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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배우 박정민' 친구되는 법_쓸 만한 인간

by 오인환


배우 '박정민' 님의 책이다. 세대마다 대표 배우가 있다. 60대 최민식, 50대 송강호, 이병헌. 40대는 정우성, 이정재. 30대는 박정민, 유아인. 모두 좋아하는 배우들이다. 그들은 배역을 연기하지만 세대를 대표하기도 한다. 20대의 젊은이가 노인을 연기하거나, 60대의 노배우가 학생 배역을 맡는 것은 '연기력'과 상관없이 공감받지 못한다. 배우 한석규는 '배우로서 나이 먹는 것에 기다리는 즐거움이 있습니다'고 했다. 세대마다 경험한 일이 다르고, 경험하는 일이 다르다. 배우는 최선으로 자기 세대를 대표하고 표현한다. '연기자'의 의식과 무의식은 관객과 공유하는 무언가가 있다. 어린시절, 박정민 님은 '다마고찌'를 가지고 놀았을 것이고 일요일 아침 8시에 디즈니만화동산을 보기 위해 TV 앞에 있었을지 모른다. 12간지를 외기 위해 '똘기 떵이 호치 새촘이...'로 시작하는 '꾸러기 수비대' 만화 주제곡을 읊었거나 '브루노와 보챙'이라는 프로그램을 어렴풋 기억할지 모른다. 싸이월드와 버디버디 감성을 알고 있고 국민학교 2학년에 '국가부도'를 봤을 것이다. 그로인해 부모 세대의 경제적 어려움을 보고, 성인이 막 되었을 때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보며 위축했을 지도 모른다. 같은 시대를 같은 나이에 통과한 공감대는 다른 나이가 포용하기 힘들다. 또래 배우에게 더 호감을 갖는 이유다. 2년 전,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라는 영화를 봤다. 거기에는 트랜스젠더 여성 역이 있었다. 배우 박정민을 모르고 봤던 영화였다. 영화는 재밌었지만 내용이 기억 나진 않는다. 기억에 강하게 꽂힌 건, 영화가 아니라 배우였다. 돌아와 배우를 검색해봤다. '박정민'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렇구나' 지나갔다. 얼마를 잊고 지냈다. '그것만이 내 세상'이라는 영화를 봤다. '이병헌 배우' 주연작이라고 했다. 개봉한지 꽤 지난 영화다. 영화에는 '오진태'라는 장애청년이 나왔다. '실제 장애배우'를 고용했다고 생각했다.



장애청년을 연기한 배우가 '트랜스젠더'를 연기한 배우와 같은 사람이었다는 사실은 그 뒤에 알았다. 그럴리가 없다고 확신했다. 분명 얼굴도 달랐고 목소리도 달랐다. 동명이인이라고 확신했다. 뉴스를 찾았다. '박정민'이라는 한 명의 연기가 확실했다. 그가 대뷔했다는 '파수꾼'이라는 영화가 궁금했다. 그날 저녁 '영화 파수꾼'을 감상했다. '2011년' 개봉작,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 얼마 후에 출연했을 것이다. 표정과 말투, 분위기가 그 때의 나와 친구들을 상기시켰다. 배우들끼리의 합은 '연기'인지 '실제'인기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 뒤로 '박정민 배우'가 출연한다면 '보장됐다'고 떠올린다. 괜찮은 작품들에 다수 출연하면서 충분히 '거들먹'거릴 수 있는 위치가 됐다. 적당히 이미지 관리를 해도 '그럴 수 있지' 싶을 위치다. 그러나 그는 가식없고 꾸밈없고 소탈했다. 그가 집필한 '쓸 만한 인간'이라는 수필은 그 생각을 확신으로 바꿨다. 굉장히 '긍정적'이고 '매력적인 배우'다. '밀리의 서재'를 구독하면 그의 목소리로 책낭송을 들을 수 있다. 책의 감상평은 이렇다. 남자 학교를 다니면, 친구 중 있을 법한 웃긴 녀석이 있다. 그 녀석과 학교 쉬는 시간에 웃긴 이야기를 하며 키득거리는 느낌. 진솔하고 재밌다. 능청맞은 그의 연기톤이 낭독에도 적용됐다. '오디오북'으로 들으니 더 재밌다. '책'이 아니라, '라디오'를 들은 느낌이다. 2시간이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었다. 시간은 더 짭게 느껴졌다. 적당히 찌질한 그의 과거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그만큼이나 찌질한 내 과거가 함께 떠오른다. 모두가 아닌척하지만 사실 모두가 그렇다. 모두는 적당히 찌질한 과거와 현재를 살고 있다. 그것을 인정하고 표현한 연기가 공감받는 이유다. 예전에 가수 '휘성' 님과 '윤종신' 님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 둘의 노래는 절절한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절절한'이라는 표현이 아닌 '찌질한'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아닌 척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이다. 속마음을 가장 그럴듯 하게 포장해야 할 '배우'에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잘 구현해야하는 것은 '모두가 아닌 척 하는 그런 숨겨진 찌질함 들일 것이다.



그는 독특하게도 '고려대'를 자퇴했다. 처음부터 '흉내'만 전공한 이에게 생길 수 없는 '공감능력'을 갖고 있다. 그는 또래의 다수와 함께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냈다. 함께 진로를 고민하고 학업 스트레스와 진로고민을 했을 것이다. 흉내내는 사람이 아니라 그 흉내의 당사자였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과외를 진행하기도 했다. 배우의 본질은 '흉내'지만, '흉내'의 본질은 '상상'이 아니라 '경험'이다. 그의 연기를 신뢰하는 이유다. 그는 흉내라는 '거짓'이 아니라 '공감'이라는 '진실'을 말한다. 연기뿐만 아니라 그의 에세이는 더 재밌었다. 그의 낭독은 더 더욱 재밌었다. 그는 만가지 재능을 갖고 있어 보이지만, 자신의 부족한 이야기를 충분히 유머러스하게 이야기하며 정작 독자를 다독인다. '나도 이렇습니다. 당신도 충분히 쓸만한 인간입니다'라고 말이다. 그는 나를 모른다. 그러나 그는 독자가 얼마나 가치있는지를 이야기한다. 마치 나에 대해 알고 있는 듯 말한다. 누군지 모르는 이가 누군지 모르는 이를 위로하는 일에 이상하게 위로받는다. 영화 '동주'에서 '송몽규 역'을 맡은 일을 들었다. 송몽규는 '윤동주'에 가려져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으나, 윤동주의 사촌이며 독립운동가이자 문인이다. 배우 또한 낯선 이름에 당황했으나 자신이 맡은 역을 이해하기 위해 엄청난 고민을 한 흔적이 느껴졌다. 우리는 극을 '주연'과 '조연'으로 나누지만 극을 벗어난 세상에서 '조연'과 '주연'은 없다. 모두가 주연이며 그는 '동주'라는 영화에서 '송몽규'라는 인물을 연기했다. 사람들은 '동주'를 기억하지만 그는 송몽규라는 인물을 기억시키고자 고민했다. 자신이 맡은 실존인물에 대한 애착을 이렇게 가져야 믿음직한 배우가 되는 구나 싶다. 그의 책은 가볍고 재밌고 유쾌하다. 아이와 잠을자다, 밤중 깨어난 새벽 3시, 그의 이야기를 듣고 키득거리는 소리가 크지 않도록 입을 막고 웃었다. 어린 시절 선생님께 걸리지 않고 떠들던 그 시절로 돌아간 듯 하다. 그는 나를 모르겠지만, 어쩐지 나는 그를 조금 더 알게 된 듯하여, 뭔가 혼자 친한 친구가 생겨버린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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