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보, 백성을 깨우다 독후감
독과 약은 따로 있지 않고 그 쓰임에 따라 나눠지는 법이다. 드라마 '허준'에서 '허준'은 광해군의 학질을 다스리기 위해 비상과 소금, 빗물로 약을 만든다. 비상은 '비석'을 불에 태워 가루로 빻은 분말이다. 이 물질은 독성이 너무 강해 살충제로 사용된다. 대게 조선시대 사약에 쓰인 이 약재를 '허준'은 '광해'를 치료하기 위해 사용한다. 은수저를 까맣게 물들이는 이 독약은 백혈병 치료제이기도 하다. 독과 약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칼은 흉기이면서 훌륭한 조리 도구다.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따라 그것이 담고 있는 본질도 달라진다. '언론'은 '말씀 언(言)'에 '논할 논(論)'을 사용한다. 어떤 사실이나 현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을 말한다. 언론은 말을 퍼트리는 매체지만 이들은 여론(輿論)을 만든다. 여론은 '수레 여(輿)'에 '논할 논(論)'을 쓴다. '여론'은 사회 구성원 대다수에게 지지를 받는 의견을 말한다. 이것은 즉, 상품 뿐만 아니라 '정보'도 마케팅 능력이 중요하다. 아주 좋은 상품이라도 마케팅이 부족하면 시장에서 외면 받는다. 아무 형편없는 상품이라도 마케팅이 훌륭하여 예외적으로 인정받는 경우가 있다. '언론'은 쉽게 말해 '정보 마케팅'을 담당하는 셈이다. 어떤 정보를 담을지, 어떤 정보를 담지 않을지,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혹평'으로 다룰지, '호평'으로 다룰지 이 모든 골자를 제작한다. '조보'는 승정원의 발표사항을 필사하여 배포하던 일종의 민간 심문이다. 일정하지 않은 종이 위에 초서체로 날려쓴다. 언론의 역할 중 '신속'과 배포' 중 조보는 '신속'을 택했다. 지금과 다르게 조보는 사람의 손으로 필사했다. 빠르게 필사해서 다량 배포하기 위해, 글씨가 뭉게지는 '필기체'를 피할 수 없던 모양이다. 누군가는 신속이 생명이라고 여기고 누군가는 '정확'이 생명이라고 여긴다. 다면적인 특성의 언론은 역시나 다양한 '대중의 가치관'을 만나면서 다르게 해석되기도 한다.
선조수정실록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민간 업자들이 조보를 활자 인쇄하여 판매하니, 많은 이들이 편하게 여겼다. 그러나 시행 두어 달 후에 우연히 임금이 이를 알고 분노하여 관련자를 처벌했다.' 신문이나 인터넷 등 편리하게 정보를 접하던 현대와 달리 조선시대는 왕실과 조정 혹은 국정에 대한 소식을 알 방법이 없었다. 이에 승정원에서는 그날그날 소식을 모아 전국으로 배송했던 모양이다. 이 500년이 된 일간 신문을 소재로 소설이 집필된 것은 과거를 통해 현재를 들여다 보고자 한 것이다. 소설의 '조보, 백성을 깨우다' 소설의 주인공은 '여성'이다. 그는 권력에 맞서 진실을 알리려고 노력한다. 얼마 전, 미국 언론인 '셰릴 앳키슨'의 '내러티브 뉴스'라는 도서를 읽었다. 도서에는 '언론인'으로써 진실에 대한 고뇌가 담겨 있었다. 그렇다. 오랜기간 '군부'와 '독재'의 정치를 경험한 우리의 역사를 살피면 대중이 우리 언론을 향하는 시선이 어떨지 그려진다. 그러나 앞서 말한 '내러티브 뉴스'를 보자면, 우리가 갖는 고민이 꼭 우리의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대부분의 문제는 현대 민주주의의 중심이라는 '미국'에서도 갖고 있었다. 언론이 갖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발생한다. 대한민국 언론자유지수는 놀랍게도 아시아 1위이다. 일본과도 차이가 꽤 큰편이다. 의외로 대한민국 언론자유지수는 미국보다 높다. 우리의 언론인과 미디어는 세계적으로 봤을 때 외부의 직, 간접적인 압력에 자유로운 편이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가진 현대사의 문제는 '언론'이 '권력'을 감시하듯, '대중'이 '언론'을 감시하도록 만들었다. 대한민국은 지나치게 빠른 '근현대사 변화'를 겪었다. 이 변화 덕분에 실제 사회와 '대중인식'에는 큰 차이가 발생했다. 이것이 우리 '언론'을 '대중'이 감시하는 효과를 만들었다. 온라인에서 '기레기'라는 말이 있다. 대중이 평가가 더 엄격해 지면서 '언론'은 '권력'의 감시에서 자유로워지고 '대중'의 감시에서 덜 자유로워졌다. 개인적으로 언론에게는 불편한 일이겠지만, 사회적으로 괜찮은 현상이라고 여기기도 한다.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언론도 장악하여 여론을 조작하는 김판서와 그에 맞서는 '민간 언론인'의 이야기는 우리를 되돌아보게 한다. 꽃은 피어날 시기가 왔다고 판단을 하면 미루지 않고 핀다. 나중에 된서리를 맞는 한이 있더라도 그렇다. 신문과 뉴스를 보면 굉장히 시끄럽다. 국가가 엉망이고 언론이 엉망이고 사회가 엉망인 것처럼 보인다. 누군가는 누군가를 비난하고 다시 누군가는 누군가를 비난한다. '박노해' 시인은 민주주의는 시끄러운 것이라고 했다. 조용한 나라는 독재의 나라이며 살아있는 나라는 권력자에게 언제든 묻고 감시하는 나라라고 했다. 민주주의는 불안정하고 불완전하다. '민중'이 주인인 나라라는 모호한 '권력구도'의 정치 체제다. 고로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정치인과 기업인의 잘못을 온 국민이 스마트폰과 TV를 통해 지켜보고 지탄을 하며 서로를 경계한다. 소설에 '글은 권력을 향한다'라는 표현이 있다. 정보를 담는 가장 중요한 수단인 '글'을 알고 이해하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다. 같은 글을 읽고도 이해하는 이와 이해하지 못하는 이, 잘못 이해하는 이들이 있는 것을 보면 글을 담은 사람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글을 이해하는 능력을 각자가 기르는 것이기도 하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