉장히 오랜기간 동안 '생산활동'없이 무자비한 소비만한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은 그 어떤 생산활동도 하지 않으면서 무자비하게 먹고 입고 쓴다. 또한 교육비 지출도 무지하게 들어가며 가족 구성원 중 '육아'를 담당하는 한 쪽을 경제적으로 무능하게 만들어 버린다. 출산의 1년 간은 또한 여성에게 활동의 제약을 심각하게 준다. 고로 '성적인 자극'을 최소화하는 것은 사실상 경제적인 전략이다. 인간이 옷을 어떤 이유로 입었는지에 대해서는 물론 여러 이유가 있지만 분명한 것은 인간만이 가진 '직립보행'은 분명 숨겨져 있어야 할 복부와 앞면을 적나라게 노출시켰다는 것이다. 털 없는 원숭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진화적으로는 털을 벗어버리고 문화적으로 만든 털을 기워 입은 톡특한 종이다.

 아이를 안고 우유를 줄 때, 곰곰히 생각해보면 아이의 머리가 왼쪽으로 가도록 향한다. 오른손으로 젓병을 잡기 편해서 일수도 있지만 어쨌건 이 무의식적인 행동으로 아이는 부모의 심장에 귀가 가까이 된다. 원인과 결과의 순서 중 무엇이 먼저인지는 모르겠으나 우리는 왼손과 오른 손 중, 어떠한 교육 없이도 오른손잡이가 된다. 여성들은 무의식적으로 꾸러미를 안을 때 왼쪽으로 안는다. 심장 박동과 비슷한 템포에 안정감을 느낀다. 우리는 동물로부터 조금씩 벗어나고 있지만 아직도 그들과 닮아 있다. 고래는 육지에서 생활하던 포유류였다. 그들이 바닷속에 들어가 어류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이전에 입던 옷을 완전하게 갈아 입지 못했다. 인간의 존엄으 의심하도록 하는 불편한 시각도 있을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 완전하지 못하다. 쉽게 쓰여 있지만 생각할거리가 너무나도 많은 좋은 책이다. 두고 다시 한번 정독해 볼 요량이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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