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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Jul 09. 2022

[일상] 승자는 행동으로 말을 증명하지만, 패자는 말로


 'The winner proves words by action, but the loser excuses action by words'


(승자는 행동으로 말을 증명하지만, 패자는 말로써 행동을 변명한다.)


책을 읽다가 마음에 꽂힌다. 뱉은 말을 증명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서다. 자신은 포장하고자 하는 '말'은 언제나 행동보다 앞선다. 이것을 증명하지 않으면 '자존감'은 땅으로 떨어진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현대인들은 '체면'을 구시대적 문화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유럽'인들의 문화가 무조건 옳다는 식의 사대주의적 생각이 우리를 근대화 시키는데 일조한 것은 맞다. 다만 이 과정에서 '동양의 특징'은 모두 구시대적 문화라고 생각하는 편견이 생겼다. 중국, 일본, 한국에서 모두 '체면'을 버려야 할 어떤 것으로 규정한다. 경제적 능력이 유럽의 여느 국가를 넘어서자, 이제는 우리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든다.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사고가 생산적이던 과거는 넘어갔다. 인간은 컴퓨터보다 합리적이지 못하고 기계보다 경제적이지 못하다. 컴퓨터와 같은 사고와 기계와 같은 행동을 하던 인간이 성공하던 시기가 넘어서고 그 자리를 기계와 인공지능이 가져갔다. 인간은 조금 더 인간다워야 하고 그런 인간이 부와 행복의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체면'은 구시대적 문화라고 치부하기에 가장 인간다운 문화 중 하나다. 인공지능과 기계는 '체면'을 모른다. 가장 기계와 컴퓨터 다워야 성공하던 인간이 다시 인간답기로 한 이후에 우리는 예전 '체면'이라는 단어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다. 혼자 살 수 없으며 누군가와 항상 관계형성을 한다. 기계가 관계형성을 하진 않는다. 어떤 누군가와 어떤 누군가가 이어지는 관계형성은 유튜브나 SNS의 알고리즘과 관련 있다. '관계'를 생각하는 이들이 더 성공하는 시대를 맞이한 이들은 과연 어떤 키워드를 써야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들어줄지, 어떤 제목을 적어야 사람들이 더 많이 글을 읽을지 고민하는 사람이 이긴다.



 외국에서는 길을 가던 누군가와 이야기 할 때, 그 관계를 결코 짐작할 수 없다. 내가 아르바이트 하던 곳의 직원들은 사장에게 이름을 불렀다. 그 둘의 관계가 '사장'과 '직원'의 관계인지 나는 짐작하지 못했다. 한국에 오자 처음 보는 두 사람의 만남에서 나는 그 관계를 짐작 할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어이구, 어쩐 일이야?"


누군가는 머리를 숙이고 존댓말을 했고 누군가는 반갑게 손을 들어 어깨를 두드렸다. 호칭은 선생님이었다. 그 사람이 실제 선생님이었는지 어쨌는지는 알 수 없으나 첫 대면의 대화만으로 나는 그 관계를 짐작할 수 있었다. 알고리즘은 관계형성에 매우 연관되어 있다. 유튜브 '썸네일'은 언어를 넘어, 그 컨텐츠의 정체성을 나타낼 수 있다. '앞으로의 내용은 어떻게 전개될 것입니다.'라는 말 한마디 없이 사람을 끌어내고 밀어낸다. '체면', 오래 전 동양에서 사용하던 방식으로 첫 대면에 빠르게 상대를 파악할 수 있는 썸네일이었다. 체면(體面)은 몸 체(體)에 얼굴 면(面)을 사용한다. 말그대로 얼굴을 말한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체면은 '남을 대하기에 떳떡한 도리나 얼굴'이라고 표현된다. 사람들에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단번에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최고 효율력이 '체면 유지'에 있다. 인간과의 관계 형성은 알고리즘을 닮았고 인간과의 체면은 '썸네일'을 닮았다. 어떤 사람이 매력적인지는 '체면'을 보고 알 수 있고 거기에 매력을 느끼면 알고리즘 즉 관계는 반응한다. 이는 시청자와 구독자를 늘린다. 모든 확장은 '단리'가 아니라 '복리'다. 왜 형편 없는 영상을 올려도 이미 구독자가 형성된 이들은 10만명이 시청을 하고 아무리 명쾌한 영상을 올린다고 하더라도 구독자가 적은 이들은 10명의 시청자만 있는 것일까. 거기에는 '체면'의 역할이 톡톡히 하고 있다.



 승자는 말로 행동을 증명하고, 패자는 말로 행동을 변명한다. 일본 규슈 지방의 한인촌에서 태어난 가난한 소년, '손정의'는 스스로를 허풍쟁이라고 칭했다. 그는 스스로 퇴로를 끊어버리고 배수의 진을 선택했다. 뒤는 없다. 강물에 빠져 죽거나 맞서 싸우거나 양자택일의 선택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그는 맞서 싸우길 선택했다. 대부분의 사람은 어차피 죽을 목숨이면 강물에 빠져 죽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다만 자신의 자존감과 체면이 우선인 사람은 결코 그 선택을 하지 못한다. '목숨보다 중요한 것' 이라는 것은 사람에게 초인적인 힘을 만들어낸다. 대게 생물에게 목숨보다 중요한 것은 있을 수 없다. 이것을 관념적인 형태로 만들어낸 '체면'은 우리를 초인적인 힘으로 움직이게 만든다. 손정의는 영어도 모르는 상태로 다짜고짜 유학을 해버린다. 창업초기 2명의 직원 앞에서 '30년 뒤에는 10조의 매출을 올릴거야'라고 허풍을 떨었다. 결국 이 직원 두명은 두 달만에 회사를 그만뒀다. 어린 시절부터 항상 말도 안되는 허풍을 떨던 그는 항상 '호언장담'하며 자신의 행동을 예견했다. 이렇게 돌이킬 수 없는 '말'을 뱉은 뒤에는 자신의 체면에 흠이 생기지 않도록 죽을 힘을 다해 움직여야 했다. 그는 체면을 지키기 위한 강한 책임감과 동기부여를 '말'에서 얻었다. 자존감이 강한 사람이 성장하기에 체면을 담보로 거는 것만큼 원동력이 되는 것은 없다. 다만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말 그대로 자신의 체면의 가치를 평가절하한다. 자신조차 평가절하한 체면을 비싼 값어치로 챙겨주는 사람은 없다. 고로 주변의 기대치가 낮아진다. 이들은 대게 자신이 말을 뱉고 지키지 않는 일을 반복한다. 거짓이 반복될수록 자신의 값어치가 낮아지지만 대부분은 자신의 값어치가 낮아지는데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값어치가 낮아진 '체면'은 유튜브 '썸네일'과 같다. 이것은 선택받기 어렵고 시청자를 모을 수 없으며, 관계형성에도 어긋난다. 알고리즘을 타지 못하면 구독자가 늘지 않는다. 결국 자신의 값어치를 아는 자존감과 그것을 지키는 적당한 체면이 승자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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