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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이제 수년간 책 한 권 안 읽어도 되겠다

위대한 시크릿 독후감

by 오인환


살면서 가장 여러 번 읽었던 한 권의 책을 꼽으라면 '론다번'의 '더 시크릿'이다. '더 시크릿'은 한때, 인생 바이블이었다. 언제나 가방에 넣고 다니며 읽었다. 음성으로 듣고 여러 언어로 읽었다. '끌어당김의 법칙'은 '만유인력'을 닮았고 '생각대로 이뤄지는 것'은 '양자역학'을 닮았다. '생각하면 이루어진다'의 효과는 실재했다. 실제 겪은 일들 중, 그렇다고 여겨지는 부분도 있다. 다만 더이상 가방속에 '더시크릿'은 없다. 반복해서 읽지 않는다. 커피를 마시고 싶다고 간절히 원하면 커피가 생기고, 돈을 간절히 원하면 돈이 생기는 '마법' 따위를 신봉하지 않는다. 이 책이 나에게 남긴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긍정의 힘'이다. 결국 시크릿은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에 대한 높은 장벽을 허물어 뜨린다. 대부분의 인간은 '대부분의 것'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면 어쩌나?'하는 고민과 걱정 때문에 행동을 주저한다. 시크릿은 '간절히 바라고, 생생하게 떠올리는 이미지트레이닝'을 실천케하고 주저하던 행동을 그저 해버리게 만든다. '할 수 있다'는 믿음은 '실제' 행동하게 만든다. 원래 인간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 때문에 행동하지 못한다. 알지 못하는 불투명한 미래는 행동의 주저함을 만든다. 영화 '올드보이'에 다음과 같은 대사가 있다. '인간은 상상력이 있어서 비겁해지는 거래, 그러니까 상상을 하지 말아봐, 용감해질 수 있어.' 인간이 하는 상상은 대부분 두려움을 만든다. '~하면 어쩌지?'하는 상상 때문에 두려움이 생기고 그것은 행동하지 못하게 만든다. 실제로 야생 호랑이나 사자와 같은 맹수의 울음소리는 '저주파'를 갖고 있다. 호랑이의 으르렁거리는 소리는 20Hz 미만의 초저주파 불가청음이다. 인간과 동물은 이 소리를 들으면 도망치지 못하고 온몸이 얼어붙어 버린다. 두려움은 인간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다. 우리가 실재한다고 믿는 대부분의 세상은 '움직임'을 통해 움직인다. 고로 '더시크릿'은 불투명한 미래를 투명하고 긍정적이게 바꾸게 하고 '머릿속'으로 수 십번, 수 백번 시뮬레이션했던 생생한 행동력은 너무나 쉽게 밖으로 발산된다. 결국 긍정적이고 행동력있는 사람은 부정적이고 행동력 없는 이들보다 어떤 것을 이룰 '확률'이 높아진다. '더 시크릿'은 지금의 내 '바이블'은 아니지만 책이 설명하는 원리와 다르게 효과가 있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법칙은 '유사과학'과 '종교'의 범주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든다. 당신의 '소망'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덜 간절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자칫 위험하기도 하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이 책에 빠저드는 이유는 책의 초반에 말하는 '우리는 전기의 원리를 모르지만, 그것을 사용할 수 있다.'는 한 문장 때문이다. 이 말은 일리가 있으며 '말도 안되는 것들'을 믿을 수 있게 한다. '중력'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믿던지, 말던지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처럼 말이다. 모든 것은 확률이다. '무조건 된다'는 것은 없다. 그럴 확률이 높아질 뿐이다. '그럴 확률이 높아진다'는 말은 조금 더 현실성있고 신뢰가 간다. 그러나 사람들은 '확실한 것'을 좋아한다. 고로 '신뢰성'이 곧 '도서 판매'와 '파급력'을 갖진 않는다.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말보다는 '무조건 그렇게 된다'는 것에 사람들은 열광한다. 표현의 차이지만 이것은 70%정도의 높은 확률을 100%라고 치부해버림으로써 30%의 오차를 만들어낸다. 이루어지지 않음의 피곤도는 점차 높아지고 사람들은 결국 '거짓'으로 여긴다. 다만 목표를 이룰 확률이 70%면 상당히 높은 확률이다. 론다 번의 15년만의 책은 '위대한 시크릿'이다. 도서는 '더 시크릿'과 전혀 상관없다. 어쩌면 저자인 '론다번'의 철학에 큰 변화가 있어보인다고 느껴질 정도다. 첫번째 '더 시크릿'보다 두 번 째 '위대한 시크릿'이 조금더 신뢰가 간다. 사실 '위대한 시크릿'은 '철학서'에 가깝다. 이 또한 '론다번'이 처음 제시한 내용은 아니며 이미 '불가'와 '도가'에서 설명하던 사상들이다. 이 책은 '얻고자 하는 바람'과 같은 세속적인 목표를 이루는 목적이 아니다. 이 책은 스스로가 누구이며, 어떻게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는지를 말한다. 책이 말하고자하는 바는 모호하지만 분명하다. 어차피 '불가'와 '도가'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더 모호하다. 더 모호한 것을 '조금 덜 모호하게' 정리한 것이다. 이 정도도 분명 훌륭하다고 느낀다.



"What is real?"


현실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나'라는 것은 무엇인가. 스스로 '자신'이라고 믿는 것에는 '신체'가 있다.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신체를 '나'라고 생각한다. 손과 발, 코와 입. 이런 것들 '나'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렇지 않다. 만약 불의의사고로 손과 발을 잃었다면, 우리는 '자신'을 잃은 것인가? 그렇지 않다. '자신'은 역시나 존재하며 자신의 '손'과 자신의 '발'을 잃었을 뿐이다. 만약 '코'와 '입'을 잃는다면 어떤가? 그것 또한 '자신'을 상실한 것이 아니다. 결국 '육체'는 나를 담고 있는 한낱 고기덩이일 뿐이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인가. 만약 사랑하는 누군가와 이별을 했다. 슬픈 감정을 느낀다. 그 감정은 '나'인가? 그렇지 않다. 육체의 '손'과 '발'이 떨어져도 여전히 '나'인 것처럼, '슬픔'이라는 감정도 영원치 못하고 언젠가 흘러가버린다. 그것이 흘러가 버린 뒤에도 여전히 '나'는 존재한다. 그렇다면 슬픔'은 '나'의 일부가 아니라 독립적인 감정일 뿐이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인가?' 나는 육체가 담고 있고, 감정과 생각도 아니며, 다만 육체와 생각을 지켜보는 '알아차리는 주체'일 뿐이다.



한번 상상해보자


몸을 없앤다.


마음을 없앤다.


이름을 없앤다.


지나온 삶과 과거 전체를 없엔다.


모든 기억과 믿음, 생각을 없앤다.


그리고 무엇이 남는지 주목한다.


남아 있는 것은 오직 알아차림 뿐이다.



당신은 몸이 아니다. 당신은 생각도 아니며, 당신은 감정도 아니다. 당신은 그 모든 것을 알아차리는 주체다. 당신은 매순간, 매호흡, 말투, 소음 모든 것에 대해 알아차리는 존재다. 당신은 '알아차림'으로 온전해진다. 즉, 대부분의 사람들은 '육체'가 이끄는대로, 생각과 감정이 이끄는대로 살아간다. 당신이 '자동차'를 탔다고 자동차가 '당신'이 되지 않는다. 육체는 당신을 담는 물질이자 도구일 뿐이다. 감정도 그렇다. 샤워기 물줄기가 머리를 두둘기는 느낌이나 발바닥이 땅에 닿는 느낌, 지나가는 바람소리나 음식을 씹고 식도로 넘어가는 느낌, 이 모든 느낌을 생생하게 지켜보며 알아차리는 주체야말로 '온전한 자아'다. 마음 당신을 담는 그릇이며, 그 그릇은 육체라는 다른 도구에 다시 담겨져 있다. 이 도구를 확장시키다보면, 자신을 담던 '직업', '사회', '국가' 등을 만난다. 결국 자아는 확장하면 할수록 넓어지고 상대방이 되기도하고 전체가 되기도 하며 우주가 되기도 한다. '나는 누구인가' 이것은 단순히 '물질욕'을 채우기 위해, '강하게 생각해서 끌어당기는 법칙'과 다르다. 책은 가볍지만 가볍게 읽으면 안된다. 고요한 시간에 조용히 한 문장과 한 문장을 곱씹고 읽어야 한다. 정말 괜찮은 책은 한 권으로도 충분히 인생의 가치관을 바꿀수 있다. 이미 '본전'을 회복한 이상 그 뒤로는 모두 수익권이다. 이 책 이후에 읽는 모든 깨달음들은 보너스라고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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