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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Jun 10. 2022

[계발] 생각하고 집중하고 몰입하라_몰입


 무아지경(無我之境), 한참을 몰입하면 자신이 없어지는 경지에 이른다. 누구나 비슷한 경험을 한다. 몰입을 시작하면 처음에느 주변이 사라지고 다음에는 공간이 사라진다. 그 다음에는 시간이 사라지고 마지막으로 스스로(자아)가 사라진다. 이 지경에 이르면 완전한 몰입이 상태가 된다. 어떤 것에 몰입하면 자아가 사라지는 현상은 종교인이나 측정 천재들만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빨리 가기나, 게임 혹은 취미 생활을 할 때, 순식간에 시간이 삭제됨을 경험한다. 시간의 삭제를 넘어 '자아'가 삭제되는 상황까지 오게되면 우리는 그것을 무아지경(無我之境)이라고 부른다. 뉴턴에게 물었다. 어떻게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느냐고 말이다. 이에 뉴턴은 대답했다. "내내 그 생각만 하고 있었으니까." 번뜩이는 발상이나 아이디어는 불현듯, 우리에게 스치고 지나가는 것 처럼 보이지만, 사실 엄청나게 많은 '생각'이 임계치에 차올랐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가만히 있는 물이 보글보글 물방울을 일으키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렇다. 뜨거운 불 위로 물을 올려놔도 처음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그러다가 일정 시간이 지속면 가만히 있는 물이 갑자기 보글거리는 것처럼 보인다. 다만, 물방울이 일어나기까지 물 밑에서는 꾸준한 열량을 공급해야 한다. 물에 전달되는 열량의 값이 임계치에 이르면 물은 그제서야 끓어 오르기 시작한다. 가만히 있는 물이 갑자기 물방울을 일으키기 만무하다. 몰입의 순간은 '시간', '공간', '상황', '주변'을 삭제하고 심지어 '자아'도 삭제하게 만든다. 내가 사라지고 대상과 내가 마치 하나가 되는 것을 물아일체(物我一體)라고 하는데 이도 비슷한 현상이다.



 무의식은 무엇일까. 무의식은 일종의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와 같다. 그것이 나와 함께 해 주었을 때는 엄청난 무기가 되지만, 그 칼날이 나에게 향할 때는 엄청난 위협이 된다. 붉은 빛이 도는 털에 토끼처럼 빠른말로 하루에 천리는 족히 간다고 알려졌던 '적토마'는 다섯 번이나 주인이 바뀌었다. 적토마는 길들이기 까다로운 말로써 주인이 바뀌어도 제대로 다루긴 쉽지 않았다. 삼국지에서 적토마의 주인은 동탁에서 여포로, 여포에서 조조로, 조조에서 관우로, 관우에서 마충으로 다섯번이나 바뀌었는데, 길들이기 까다로운 적토마는 주인을 잘 만나 길들여지면 그 장수의 전투력을 향상시키고 그러지 않을 때는 그 역할을 못했다. 비슷한 말로는 '적로마'가 있다. 사람들은 '적로마'를 '흉마'라고 꺼렸다. 적로마는 볼품없는 말이었다. 길들여지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꺼렸다. 다만 이 적로는 유비가 죽음을 마주했을 때, 갑자기 제 몫을 발휘한다.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지만 그것이 나와 목적을 함께 하는 순간 무서운 무기로 돌변하는 좋은 예시다. 무의식은 대게 사람을 원치 않은 방향으로 이끌기도 한다. 우리가 알아 챌 수 있는 사고의 영역을 '의식'이라고 하고 그 밑에 잠들어있는 '야생마'는 무의식이다. 무의식은 꾸준히 우리를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지만 우리의 의식과 목적을 함께하지 않는다. 즉 공부를 하고자하는 '의식'을 앞서 '무의식'은 놀고 싶은 마음으로 치달리고 일해야 하는 '의식'에 앞서 '쉬고 싶은 마음에 치달린다. 결국 주인을 제대로 만나지 못한 '말'들이 제 멋대로 날뛰기 시작하면 결국 '주인'은 가고자하는 목적은 커녕 위험한 상황으로 치닫게 된다. 몰입은 '자아'를 잃게 만든다. '무아지경'은 의식을 관통하여 무의식 심중 한 가운데로 비집고 들어간다. 의식과 무의식을 관통한 몰입은 약한 '각성' 상태로 꾸준하게 무의식을 의식의 방향으로 작동시킨다. 자고 있는 순간과 쉬는 순간, 먹는 순간과 씻는 순간. 의식이 작동하지 않는 얕은 무의식의 순간에 더 깊은 사고를 통해 특별한 결과값을 도출한다.



 발명왕 에디슨은 이렇게 말했다.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만들어진다." 이 말은 노력의 중요성을 말한 것 같지만 사실은 1%의 영감에 주목해야 한다. 사실 천재의 99%의 노력이 없다면 1%의 영감은 발생하지 않는다. 천재를 완성시키는 것은 99%의 노력이 아니라'99%의 노력과 1%의 영감'이다. 즉 1%의 영감이 없다면 천재는 완성되지 않는다. 물을 끓여 100도에 이르게 하려면 99도까지만 끓여서는 안된다. 마지막 1도를 높여 그 임계점을 넘겨야 한다. 즉 99%의 노력과 1%의 영감은 천재에게 모두 필요하고 1%의 영감을 위해서는 99%의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모르는 수학 문제를 마주했을 때, 그 답답함은 피가 거꾸로 솟구친다. 이 답답함은 문제집 맨 뒷장으로 넘겨 해답지를 보면 그 즉시 해결되지만 나의 무의식은 맨 뒷장으로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동작을 멈춘다. 야생마는 자신에게 먹이와 일거리를 주지 않는 주인을 주인으로 섬기지 않는다. 제 멋대로 날뛰고 제 멋대로 목적지를 선택하여 질주한다. 일상의 대부분을 약한 몰입 상태로 그 끈을 놓지 않고 유지시키는 것은 일종의 '선'과도 같다. 우리가 말하는 '명상'처럼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에 소통의 창구를 열어 놓는 것이다. 나의 무의식과 소통의 창구를 닫고 의식 혼자 모든 몫을 짊어지기에는 하고자하는 목적지는 멀기만 하다. 살아가면서 해야하는 많은 일들에 가장 중요한 것은 '행복'이다. 무한대로 주어진 쉬는 시간은 즐겁지 않다. 약몰입 상태로 어떤 성취감을 느끼고 목적에 도달하며 어느 순간 자신이 사라지고 목적과 물아일체되는 그 순간은 행복의 감정과 비슷하다. 이런 뇌의 작용은 신경전달물질 '도파민'을 분비하여 우리를 행복의 상태로 만들어준다. 몰입의 극대화는 결국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 그저 '집중', '열심히'를 넘어서 '몰입'의 단계를 확인하고 스스로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어쩌면 가장 재밌는 놀이이자, 삶의 궁극적인 재미와 행복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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