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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May 27. 2022

[명상] 습(習)이란 무엇인가_운명의 공식

 학습(學習)에서 학(學_배우는 것)은 1이요. 습(習_익히는 것)은 99다. 간단한 요령 몇 개 배우는 것으로 '완성'에 이를 수 없다. 한 번의 '학(學)'에 아흔 아홉 번의 습(習)이 쌓여 있어야 한다. '익히다'는 말은 '시간'을 충분하게 들여 온전해짐을 말한다. 과일이 익거나 김치가 익는 것처럼 말이다. 쪽집게 교습을 몇 번을 받고도 이어지는 '습(習_익히는 것)이 없다면 단연컨데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다. 습(習_익히는 것)은 '공부'에서만 적용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모두 '습(習)'을 가지고 있다. 습은 아주 짧고 사소하지만 반복적이고 지속적이다. 인간에게는 습(習), 업(業), 식(識)이 존재한다. 습(習)은 일종에 무의식이다. 업(業)은 산스크리트어로 '까르마'를 의미한다. 습에 의해 쌓이는 원인을 말한다. 우리가 말하는 '업보'는 이 행동에 의해 생겨나는 결과를 말한다. 식(識)은 아는 것을 의미한다. 대상을 분별하는 것을 말한다. 모든 뿌리에는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습'이 바탕이다. 어제 오늘 라면을 먹은 사람이 내일 라면을 먹을 확률은 높다. 라면 먹는 것이 '습'이 되면, 건강치 못함이 '업'으로 쌓이고 결국 병에 걸리는 '보'를 받는다. 공부를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습'으로 쌓인다. 그리고 성적이 '업'이 되고 '낙점'이라는 '보'를 받는다. '일하지 않거나 게으름'이 '습'이 되면 나태함과 무능이 '업'으로 쌓이고 결국 빈곤이라는 '보'를 받게 된다. 거의 모든 일에는 '습'이 쌓이고 '업'이 생기며 '보'를 받는다.


 무의식을 길들이는 뿌리에는 '습'이 있다. 사소한 반복은 '습'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말투, 호흡하는 방법, 작은 행동과 생각은 모두 습으로 쌓인다. 사람과의 약속을 쉽게 어기는 행위, 당장 해야 할 일 보다, 하고 싶은 일을 먼저 선택하는 행위, 나태하게 게을러지는 행위, 부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행위, 누군가의 뒷담화를 하는 행위, 음식을 편식하는 행위. 거의 모든 행위는 최초 사소한 한 번 이었으나, 두 번, 세 번이 되면 그것은 반복과 지속이 되고 '습'이 된다.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은 무의식이 만들어낸 이 '습'의 결정판들이다. '습'은 '업'이 됐고, '업'은 '보'가 되어 현실에 반영된 것이다. 살이 찐 이유는 안 좋고 불규칙한 식생활이 '습'이 되어 '살이 찜'이 업이되고 건강치 못한 현재의 모습이 '보'가 된 것이다. 꾸준하게 글을 쓴 사람은 지속이 '습'이 되고 쌓여 있는 글들은 '업'이 되며 그로 받는 보상이 '보'가 된다. '습'은 '업'이되고 그것이 '보'가 되어 되돌아 온다.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점수가 오르지 않는다는 것은 없다. 아무리 굶고 엄청나게 운동했음에도 불구하고 비대해지는 것은 없다. 이 말은 아무리 불을 붙여도 불붙지 않는 종이처럼 모순적이다. 습이 업이되고 보가 되는 것은 우주의 규칙이다. 오른쪽으로 던졌으나 왼쪽으로 이동하는 '괴상망측한' 세상 규칙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어느정도의 법칙이 존재한다.


 뉴턴의 이론을 빌려 '습'의 습성을 따져보자. 제 1법칙, 관성의 법칙. 일정한 방향과 속도를 유지하고자 한다. 어제와 오늘 쌓인 행동은 관성을 타고 내일도 하게 된다. 그것이 '습'이다. 습은 '관성'처럼 그 방향을 지키고자 한다. 애써 반대 방향으로 돌리지 않는다면 운동방향은 관성을 타고 같은 방향으로만 자동 순회한다. 제 2법칙, 가속도의 법칙. 최초에는 1이고 두 번째는 2지만 세번째는 4, 네번째는 8이다. 시작은 미약했으나 그 끝은 창대했다는 '성경말씀'을 빌리지 않더라도 '미약'한 시작에 '창대'한 끝은 우주의 법칙이다. 시간은 가속을 타고 제곱으로 그 힘을 키워나간다. 수학문제에 '해'가 주어졌다면 그 인수값을 추론해 볼 수 있다. 이것을 '인수분해'라고 한다. 지금의 '나'는 결과값이다. 어떤 인수들이 복합적으로 작동하여 오늘의 '내'가 도출됐는지 인수분해 가능하다. 이것은 단순하다. 함수처럼 인풋과 아웃풋이 존재한다. 'y=x+1' 어떤 수를 넣어도 1을 더하고 출력되는 '장치'가 있다. 거기에는 3을 넣으면 4가 나오고 5를 넣으면 6이 나온다. 넣은 수와 나온 수를 보고 그 함수값을 추론한다. 오늘의 모양을 갖추게 된 이유는 어떤 값들이 작용한 것일까. 빛이 들어오지 않는 깜깜한 상자(함) 속에서 우리는 정녕 그 안에서 어떤 작동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한다. 그리하여 어두움 속에서 그 속을 잘 살피기 위해 '명상'을 한다. 스스로에 대한 명확한 객관화가 이뤄지면 '인'을 바꿀 수 있다.


 '인'을 바꿔 '습'이 생기면, '습'은'업'이 되고 그것은 '보'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 결과값은 '나'로 출력된다. 성공하는 DNA는 존재하지 않지만, 성공하는 '습'은 존재하며, 행복한 DNA는 존재하지 않으나 '행복'한 '습'은 존재한다. 어쩌면 DNA 안에 '습'의 출발값이 정해졌는지 모른다. 돌아가는 물레를 반대방향으로 돌리는 방법은, 최초의 반발력을 극복하는 것이다. 최초의 반발력만 극복한다면 다시 이 우주의 법칙은 작용-반작용, 관성, 가속도를 통해 우리를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할 것이다. 뉴턴의 말처럼 방향과 속도를 안다면 시간 후의 결과값을 도출해 낼 수 있다. 비록 작은 습관이지만 그 습관은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고 그 속도는 어떠한가. 작고 꾸준한 '습'이 결국 운명을 가로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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