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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May 17. 2022

[생각] 휴일 없는 스케줄_마음이 모든것이다.

생각하는 대로 된다

당신이 1930년 대에 태어났다고 생각해보자. 당신은 나라 없는 시기에 태어나 청소년기를 타국 식민으로 살아야 한다. 스무 살에는 전쟁을 겪거나 전쟁에 강제 징병된다. 서른이 되어 사회생활을 본격적으로 할 쯤, 국민 한 명 당 1년 평균 소득은 10만원 남짓이다. 마흔에는 오일쇼크로 각종 기계와 공장이 멈춰지는 사태를 경험한다. 간혹 TV방송이 정지되고 엘리베이터가 멈춰서는 혼란을 맞이 한다. 지천명이 되서는 군사정권에 의해 시끄러운 국내 정치를 경험한다. 정치적 억압을 받는다. 자산을 형성하여 편안한 노후를 맞이 할 예순에는 국가부도를 맞이 한다. 평생의 자산이 휴지조각이 된다. 어느 날 저녁 약주를 하시던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제주 남쪽 바다에 어선을 매입했다고 하셨다. 아버지 기억에 배는 항상 만선이 었다고 했다. 대단한 수확에도 할아버지는 언제나 적자를 면치 못했다. 잡은 고기를 팔 유통망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판매처도 없었다. 리어커에 상해가는 물고기를 실어 비포장 된 산길을 50리 걸어 넘어야 했다. 간단한 인터넷 서칭으로도 찾을 수 있는 판매처 따위는 그 당시에 없었다. 있었다고 해도 사람들은 먹을 거리에 쉽게 지갑을 열지 못했다. 누군가 자신의 시대를 보고 평생 돈을 벌어도 집 한 채 사지 못하는 '불행한 시대'라고 했다. 그런 말을 매스컴에서 듣곤 한다. 그 세대는 바로 지금 내 또래들의 세대다. 손과 발이 오글거린다. 단순히 집값을 비교하여 모든 것이 인플레이션 탓이라고 할 수 있나. 값싼 석면으로 한 벽마감. 연탄보일러 난방. 살짝 들면 시멘트가 보이는 얇은 장판. 슬레이트 지붕으로 지은 집. 그때와 지금의 집은 같은 가격에 판매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최소한 안정성 인증 받은 자재와 어느정도의 방음, 방한 시설이 구비된 꽤 평준화 된 집을 말한다면 그때와 비교해선 안된다.


상대적 빈곤이 절대적 빈곤보다 견디기 힘들다는 심리적 요인은 있을 수 있다. 말 그대로 '상대적 빈곤'이다. 2~30년 전에는 전화선이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사용조차 하지 못하던 '통화'는 오늘 날, 국민 대부분이 사용하고 있다.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공짜로 영상을 올리고 글이나 사진을 올려 새로운 판매 시장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크리에이터로 대뷔하는 것은 언제나 공짜다. 누구의 말마따나 '단군이래 가장 돈 벌기 쉬운 시대다. 앞서말한 1930년 대에도 정주영 회장이 있었고 이병철 회장이 있었다. 세계최고의 부자에 등극한 일론 머스크는 주당 100시간 이상 씩 쉬지 않고 일했다. 빌게이츠는 하루 16시간을 일하느라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고 아내는 말했다. 원피스의 작가 오다 에이이치로는 4시간만 자고 일을 했고 미우라 켄타로는 휴일없이 주에 100시간을 일했다. 마가릿 대처는 하루 4시간만 잔 것으로 유명하다. 이에 대해 영국에서는 '결코 자지 않는 총리'라는 평가도 있다고 한다. 토머스 에디슨도 하루 4시간만 잠을 잤고 그밖에 우리가 알고 있는 세종대왕, 이순신을 비롯해 과거 인물들도 잠을 자지 않고 일중독자 처럼 일했다. 좋게 평가하면 '열정'이고 나쁘게 말하면 '중독'이다. 이들이 갖고 있는 대부분의 특성은 '절대긍정'이다. 자신은 실패하지 않으며 포기하지 않는다면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고 여겼다. 이 말은 정주영 회장의 어록에도 수록되어 있다. '워라벨', '신제품 스마트폰', '그럭저럭 살만한 집', '굴러가는 자동차' 소박하다고 여겨지는 대부분의 것들을 하고 토요일과 일요일, 달력에 표시된 빨간 날에 '휴식'까지 모두 꼬박 챙기며 '경제적 자유'를 외치는 것이 얼마나 모순적인가. 앞서 말한 '일중독자'들의 삶이 옳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대부분은 말년에 정신적인 문제를 호소했고 가정사 또한 일반적이지 못했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 아이들이 크는 모습을 모두 살피고 일에서도 성공하면서 주말에는 휴식을 취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이는 '책을 읽지 않고 완독을 하겠다'거나, '밥 먹지 않고 배부르겠다' 혹은 '씻지 않고 깨끗해지겠다' 처럼 허무맹랑하다.

모든 상황은 불평하기에 불평할 거리만 있고 기회를 맞이하기에 기회만 있다. 그것은 실제 세상과 상황이 어떤지와 무관하다. '내가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달려 있다. 세상은 '반 정도 찬 물컵'이다. 부자의 컵에도 절반이, 빈자의 컵에도 절반이, 부모가 없는 이의 컵에도 절반이, 부모가 있는 이의 컵에도 절반이 차 있다. 물이 반이나 있는지 반 밖에 없는지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정주영 회장은 단! 한번도 실패를 한 적이 없다고 스스로 단언했다. 우리가 옆에서 바라보기에 그의 실패는 얼핏 적잖다. 세상을 긍정으로 바라보는 것은 '일'이나 '가족' 어디에서도 반드시 긍정적인 효과를 만들어 낸다. 두 번 생각해도, 세 번 생각해도 긍정이 전부다. 긍정이 전부고 감사가 전부다. 냉철한 비판의식이나 성공을 위한 열정, 꿈을 위한 열망, 미래를 위한 비전. 다시 생각해도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긍정이 전부이며 처음과 끝이다.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것이 긍정적인 사람들을 곁에 두고 그 사람들에게서 배우고 다시 영향력을 끼치며 성장하는 것이 전부다. 부정적인 사람들은 줄 곧 자신들이 얼마나 부정적인지를 증명하고자 하고 옆에 있는 이들까지 부정적이길 바란다. '해 봐야 안돼', '나는 진짜 힘들었어', '니가 몰라서 그렇지 진짜 힘들어' 등. 상대에게 자신의 불행을 확인 받고 싶어하고 상대의 컵도 절반 밖에 없음을 주입시킨다. 그들의 시선에 물들 필요없다. 물은 언제나 반절 정도 차 있다. 뭐라고 읽든 그것은 본인의 자유이며 여기에 붓다의 말을 첨언한다.

'마음이 모든 것이다. 생각하는 대로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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