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인환 Jun 17. 2022

[소설] 어른들은 고개를 끄덕일 어른동화_저주토끼

 지인은 '해피앤딩'을 좋아한다고 말했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지인은 행복하게 마무리 되지 않으면 불쾌한 감정이 든다고 했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영화를 보거나 소설을 볼 때, '결국 행복하게 살았습니다.'하고 마무리 짓는 결말은 나는 싫어한다. 삶은 불완전하고 결론 짓기 어려운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읽는 동화의 대부분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난다. 아이에게는 그렇게 말해주지만 정작 그런 '비현실적'인 이야기는 나는 무척 싫어한다. 최근 '우리들의 블루스'라는 드라마를 보고 있다. '시크릿가든'을 제외하고 드라마를 이처럼 몰입하고 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해당 시리즈 중에 고두심 배우 님이 극중에서 '아들 잃은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몰입하며 봤지만 결국 '아들은 무사하겠지'하고 생각했다. 잔인하게도 극중 아들이 죽었다면 작가는 커다란 질타를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결국은 죽지 않은 아들을 보고 '결국 또 이렇구나' 생각해야 했다. 찜찜하게 끝나는 극에 후한 점수를 준다. 실제로 찜찜하게 끝나는 것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결국은 어떻게든 극마무리에 모든 갈등이 해결돼 버리는 비현실성이 모든 장르를 SF로 만들어 버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영화 '달콤한 인생'은 제목은 달콤하지만 그 결말은 찜찜하다. 결국은 행복하게 결론 짓는 것의 의무인 것처럼 모든 영화나 소설은 극을 향해 치닫다가 깔끔하게 모든 갈등을 정리해 놓고 마무리한다. '느와르'처럼 우울하고 침울한 분위기의 영화를 선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해피앤딩'처럼 결국은 모든 갈등이 해소되는 것은 더 더욱 선호하기 힘들다. 삶을 살다보면 비관적인 일도 있고 기쁜 일들도 있다. 결국 주인공의 사랑은 이뤄진다거나 어린 아이의 눈물을 담은 슬픔이 해소돼야 직성이 풀리는 것들은 모두 비현실이다. 물론 그런 비현실을 극이나 소설로 만족하는 것이 재미 요소라면 어쩔 수 없다. 다만 내 취향은 아니다.

 아무리 어린 아이라고 하더라도 슬픔이 말끔히 해소되지 않는 비정함이 나에게 있는지도 모른다. 따지고보자면 그런 것이 비정함이라면 우리 모두는 그런 비정함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내 손에는 정기 후원을 하면 받게 되는 유니세프 반지가 끼워져 있다. 기분이 내키는 어떤 때에는 꽤 큰 돈을 고아원에 후원하기도 한다. 기껏 해봐야 푼돈이겠지만 정기 후원조차 해보지 않는 이들의 '위선'이 더 가차없고 비정하다고 느껴진다. 그들은 허구의 이야기에서의 '비정함'에 두 눈을 숨는다. 현실에서는 굳은 얼굴로 남의 아이에게 10원짜리 한 장 내놓지 않는 비정함이 진짜 비정함이다. 현실은 사실 이런 비정함 투성이다. 우리 모두는 적어도 1회 이상씩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을 맞이하며 그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도 막지 못한다. 수 십만년 간, 인간이 태어난 뒤 모두가 스치고 지나가듯 죽음을 경험했고 우리는 앞두고 있다. '죽어야 할 생명'이 다시 살아나는 '좀비' 같은 환상을 기대하고 드라마나 영화, 소설을 읽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진짜 현실에서의 외로움과 실망감이 커질 뿐이다. 어린시절 일본의 영화 중, '배틀로얄'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이 영화는 내가 처음만난 비정함이었다. 내가 알기로 '착한 사람'이나 '연약한 약자', '꿋꿋하고 긍정적인 여자아이' 등은 마지막까지 살아남아야 한다. 혹여 극에서 죽더라도 아름답게 입꼬리 한 쪽에서 흐르는 피 정도로 죽음을 표현해야 했다. 다만 영화는 도끼로 여자 아이의 목을 사정없이 자르고 망치로 착한 아이의 머리를 내려 치는 등 너무 적날했다. 헛구역질이 올라오는 영화 내용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그것이 실제 죽음이나 사건 현장과 더 닮아 있을 거라는 깨달음이었기 때문이다. 전쟁영화에서 가슴에 총을 맞은 누군가는 입에서 터져 나오는 토혈과 섞어 유언을 남기며 조용히 눈을 감는다. 다만 현실은 문턱에 발가락만 찧여도 못생긴 표정으로 뒤굴뒤굴 굴러다닌다.

 세상에 대한 미화가 무조건 정답일까. 결론은 항상 아름다워야 할까. '사랑'의 힘으로 모든 역경과 어려움을 이겨내는 것은 '진리'일까. 우리 역사는 언제나 더 많이 죽인 쪽이 '승자'가 되는 '전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인간 역사의 큰 흐름에서 '타국 군인의 생명존중'을 역설하던 장군은 있을까. 사실 잔혹하게도 많은 사람을 죽인 사악한 독재자와 훌륭한 장군의 차이는 종잇장 한 장 차이며, 일어나야 할 일들은 '좋다'와 '나쁘다'를 구분짓지 않고 일어난다. 아이에게 주사를 넣을 때, 아이의 눈을 가린다. 아이가 눈을 가리면 그 고통이 조금은 감소할 것 같은 안도감이 든다. 다만 인간은 눈을 가리면 더 큰 공포감을 갖는다. 각종 예능에서 비밀의 상자 속에 손을 넣어 물건을 알아 맞추는 게임을 한다. 눈을 가리면 인간의 상상력은 불필요하게 극대화된다. 있지도 않은 뱀과 독거미를 상상하지만 상자 안에는 그냥 '맛있는 순대'와 '포도'가 들어 있다. 눈을 가리면 더 극단적이 된다. 사실을 직시하는 것이 공포감을 줄이는 것이다. 불필요하고 지나치게 나쁜 생각을 많이 하는 것도, 지나치고 불필요하게 좋은 생각을 많이 하는 것도 좋지 않다. 모든 진실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눈을 감은 이가 코끼리 다리를 만지고 코를 만진다면, 더 자세히 더듬어 볼 것이 아니라, 감고 있는 눈을 떠야 한다. 비극은 사실 비극이 아니고, 희극은 사실 희극이 아니다. 모든 것은 그저 일어날 뿐이다. 오랫만에 너무 재밌는 소설을 읽었다. 이런 식의 소설이라면 하루종일 수 권이나 더 읽을 수 있겠다. 비현실적이지만 현실적인 어른들의 동화다.

작가의 이전글 [계발_원서] 휘게(Hygge)로운 삶을 살고 있는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