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인환 Jun 19. 2022

[집필_소설] 신의 종지_1편

 "종지 하나 취재하려고 인도까지 가야 돼?"

진호는 중얼거렸다. 얼마 전, 인도의 한 남성이 한국 친구에게 선물 받은 희귀한 선물이라며 제보를 해 온 덕에 어쩔 수 없이, 영상 막바지에 '인도'까지 취재를 하러 가야 했다. 방송날자가 얼마 남지 않는 상황에서 국장이 특별히 요청한 사항을 거절 할 수 없었다. 

 'Rajar Kumar...'

이색적인 이름이 스마트폰 메모에 적혀 있다.

"라자르 쿠마..., 라자르 쿠마...,"

그러지 않아도 더운 날씨에 인도에 가는 불운을 맡게 된 그였다. 제보에 따르면 한국 친구가 여행 중 줬던 이 선물은 분명 독특한 물건이긴 했다. 가만히 두면 종지 가득 맑은 물이 차오르는 희귀한 종지라고 했다. 다만 비슷한 이름의 다른 누군가가 했더 지난 제보는 다시 생각해도 화가 치밀어 오른다. 수 년 간, 물을 입에도 데지 않았다는 '브라만'은 취재 이틀 만에 코카콜라를 마시다 걸렸고 눈을 감지 않는다는 한 제보자는 만난 첫 인사에 눈을 깜빡였다. 수 억의 사람이 살다보니 희귀한 사람도 있겠지만 그 중 정말 희귀한 사람은 없는 재능을 있다고 하여 헛된 발거름을 5,000km나 하게 하는 놀라운 발상이다. 진호는 이번에는 다를 거라는 국장의 마지막 말을 속는 셈치고 들어주기로 했다.

 "선배 님, 이번에도 가짜겠죠?"

옆 자리에 앉은 수연이 물었다. 수연도 3번이나 인도를 방문하면서 이번 역시 의심 가득하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제 6살 된 아들을 남편에게 맡겨 놓고 온 것이 못내 찜찜했다. 그녀는 인도에 대해 이미 경험한 바가 있었다. 대학교 시절, 어학연수로 3개월 체류했던 적이 있던 이 곳이 낮설지만은 않았다. 수연은 그곳의 분위기를 알았다. 순박하지만 약간은 약은 듯한 초인들의 눈빛을 그녀는 연수 시절에 많이 경험했다. 진호에게 물은 수연은 이미 대답을 들은 것 마냥 다시 자리를 고쳐 앉고 한숨을 깊게 내쉰다.

"아이 때문에 그래?"

진호가 묻는다.

"제대로 약이나 챙겨 먹일지 걱정이에요. 안 그러면 치료가 더 어려워 질 거라 던데..."

말에 숨은 한숨을 진호는 알았다. 갑자기 실신하고 발작하는 소아 발진하는 수연의 아들의 병은 이미 사내에서 유명했다. 그만큼 유부녀 수연에게 치근덕대는 국장에 대한 소문도 유명했다. 이미 미운 털이 잔뜩 박혀 있는 진호와 수연이 아주 중요한 시기에 이렇게 인도로 취재를 나간다는 것도 이미 그 소문만큼 유명했다.

 비행기 내의 싸늘한 에어콘 공기는 기내 출구가 열리면서 증발했다. '턱'하고 막히는 습하고 더운 공기가 폐속 깊은 곳까지 스며들었다. 인도 남부에 도착했다는 기쁨도 잠시 입고 있던 옷이 급격히 눅눅해졌다.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 내부로 들어가는 버스에 들어섰다. 버스는 다시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일단 '종지'가 실제 물이 생기는지 카메라에 담아야 되니까, 수연 씨는 쿠마르 씨를 만나자마자 인터뷰를 진행해줘. 나는 관찰카메라 설치를 할 테니까."

 진호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사실 이 취재가 성과가 없을 거라는 건, 진호와 수연 뿐만아니라 그 둘을 보낸 국장 또한 알고 있었다. 벌써 세 번 째 취재다. 처음 눈을 깜빡이지 않는 초인을 만나러 갈 때의 기대감을 진호는 잊지 않았다. 무엇을 물어보고 어떤 영상을 담아야할지 수 일 꼬박 밤을 샜던 준비는 초인과 악수를 나누며 바로 사라졌다. 그들은 대한민국에 방송사에서 인도까지 취재를 위해 얼마만큼이 시간과 비용이 들어가는지 여의치 않는듯 보였다. 아니면 말고 식 그들의 태도에 당황한 건, 지금은 국장이 된 재혁도 마찬가지였다.

 인도 남부는 조용하면서 시끄러웠다. 시끄러운 곳과 조용한 곳이 공존하고 깨끗함과 더러움이 함께 했다. 질서와 무질서가 함께 하는 그 곳은 역시나 놀라울 만큼 철학적인 곳이었다.

 공항을 나오자 낮선이가 둘에게 다가갔다.

"아뇨하세요."

어색한 한국어지만 분명하게 들을 수 있었다. 

눈이 깊고 블랙홀처럼 모든 빚을 흡수할 듯한 검은 머리의 인도 남자가 웃고 있었다.

"저는 쿠마르 라고 합니다."

약간 어색한 억양이지만 제법 소통이 될 것 같았다. 수연이 한국어로 물었다.

"아 안녕하세요. 강수연이라고 합니다."

"저는 김진호 라고 합니다."

갑자기 시작한 통성명이지만 이렇게 쉽게 일이 진행될 거라고 생각치 못했다. 

"종지 보러 오셨죠?"

쿠마는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했다.

"네. 저희가 방송국 사내 사정으로 길게 취재일정을 뽑지 못했어요. 양해 부탁드립니다."

수연이 능숙하게 받아쳤고 쿠마는 알겠다고 답했다. 

"일단 저희 집으로 가시죠. 차 한잔 마실 시간은 있으시죠?"

쿠마가 능구렁이처럼 농담하자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취재가 가능할 것 같다는 예감을 진호와 수연은 했다.

"자. 여기 한 번 보세요. 간장 담는 종지 맞죠?"

"그렇네요?"

종지는 푸른 빛을 영롱하게 띄고 있었으나 분명 근현대에 만들어진 건 아닌 것 같았다. 이 골동품이 어떻게 이 머나먼 타국으로 오게 됐는지 그 역사가 먼저 궁금했다.

 "쿠마 씨. 죄송한데 카메라 세팅 좀 먼저 하고 말씀을 나눠도 될까요?"

 "그러시죠."

진호의 요청에 쿠마는 거침없이 답했다.

카메라가 돌아간다. 영상에는 빨간색 RED가 깜빡이고 쿠마는 고급 소파에 앉아 식지 않은 차를 한모금 들이키며 말했다.

"벌써 10년도 넘었어요. 저희 가족은 대가족이에요. 할아버지를 중심으로 아버지 형제 내외가 총 8분이고 사촌은 20명이 넘어요. 모두 한 집에서 살고 있어요."

쿠마는 종지를 들어보고 기억을 더듬었다.

"어린시절에는 꽤나 가난했던 탓에 사촌들 중 가장 똑똑한 한 아이만 공부가 가능했어요. 다행이 영어에 재능이 있던 제가 영국에서 유학을 할 수 있었죠. 제 전공은 셰프 입니다."

쿠마가 눈동자를 집 구석으로 향하자, 그곳에는 가족사진과 요리복을 갖춰 입은 쿠마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영국과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을 거쳐 제가 가장 최근까지 있던 곳은 호주였어요. 그곳에서 Bob(밥)을 만났어요. 밥은 성격이 쾌활했고 사교적이었어요. 덕분에 제가 한국어를 공부하게 됐구요."

능숙한 한국어를 사용하는 인도 남자 덕분에 취재가 어렵지 않게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만 수연의 머릿속에는 지금 당장 돌아가도 약을 제때 챙겨 먹었는지 확신 할 수 없는 아들이 눈에 밟힐 뿐이었다.

"그래서 그분께서 종지를 주셨나요?"

"네. Bob(밥)의 할아버지는 무속인이라고 했어요. 반드시 중요하게 쓰일 거라고 종지 하나를 주셨다는데, Bob이 세상을 떠날 때, 제게 선물로 줬어요."

"그분이 돌아가셨나봐요?"

갑작스러운 전개에 놀랐지만 진호는 카메라를 의식하고 다시 물었다. 

"화재가 있었어요. 응급실에서 잠시 의식이 있었지만, 종지를 선물로 주고서 다시 일어나지 못했어요. Bob(밥)은 제게 종지를 선물로 줬지만, 이 종지는 여기에 있어서는 안 될 것 같았어요. 부디 한국으로 가지고 돌아가 주세요."

 이해가 안됐다. 종지가 어떤 기능이 있는지 확인도 전에 덜컥 훔친 '장물'이지도 모를 '물건'을 가져가라는 요구가 초면 인사 다음에 바로 있었기 때문이다.

 진호는 웃으며 말했다.

"예. 뭐 저희가 일단 방송상 진행해야 할 몇 가지 절차가 있는데, 진행 후에 다시 얘기 해보죠."

"필요한 건 언제든 알려주세요."

 쿠마는 독특한 모양의 종지에 뚜껑이 있다고 했다. 뚜껑을 덮어 놓고 6분 정도가 지나면 종지에는 맑은 물이 가득차 있다고 말했다. 쿠마는 언젠가는 그 물을 마셔 본 적이 있다고 했다. 물은 깨끗했으나 검사를 따로 진행해 본 적은 없다고 했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종지의 뚜껑을 덮어두고 6분이에요."

"6분이 지나면 종지 안에 물은 가득차지만, 반경 수백 km에는 비가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아요. 6일 간이요. 2번의 물을 채우면 12일 간 비가 내리지 않아요. 논리 상, 한시간 동안 뚜껑을 닫아두면 1년 내내 비가 내리지 않는 거죠. 무섭죠?"

"실험은 해본 건가요?"

수연이 물었다.

"1년을요? 아니요. 그냥 추정에요. 1년 간 비가 내리지 않는지 실험해 본다는 게 참 이기적인 호기심 같지 않나요?" 

쿠마는 되물었다.

종지는 세사람 사이에서 영롱하게 계속 빛을 내뿜고 있었다.

-2부 계속-

작가의 이전글 [계발] 나는 누구인가_자신을 죽이지 말고 무기로 삼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