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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Jun 16. 2022

[계발_원서] 휘게(Hygge)로운 삶을 살고 있는지

The little book of Hygge 독후감

 자고 있는 아이의 이마에 손을 올려 놓는다던지, 향 없는 초에 불을 붙여 흔들거리는 조명에 식사를 한다던지, 대낮에 살랑거리는 바람 밑에서 낮잠을 잔다던지, '휘게(Hygge)'스러운 삶을 사는 것은 무엇일가. 효율이나 성공, 돈에 초점이 맞춰진 삶이 아닌 '휘게(Hygge)'와 '삶', '행복'에 초점이 맞춰진 삶을 사는 것은 무엇일까. 휘게(Hygge)는 번역하기 까다로운 단어다. 아늑하고 기분 좋은 상태를 말한다지만,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하는 소박한 일상을 말한다지만 이 단어는 굉장히 모호하다. 우리의 '정'처럼 무언가 한 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이 말의 시작은 덴마크다. 덴마크는 '휘게(Hygge)'스러운 삶을 살고 있을까? 실제로 덴마크 사람들에게 물어본 결과 28%의 사람들이 일주일 내내 초를 밝힌다고 한다. 일주일에 2~6일에 한 번 초를 밝히는 경우가 23%, 1~3일에 한번 초를 밝히는 경우는 23%이며 놀랍게도 한번도 초를 밝혀보지 않은 경우는 4%밖에 되지 않는다. 한번에 얼마나 많은 초를 켜냐는 질문에 1개의 초만 킨다는 대답은 5%뿌니었다. 2개는 16%, 3개는 13%, 4개는 16%다. 가장 많은 대답은 5개 이상으로 31%에 달한다. '유럽 양초 협회'에 따르면 덴마크는 유럽에서도 가장 많이 초를 태우는 나라다. 이 나라 사람들은 는 매년 대략 6kg의 왁스를 태운다. 유럽에서 2번째로 초를 많이 태우는 나라인 오스트리아보다 2배 가까이 많은 숫자다. 장담컨데 대한민국 국민 평균 몇 개의 초를 밝히고 있는지 조사하는 것에 의미가 없을 것이다. 일주일 평균 몇개의 초를 동시에 켜고 있는지를 조사한 통계자료는 찾기도 어렵고 궁금한 이도 없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효율'과 '목표'에만 미쳐있지,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는데 서로가 무관심하다.


전세계에서 훼게(Hygge)라는 단어를 번역하는 적다. 실제로 53%는 '휘게(Hygge)'라는 단어를 번역하지 않거나 대체 단어가 없다. 그 비슷한 단어는 여러개가 있다. 일본에는 '츤도쿠'라는 조어가 있다. '책을 사는 것을 좋아하지만 쌓아두고 결코 읽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달성해야 하는 목표를 내려 놓고 그저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은 휘게(Hygge)의 기본이다. '영끌', '경제적 자유', '파이어족'이라는 말이 무섭게 유행하지만 그 누구도 '휘게(Hygge)', '츤도쿠'라는 용어를 기민하게 받아들이진 않는다. 유럽 평균 사탕소비는 4.1kg다. 덴마크의 사탕 소비는 그 정확히 2배인 8.2kg이다. 건강을 해친다는 생각보다 '휘게(Hygge)'에 더 집중하면 벌어지는 일이다. 덴마크의 1인당 국민총소득은 대한민국보다 2배가 높다. 이 나라는 우리보다 더 많은 돈을 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덜 밝고 덜 효율적인 오래된 조명을 구매하고 어두침침한 환경에서 식사한다. 덴마크의 코펜하겐은 '자전거'를 많이 사용하는 도시다. 덴마크 직장인의 35%는 자전거로 통근을 하고 일주일에 평균 36시간만 일하며 국민 80%가 영어로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할 만큼 교육이 보편화 되어 있다. 그들은 첫 월급을 받으면 목재로 된 의자를 구매하며 화분을 구매하길 좋아한다.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을 아는 이들의 선택은 이렇게 달라진다. 덴마크의 주 수입원은 해운업이나 정밀공업, 의학과 약학들이다. 물론 부럽게도 덴마크는 산유국 중 하나지만 과거에 비해 석유 의존도는 크게 낮아졌다. 그들의 에너지 소비 92%는 석유였으나, 1970년대 석유 파동 이후로 정부가 석유 대신에 대체 에너지 자원 개발을 장려했고 현재는 덴마크 전체 전력의 37.5%가 풍력발전을 통해 공급된다.


 효율과 목표에만 집중하기에 우리는 '인간'이다. 실제로 한국에서는 시기마다 달성해야 할 '목표'를 준다. 선택은 '효율'을 추구한다. 10대에는 공부, 20대에는 취업, 30대에는 결혼과 출산 등. 각 시기마다 달성해야 할 목표를 빠르고 효율적으로 달성하는 것을 인생 최우선 과제로 삼지만, 이 목표는 달성하면 할수록 '죽음'이라는 최종 목표에 빠르게 달려 나간다. 사실 인생에서 달성해야 할 목표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지나가는 바람을 느끼거나 볕이 좋은 날 가만히 햇살은 느끼는 것도 인생이다. '뉴질랜드 북섬'에 '네이피어'라는 마을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 집 앞에는 커다란 해변이 있었는데 날씨가 좋은 날이면 젊은 사람 나이 많은 사람 할 것 없이 맨발로 걸어나와 비슷한 행동을 한다. 해변에 발랑 누워 볕을 쫴고 바람을 느낀다. 아마 비슷한 나이의 우리나라에서는 젊은 나이는 PC방에 나이가 있는 이들은 스크린 골프장에 들어가 있을 것이다. 여러 세대가 같은 방법으로 행복을 즐기는 것은 부럽다. 70대와 10대가 같이 누워 볕의 기분을 묻는 일은 크게 어색하지 않다. 길을 걷다보면 통기타를 들고 다니는 젊은 사람들과 남녀노소 맨말로 보도블록을 밟고 지나다니는 분위기는 '삶'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했다. 여러 이웃과 친구를 초대하고 '초'를 켜서 '매일' 식사를 하는 모습은 아직은 힘들기만 하다. '경제 성장률'이나 'GDP 순위', '선진국 지수'를 온 국민이 살펴보고 정작 자신들은 불행한 삶에서 허덕이다 가장 많은 국민이 자살하는 안타까운 전체주의에 대해 회의감도 생긴다. 사람들이 '행복'에 더 기민해지는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런 인식을 갖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서로가 행복한지 확인하고 관련 통계를 기민하게 살피고 행복에 대한 신조어를 만들어 내는 시대, 그리고 '휘게'에 대한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시대, 우리 아이들이 그런 시대의 대한민국에 살았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잠시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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