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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Aug 05. 2022

[영화] 발리우드 최대작_RRR : 라이즈 로어 리볼트


 '발리우드(Bollywood)'라는 말을 한다. 인도 영화 산업을 일컫는 말이다. 인도의 영화산업은 그 수입이 대략 1조 4천억 원에 이른다. 1년에 700편 정도 제작한다니, 인도 영화 산업의 규모를 알 만하다. 오늘날을 기준으로 인도의 인구는 14억600만이다.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인 중국이 14억 4800만이니 별차이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실제 4200만 정도의 차이가 있으니 대한민국 인구 만큼의 차이가 있다. 2024년부터는 중국인구가 인도에 역전되며 세계 최대 인구대국은 '인도'가 된다. 놀랍게도 인도는 연간 2천 500만명이 태어나는 나라다. 2년 정도면 대한민국 인구인 5천만이 태어난다. 인도의 잠재력은 놀랍다. 산아제한 정책으로 급격한 고령화에 빠진 중국의 인구 피라미드 구조는 '한국', '일본'을 닮았다. 규모로 봤을 때, 중국이 감당해야 할 고령자 부담은 '한국', '일본'과 비교가 되기 어렵다. 인도의 경우는 국민 다수가 젊은 층이다. 인구 피라미드가 비교적 건강하다. 젊은 인구가 많아, 인도는 사업적으로 굉장히 매력있다. 카카오엔터는 인도 최초의 웹툰 플랫폼을 출시했다. 이곳이 강력한 문화 소비국이라고 본 것이다. 다수의 젊은 층을 더불어 세계 최대 영화시장을 갖고 있다. 실제로 할리우드와 발리우드는 제작 편수나 티켓 판매량을 비롯해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문화적 특성이 너무 이질감이 있어 다수의 한국인들이 인도의 음악이나 영화를 못 즐기지만 영화 RRR을 보면 꼭 그렇지 않다고 깨닫는다. 알다시피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였다. 인도는 1858년부터 시작해서 90년 간 영국의 식민지였다. 이 역사의 배경이 우리와 닮았다. 영화가 담고 있는 소재도 우리의 정서와 닮았다. 독립을 위해 제국주의와 투쟁하는 모습이다. 영화를 가만 보면 인도 특유의 신나는 음악과 춤이 종종 나온다. 그 분위기가 뮤지컬 음악과는 다르다. 이질적일 것만 같은 인도 음악과 춤이 강렬하게 내부로 들어온다.



 극중 주인공은 '영웅'에 가깝다. 현실성을 떠나 통쾌한 액션을 보여준다. 영화의 전개를 살펴보자니,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했던 우리 고전 소설인 '박씨 전'을 닮았다. '청나라'에게 치욕적인 역사적 경험을 한 탓에 우리는 '판타지 가상 역사소설'을 만들어 읽곤 했다. 이런 대체역사물은 실제 읽고 있으면 통쾌하다. 20년 전에 '1904 대한민국'이라는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완독하진 못했지만 2004년의 한반도가 통채로 1904로 시간이동한다는 역사소설이었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 다만 작가와 독자가 '역사'를 배경으로 원하는 결과물로 이끌어내는 '판타지'는 흥미를 유발하기 충분하다. 대체 역사물을 보고나면 뒷맛은 씁쓸하다. 결국 그러지 못했다는 역사적 결과가 바뀌지 못하고 '스포일러' 남아 있기 때문이다. 다수가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을 비틀어 다른 결과를 만들어내는 소재는 통쾌하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선택 받는다. 이 뒷맛이 씁쓸한 이야기는 영화가 끝나면서 환상이 함께 끝난다. '통쾌'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해야 한다. 즉, 분명한 '선'과 '악'의 개념을 만들어야 한다. 관객이 '선'이 되고 무찔러야 하는 상대가 '악'이 되어야 '미움'과 '증오'라는 감정에 '정당성'이 부여된다. 영화적으로 너무 완벽하게 재밌지만 조금 진지하게 접근한다면 씁쓸한 관점도 버릴 수 없다. 인도인은 '선'이고 영국인은 '악'으로 묘사하는 것이 어딘가, 우리 영화 '봉호동 전투'를 닮았다. 사람을 해치며 사악한 웃음을 짓는 '일본인'과 '영국인'은 어딘가에 존재했을 지도 모른다. 다만 피지배층은 선하고 지배층은 악하다는 이분법적인 인식이 또 다른 '혐오'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사람을 하대하고 죽이고 핍박하는 것에 희열을 느끼는 사람들이 영화와 소설에 아무렇지 않게 나온다. '극'을 재밌게 하는 특성은 인물들의 분명한 캐릭터다. 밍숭밍숭하고 착하기도 하고 나쁘기도 한 캐릭터는 극에 재미를 주지 못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1차 세계대전보다 2차 세계대전의 이야기에 더 흥미를 갖는 이유도 비슷할지 모른다. 2차 세계대전에는 캐릭터가 확실한 인물들이 여럿 등장한다. '히틀러'라던지, '처칠'이라던지. 이들은 완전히 대립되며 캐릭터끼리 강렬하게 부딪친다. 삼국지에도 재미있는 캐릭터와 영웅들이 등장하며 극을 재밌게 만든다. 즉, 극단으로 성격을 묘사해야 극이 재밌어진다. 반사회적 성격 장애라고 불려지는 '사이코패스'는 분명있다. 우리 측이 아닌 상대측은 모두 그런 모습이라는 것이 확률적으로 얼마나 가능할까. 내가 속한 부류의 사람들은 모두 '선'하고 '합리적'이고 '정의'롭고, 나와 반대서는 대척점의 누군가는 '악'하고 '비합리적'이고 '부정'하다는 것은 진실일까. 상대가 부정의하고 악하고 비합리적이어야만 우리가 누군가를 미워하고 증오하는데 정당성을 부여 받을 수 있다. 선한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합리적인 누군가를 미워한다면 그것에는 정당성이 부여되지 않는다. '증오'와 '혐오'는 '사랑'에 정반대되는 감정이다. '사랑'이 인간에게 '필수불가결'한 감정인 것처럼, 그 반대편에 있는 '증오'와 '혐오'도 N극과 S극 처럼 반대되나 붙어 있다. 즉 우리는 상대가 부정의하고 악하고 비합리적이기 때문에 증오하고 혐오하는 것이 아니라, 혐오와 증오라는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상대를 '부정의'하고 '악'하고 '비합리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동시에 같은 '적'을 두고 있는 이들끼리 동질감을 느낀다. 원자폭탄의 아버지인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독일계 유대인이다. 원자폭탄을 개발하는데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친 아인슈타인도 유대인이다. 사실상 증오는 새로운 증오를 만들고 이 증오와 증오의 대립에서 승리한 쪽은 '선', 패배한 쪽은 '악'으로 남는다. 구조와 시스템에 의해 식민국에 파병 온 '군인'도 따지고보면 '사이코패스'나 '악'이라고 볼 수는 없다. 대상을 '인간', '호모사피엔스'라고 규정했을 때, 그들은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제시한 '악의 평범성'에 닮았다. 그들은 공무원이나 군인이다. 충실히 자기 일에 열심히 하는 인물일지도 모른다. 영화에서 상사의 명령에 충실히 복종하던 군인을 무참히 폭살하거나 죽이는 일에 열광하는 것은 우리가 '맞서 싸워야 할 대상이, 인간이 아니라 악마'라는 인식을 했을 때만 가능하다. 



 영화는 신나고 재밌다. 다시 볼 의사도 있다. 후련하고 볼거리도 풍성하다. 다만 영화는 그저 재미로, 영화로만 즐겨야지 이를 통해 '영국인'과 '일본인'은 '악'이고 '인도인'과 '한국인'은 선이라는 이분법적인 인식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 것도 중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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