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영의 화해
러시아 대작가 톨스토이의 단편집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예전에 한 농부가 살고 있었는데, 이 농부네 암탉이 이웃집으로 넘어가서 알을 낳은 것이다. 농부의 며느리는 이웃집으로 찾아가 '닭이 낳은 알'을 달라고 했다. 그러기에 이웃집 며느리는 자신들은 남의 집 달걀을 주운 적이 없다'하여 싸움이 번진다. 이 두 집의 싸움은 점차 아들과 농부도 함께하며 점차 소송과 재판으로 이어졌다. 남부러울 것 없는 이 농부는 이제 마을 사람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의 싸움꾼이 됐다. 어느날인가 농부는 재판에서 승리했으나 이웃집 농부가 자신의 집 헛간에 불을 붙이는 것을 보게 된다. 농부는 이웃집 농부에게 벌을 주고 싶었다. 도망가는 이웃집 농부를 쫓아가던 농부는 이웃집 농부를 잡으려는 순간 나무 막대기에 머리를 맞고 쓰런진다. 한참이 흐르고 정신을 차려보니 이웃집 농부가 붙여 놓은 헛간의 불은 점차 확산되어 결국 그 마을의 절반을 태웠다. 농부는 마을 절반을 태우고 잦아드는 불길을 보며 이렇게 되뇌였다. "불 붙은 짚단을 바로 꺼내 밟아서 껐다면... 그냥 짚단만 끌어 냈었더라면..."
별거 아닌 감정에 앞서서 정작 중요한 것을 놓쳐버리면 언제나 후회가 발생한다. 당장 급해 보이는 어떤 것을 처리하기 위해, 마음 속에 작은 불씨를 외면하고 있진 않을까. 아이를 양육하는 부모의 책이라고 생각하고 꺼내 읽었던 '오은영 박사의 '화해'라는 책의 마지막 부분이다. 언제부터 '오은영'이라는 이름을 자주 접하게 된다. 꽤 오래 전에 '우리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프로그램에서 그녀를 처음 봤으나, 정확히 그녀가 누구인지. 최근까지 알지 못했다. '가정 상담사'라고만 생각했던 그녀의 직업이 '의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그녀를 '의사'로 생각치 못한 이유는 그녀의 말투 때문이었다. 다분히 의사하면 떠오르는 말투는 차갑고 이성적일 것이라 여긴다. 그녀가 TV에 나와서 오랫동안 소개될 때도 그녀를 의사라고 생각치 못한 것을 보면 '의사'에 대한 편견과 그녀의 소통 내공이 함께 느껴진다.
말 듣지 않는 아이에게 '훈육' 방법을 알려주던 '상담사'의 책이라고 여겼다. 당연히 '육아관련 서적'이라고 여겼다. 다시 말하자면 분명하게 아니다. 이 책은 육아에 관한 내용도 있으나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에 관한 내용이다. 책에는 수많은 '나'가 존재한다. 사람들마다 각자 처한 여러가지 상황이 있고 그마다 느끼는 감정들이 있다. 여기에서 '오은영 박사'는 '부모'의 역할을 강조한다. 스스로가 부모가 됐을때,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하며, 나의 부모에게는 '그들도 완벽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라고 한다. 도서는 '의학박사'로서의 조언이 들어가 있지 않다. 그녀는 도서에서 '의학적 견해'가 아닌 상담사로서 조언한다. 먼저 겪어 온 부모의 노하우로 이야기한다. 책을 읽으면서 그녀가 의사라는 사실은 책을 읽는 동안도 전혀 느껴지지 못했다. 쉬운 것을 어렵게 말하는 이와 어려운 것을 쉽게 말하는 이들 중 누가 내공이 깊은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려운 용어를 사용하고 어려운 말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동경을 한다. 굳이 사용하지 않는 사회적 방언이나 사어 혹은 어려운 전문 용어를 사용하여 자신의 전문성을 내새우고자 한다. 다만 정말 깊은 내공은 자신의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상대에게 쉽게 풀어 설명하는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그녀의 내공이 감탄이 나왔다. 온라인에서 '즉문즉설 강의'를 하시는 '법륜스님'의 강연을 종종 듣는다. 그의 상담은 아이러니하게도 모순적이다. 고부갈등의 고민을 상담한 며느리에게는 '시어머니에게는 잘못이 없다.'라고 말하고 비슷한 고민을 상담한 시어머니에게는 '며느리에게는 잘못이 없다'고 말한다. 문제를 삼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데 문제를 삼으면 문제가 된다고 한다. 오은영 박사와 법륜 스님의 말씀이 일맥한다.
세상에는 절대적인 진리값이 존재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모든 상황과 관계는 상대적이다. 절대적이지 않다. 모두는 부모가 있고 부모가 되기도 한다. 내가 부모가 됐을 때, 해야하는 것들을 부모인 상대에게는 요구해서는 안된다. 책을 읽다보면 '흠찟'하는 부분도 있다. 절대로 안되거나, 무조건 해야하는 일들을 사회가 정해두는 경우가 있다. 부모를 미워하는 것은 괜찮을까? 오은영 박사는 이에 '괜찮다'라고 말한다. 언젠가 딸 하율이가 말했다. '아빠가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어' 그러나 오은영 박사는 이 말에 동요하지 말라고 한다. 이는 단순 감정의 표현일 뿐이다. 사람은 '부모'가 아니더라도 언제나 긍정적인 감정만 갖게 될 순 없다. 사람과 사람이 관계하면서는 다양한 감정을 느낀다. 다만 유독 그 대상이 '부모'이기 때문에 그 감정을 가졌다는 사실만으로 죄책감을 갖는 것 또한 옳지 못하다고 한다. 미운 감정도 미운 감정으로 인정하고 힘들었다면 힘들었다고 고백하라고 한다. 아이가 내뱉은 말은 스스로가 가진 감정을 최대한 표현한 방법이니 거기에 이성적으로 의미부여를 할 필요는 없다고 한다. 떠올려 보면 그렇다. 아이가 감정적으로 뱉은 말에 모두다 의미부여를 할 만큼 우리는 '멍청이'가 아니지만 따지고보면 '멍청이'처럼 의미부여를 하곤 한다. 사실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가 아니다. 어떤 관계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나'다. 상대가 어떻게 하길 바라는 마음은 갈등이 원인이 되고 '내'가 어떻게 하는 것은 '해결'의 방법이 된다. 문제와 해답은 모두 내가 갖고 있다. 해결책이 상대에게 있다는 믿음은 언제나 갈등된다. 스스로를 살피고 스스로를 인정하고 스스로를 돌보자. 책은 '나'라는 아이를 육아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