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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Aug 12. 2022

[종교] 부처는 고대 정신과 의사?_우리말 속뜻 금강경


 비틀즈의 Let It Be에 실린 'Across the Universe'에는 산스크리트어 한 구절이 적혀 있다. 'Jai Guru Deva Om'이 뜻은 '선지자여, 깨달음을 주소서'라는 의미다. 태조 왕건이라는 드라마에서 '궁예'가 읊었던 'Om mani panme hum'도 산스크리트어다. 뜻은 '온 우주에 충만하여 있는 지혜와 자비가 지상의 모든 존재에게 그대로 실현될 지어다'라는 의미다. 흔히 과거에는 사용했지만, 현재에는 사용되지 않는 언어를 '사어'라고 한다. 다만, 이런 사어 중에서 꽤 중요하게 여겨지는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는 언어는 현대에와서 다시 살려내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으로 '라틴어, 히브리어, 산스크리트어'가 그렇다. 이 사어는 당연히 '소리'가 아니라 '글'로 복원한다. '금강경'은 '산스크리트어'로 쓰여져 있으며 이를 '한자'로 변경한 것이 '금강경'이다. 고대 인도에는 '샤카'라는 부족이 있었다. 이 부족에 '카필라'라는 소왕국이 있는데, 카필라 왕인 '수도타나'과 '마야부인'사이에 남자 아이가 태어났다. 이 왕자의 이름이 '싯다르타'다. 그는'샤카족'의 소왕국 왕자였다. 그는 왕자의 지위를 버리고 '고행'의 길을 선택한다. '고행을 하는 사람' 혹은 '성자'를 '무니'라고 부르는데, 싯다르타를 사람들은 '샤카무니'라고 불렀다. '샤카족의 성인' 혹은 '고행자'라는 의미다. 이를 한자로 가지고 오면서 '석가모니'라고 음역했다. 석가모니는 인간의 '감정'과 '정신세계'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인간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갖는 삶에 대한 고통의 원인을 고민하던 고민한다. 그 근본 원인과 해결책을 알고자 했다. 유대교, 그리스도교에서 '방해자'를 일컫는 '사탄'은 쉽게 '악마'로 묘사하지만, 기본적으로 인간의 삶을 유혹하고 방해하고 꾀어낸다. 싯다르타도 인간을 '고통'으로 이끄는 무언가를 연구했다. 기본적으로 인간을 '고통'으로 이끄는 것은 '감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현대 정신의학에서 '감정'은 '교감신경계'의 각성으로 인해 발생한다고 정의했다. 즉, 이는 우리 뇌의 해석일 뿐이라는 것이다. 즉, 기쁘거나 슬프거나, 분노하거나의 감정은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들지만, 정작 이것은 '우리 뇌의 해석'일 뿐이지 '외부에 실재하는 것이 아닌 허상'이라는 깨달음이 중요하다고 봤다.



 아이가 태어나면 3개월 이전에는 없던 감정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좋다'와 '나쁘다'라는 감정이 생겨난다. 다시 5~6개월이 지나면 '나쁘다'는 감정은 '분노'와 '혐오'로 분화한다. 9개월이 되면 이는 다시 공포, 두려움 등으로 분화한다. 인간의 감정이 둘에서 넷으로, 넷에서 여덟으로 제곱으로 분화해간다. 수만은 가지로 뻗어나간 감정을 다시 도돌이표처럼 돌이켜보면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돌아간다. 즉, 슬프거나 기쁘지 않은 최초의 상태를 깨달을 수 있다. 단지 우리의 감정 분화로 인해 얻게 된, 허상을 알면 우리는 인생의 '고통'에서 조금 더 자유로워진다. '붓다'는 결국 '깨달은 자'라는 의미고 이를 한자로 표기하여 '부처'라고 한다. '싯다르타'는 이런 '감정의 유혹'을 벗어나면 '고통'에서 자유로워진다는 점을 깨닫고 여러 부처 중 하나로 인도 북부을 돌아다니며 가르침을 펼쳤다. 이렇게 삶의 고통에서 구제하겠다는 생각으로 자신의 깨달음을 설파하고 다닌 싯다르타'는 여러 제자를 양성하고 있었다. 이 제자 중에 어떤 상인 집안 출신인 자가 있었는데, 이 제자의 이름이 '수부티'다. '금강경'과 '반야심경'은 싯다르타의 10대 제자 중 하나인 '수부티'가 '싯다르타'에게 질문하도 대답을 듣는 과정을 모은 대화문이다. 금강경은 '수보리야~'하고 대답하는 '싯다르타'의 말로 하여금 깨달을 주게 한다. 금강경은 '금강반야바라밀경'이라고 부르는데, 이또한 '와즈라체디까 쁘라갸빠라미따'라고하는 '산스크리트어'다. 이 말은 '마음 속의 분별, 집착, 번뇌를 깨부수는 깨달음의 지혜'라는 뜻이다. 대략 6천 자 정도 되는 짧은 글인데, 오디오 북으로 들을 경우 1시간이 조금 넘으나, 속도를 빠르게 하여 들으면 40분 내외로 들을 수 있다. 불교는 기본적으로 '감정'의 매커니즘을 이해하여 편한 삶을 사는 것을 설파한다. 즉, 불교의 최종 목표는 '깨달음'이다. '중생'이라고 부르는 '다수인'에게 '감정'이 실재하지 않으며 '허상'이라는 사실을 설파한다. 이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대표적인 원불교 신자였다. 원불교는 일제시대 당시, 많은 지원금을 통해 독립을 지지했던 한반도 토종신흥 종교로 알려져 있다. 흔히 '원'을 숭배하는 종교로 알려져 있으나 '원'이 가진 의미가 우주삼라만상을 의미하기에 조금 더 깊다고 볼 수 있다. 1916년 소태산 박중빈은 '금강경'을 읽고 자신이 깨달은 진리와 일치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실 따지고보면 금강경은 대한민국 6대 종교의 2개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헷갈려 하지만 원불교는 '불'이라는 글자가 있지만, 불교와는 완전히 다른 종교다. 금강경은 '관념'이 '허상'이라는 것을 깨닫기를 종용한다. 즉, '큰 산'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큰 산'이라고 부르기 때문이지, 그 자체는 크다고 할 수 없다. '맑은 물'이라고 부르지만, 그 자체는 '맑다'라고 할 수 없다. 모든 것은 관념이 만들어낸 허상일 뿐, 더 큰 것에 비하면 크다는 것은 '진리'가 아니게 되고, 더 맑은 것 옆에 서는 맑은 것도 '진리'가 아니게 된다. 즉 우리가 말하는 감정들도 모두 '관념'이 만들어낸 허상이기에 그것을 깨닫는자인 부처가 되고자 노력하고 누구나 노력하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어떠한 감정의 유혹에도 자유로운 상태를 Vimoka라고 하고 뜨거운 번뇌의 불을 끄는 것을 Nivana라고 하는데 이 둘을 한자 음역했을 때, 해탈과 열반이라는 의미가 된다. 즉, 허상의 유혹에 넘어가 고통 속으로 들어가거나 타오르는 번뇌의 불을 꺼서 평온한 상태가 되는 것을 최고의 경지라고 하며, 이는 누구나 


'수양'이라고 부르는 훈련을 통해 이를 수 있음을 알린다. 불교는 종교가 아니라 '철학'이라는 말도 있다. 불교는 굉장히 수용성있는 교리를 갖고 있어, 역사와 시간의 흔적에 따라 각 지역의 토속신앙과 융합하고 발전했다. 지금에 와서는 분명 '종교'이기는 하지만 분명 수천년 전, 사람들의 정신건강을 책임지던 의학의 갈래이지도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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