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시대
메타버스, 이미 시작된 미래 독후감
400년 전으로 돌아갔다고 해보자. 우리는 네덜란드의 어떤 배를 보게 된다. 이 배는 '무역선'이다. 1595년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는 한 상인이 있었다. 그는 '극동 기업'을 조직했다. 여기에 선원과 상인들를 모집하고 선단을 동쪽 바다로 보냈다. 이 무역선은 최초에 4척이었다. 이 배들은 240명의 선원과 상인들 태우고 네덜란드를 출항했다. 1597년 이 무역선에는 다시 암스테르담에 도착했다. 30개월 후, 이들이 도착했을때, 배는 3척 선원은 87명만 생존했으나 그들이 싣고온 배에는 후추나 사프란, 설탕 등의 값비싼 향신료가 가득했다. 배를 건조하는데 들어간 비용은 이미 첫 항해로 모두 회수했다. 최초 배를 건조할 때 투자자들에게는 16.5%의 배당금을 지불됐다. 극동으로 배를 보내면 돈이 된다는 사실은 사람들 입에 빠르게 오르고 내렸다. 전국에 투자 열풍이 불었다. 상인들은 배를 더 건조하기로 했다. 1598년 이들은 22개의 배로 2개의 선단을 만든다. 또한 8척의 배로 다시 엄청난 보물을 싣고 돌아왔다. 이들의 수익률은 400%가 넘었다. 1601년 극동으로 향하는 배는 65척으로 늘었다. 점차 극동으로 향하는 배가 많아지자, 1602년 이들은 극동으로 향하는 회사를 통합하기로 한다. 이렇게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가 탄생했다. 보장된 수익을 위해 사람들은 아낌없이 자본을 내놓았다. 그들의 자산을 지켜야 할 용병도 고용해야 하고 긴 항해에 적합한 배를 건조해야 했다. 배는 떠나고 나면 십 수 개월에서 수 십 개월에 걸처 항해를 하고 돌아왔다. 투자규모를 확대하고 오랜 기간에 묶여있는 투자금을 회수해야 하는 유동성이 필요한 이들을 위해 '동인도회사'는 이 '배'에 대한 소유를 분할했다. 기존 상인들과 하녀, 총리할 것 없이 소액 투자자들이 지분을 나눠 가져가면서 유동성이 발생하고 배를 싣고 돌아오면 배당을 나눠 주겠다는 증서를 종이에 작성해 준다. 이것이 최초의 주식이다.
'주식'은 그냥 '믿음'을 보증하는 수단이다. 배당을 보장한다는 증서는 십 수 개월, 수 년, 길게는 수 십년 동안 보장됐다.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니 사람들은 종이 문서를 거액을 주고 사고 팔기 시작했다. 본질은 '배'의 소유권을 갖고 배당을 나눠 갖는 의미지만 그들이 거래하는 것은 '종이'였다. 이것이 몹시 중요하다. 우리는 이렇게 사회적 합의에 따라 가치와 상관없는 보조장치를 주고 받는다. 그것을 '명목화폐'라고 한다. 1억짜리 '자기앞수표'를 만드는 것보다, 10원을 만드는데 더 큰 비용이 들어간다. 다만 우리는 그것의 실질적 가치가 아니라 그것이 담고 있는 '신용'을 더 믿는다. 이 믿음은 '달러'와 '주식'이라는 환상을 만들고 '신용'이라는 허구를 만들어 현대 경제의 기틀이 된다. 명목화폐는 종이일 뿐이고 암호화폐는 코드일 뿐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사실 '현실'보다 '가상'인 경우가 훨씬 많다. '빚에 허덕이는 사람'이나 '통장에 100억을 쌓아둔 사람'이나 사실상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은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허구'의 숫자를 실재한다고 믿는다. 이 믿음으로 아무것도 다를 것 없는 사람들의 어깨가 펴지기도 하고 굽어지기도 한다. 가상현실, NFT라는 말은 현대 우리가 살고 있는 허구의 세계를 조금 더 가시화한 영역일 뿐이다. 우리가 지갑에 넣고 다니는 직사각형의 네모난 플라스틱에는 검정색 '마그네틱 테이프'가 붙어있다. 이것을 긁을 때 발생하는 자기장의 변화는 숫자로 변환된다. 이 통해 사용자의 이름과 고유 정보가 확인된다. '차후에 재화의 가치를 보상하겠다'는 약속만으로 우리는 수 톤이 넘는 자동차를 가지고 나올 수 있다. 사실상 현대 인간 사회는 '약속'이라는 '허구의 존재'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전화로 자장면을 주문하면 '주방장'의 '웍'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상호 간의 믿음에 의해 무가치 노동이 시작된다. 믿음이 먼저 선행되고 이후 지불이 이어진다.
루나엠버씨라는 페이지를 가면 3만 5천원 정도에 달에 1200평의 땅을 구매할 수 있다. 온라인 결제를 하면 달의 소유권이 인정된다. '소유권'이라는 것은 '인간'이 정한 '상상의 약속'일 뿐이다. 자카르타에서 싣고 온 후추나 향신료 따위에 자신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과 평생 가보지도 못할 달의 땅을 구매하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 제국주의는 식민지를 찾아가 고대 전쟁에서 지배국이 피지배국을 점령하면 피지배국에서 얻은 물품을 전리품으로 획득할 수 있다. 그곳의 사람들을 노예로 삼기도 했다. 이것은 힘의 논리에 따라 언제든 변화한다. 그렇다고 믿는 사람들이 '다수'가 되거나 '지배층'이 됐을 때 '믿음'은 더 강력해진다. '달러'가 현재 기축통화인 것은 '미국'이 갖고 있는 '영향력'과 '힘'이 가진 '믿음' 때문이지, 실제 달러의 가치가 높기 때문이 아니다. 조선 500년 간, 시대를 지탱해 왔던 계급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사회 다수가 그것이 '있다'라고 믿기 때문에 존재했을 뿐이다. 얼마 전, 페이스북은 사명을 '메타'로 바꾸었다. 스마트폰과 PC를 통해 이미 가상의 현실을 살고 있는 이들에게 더 진보적인 경험을 해주기 위한 의지라고 보인다. '오큘러스 퀘스트2'를 구매한지 한 달 정도가 지났다. 유튜브에는 3D나 360도 촬영 영상들이 있으나 아직 그 숫자가 많지 않다. VR을 통해 바라 미래는 무궁무진했다. 애플과 구글은 사용자가 동의할 경우에만 데이터 수집을 허용하도록 방침을 변경했다. 이는 지극히 '메타'에 대한 견제다. 메타는 전체 매출액의 95%를 광고에 의존한다. 이들이 '메타'를 견제하는 이유는 당연하게도 그들이 준비되지 않은 사업의 확장에 대한 견제다. 이 조치로 메타의 주식은 곤두박질쳤다.
아무 의미 없는 고양이 사진의 '원본(NFT)'을 가지는 것에 억 단위가 오고 가고 단순 코드에 수 천 만원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어찌보면 유튜브 구독자수가 '수익'을 낸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기본적으로 '사람'이 모이면 그것은 힘을 갖는다. 그 사이에 '믿음'이라는 모호함이 첨가되면 그것은 '돈'과 '권력'으로 바뀌기도 한다. '신기술'이라는 이름으로 그 초기에 수많은 사기와 기만이 존재할 수는 있으나 그 본질은 분명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우리는 지금도 '네이버', '다음'이라는 실체가 모호한 이익 집단이 대한민국 최고 기업으로 성장하는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