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만요. 바로 1분 뒤에 다시 연락 드릴께요."
업무상 중요한 전화다. 서류를 보고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았다. 서류를 뒤적거리고 드디어 찾았다. 상대방이 기다림을 내 심장소리가 '촛침'이 되어 재촉한다. 갑자기 전화가 울린다.
'보험설계'
거절 버튼을 누른다. 방금 전 통화하시던 분께 다시 연락을 드리기 위해 '통화목록'에 들어간다. 전화가 다시 울린다.
'보험설계'
'거절'
통화목록에서 통화하시던 분의 전화번호를 누르려던 참이다. 전화가 울린다.
'보험설계'
"통화가 잘 안 되시네요. 지난 번에 연락 드렸던 보험설계사에요. 생각해 보셨나요?"
"휴... 제가 지금 급하게 업무를 보고 있어서요. 다시 연락드릴께요."
말이 끊어지고서 상대방에게 '여보세요'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뒤늦게 무례한 말투가 나왔음을 후회했다. 생각해보니 상대쪽에서도 '여보세요'가 나오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통화 연결이 어려우셔서 간단하게만 설명드리께요. 1분이면 되세요."
단칼에 거절했어야 한 전화인데, 정신없는 사이에 전화를 몇 번 받으니 이젠 단칼에 거절하기 미안한 지경에 와버렸다.
"제가 급한 중 받아서..."
"네네... 그래서 간략하게 보장 범위랑 월 납입금 정도만 설명드릴께요. 지금 나이가 젊으시고... 건강하셔서... 본 상품은 나중에 나이가 들면 가입하기 어려운... 젊을 때 준비하셔야 하구요... 보장 받을 수 있는 범위가 워낙 넓어서..."
상대는 다짜고짜 상품설명을 했다.
"먼저 끊겠습니다. 제가 필요하면 연락 드릴께요."
그렇게 마무리를 짓고 싶었다.
"그러시면 바쁘신 것 같아서, 편하신 시간 알려주시면 제가 연락을 다시 드릴께요."
말이 통하지 않는다.
"제가 일이 유동적이라서 일단 지금은 끊을께요."
스트레스는 받는 것이니, 받지 않으면 그만이라고 했다. 날이 좋았다. 서점에서 책을 골랐다. 책 한 권 금방 사고 나올 일이라, 지갑을 지참하지 않았다. 계산대에 섰다. 내 뒤로도 꽤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내심 책을 구매하는 사람들이 많음이 뿌듯했다.
"저기.. 삼성페이 되시죠?"
스마트폰 아래에서 위로 쓸어올린다. 지문 인식을 한다. '지지짓' 삼성페이가 활성화되면서 미묘한 떨림이 손에 전달된다.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점원은 스마트폰을 받아들었다.
"죄송한데, 전화가 왔는데요.?"
"네?"
점원은 스마트폰 화면을 보여주었다.
'보험설계'
거절 버튼을 누르고 재빨리 다시 삼성페이를 활성화 시키고 드렸다.
"죄송한데.. 다시 전화가 와서..."
등 뒤로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머리 뒤로 땀이 흘러내린다. 전화를 받아야겠다.
"안녕하세요. 지난 번에 연락주신다고 하셨는데 연락을 안주셔서요."
"저기, 죄송한데... 제가 보험을 안들어서요. 전화 그만 주시면 안될까요? 제가 지금 일을 보고 있어서 통화가 어렵네요."
"지난 번에 화재보험 드셨던 건... 수술 받으신 이력이 없으실 때, 들지 않으시면 나중에는 보험료가..."
"죄송합니다. 제가 나중에 연락 드릴께요."
삼성페이를 활성화한다. 점원에게 드렸다.
'보험설계'
두 번 정도 진동이 울린 후 꺼졌다. 아마 잘못 누른 모양이다. 다시 삼성페이를 활성화한다.
'아빠가 지금 배터리가 없어서, '토이몽'은 나중에 틀어줄께.'
아이들이 칭얼거렸다. 5%인 스마트폰 배터리가 깜빡거린다. 깜빡하고 충전하는 걸 잊어버린 탓에 네비게이션으로 겨우 도착지에 도착할 것 같다. 골목과 골목을 헤매는 길이다. 불법주차 된 차들로 좁은 골목은 이미 차 한대가 겨우 지나갈 폭이 됐다. 이제막 들어섰다. 저 멀리 상대는 뒤로 물러날 생각이 없다는 듯 달려들어 왔다. 한숨을 쉬고 비상등을 켜며 후진 기어를 놓았다. 배터리는 3%... 갑자기 내 뒤로 승용차 한 대가 더 들어온다.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는 교묘한 상황, 전화가 울린다. 앞에 운전자가 라이트를 올린다. 스마트폰 화면을 바라본다.
'보험설계'
'거절'
천천히 뒤로 뺀다.
전화가 울린다.
'보험설계'
"제가 지금 운전 중이라 나중에 연락 드릴께요."
"제가 지난 번 말씀해 주신거 바탕으로 내역을 좀 뽑았는데요. 문자로 넣어 드렸어요. 확인 하셨나요?"
"제가... 나중에 확인해 볼께요."
"네, 보내주신 내용은요.... 이런 것 까지 보장 받을 수 있는 상품은 지금 아니면..."
애초에 거절을 해야 했다. 기가막힌 타이밍에 전화가 오는 통에 거절할 타이밍을 놓쳤다. 화재보험을 한 건, 계약했던터라 몇 번을 어물쩡 거절치 못한게 이 사단이 났다.
보험을 들지 않는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이용해서 영업을 하고 그들은 그 보험료를 가지고 '미래'에 투자한다. 전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회사들은 대게 보험회사이며, 보험회사들은 흔히 말하는 '투자사'이기도 하다. 그들은 마치 들지 않으면 손해를 볼 것 같은 보험도 일종에 '상품'이다. 은행 창구 직원, 보험사 직원, 투자사 직원들이 내미는 대다수의 계약서에는 '당신을 지켜드립니다'라고 적혀 있지만, 정작 부유해지는 쪽은 그쪽이고 가난해지는 쪽은 이쪽이된다. 그것이 그 계약서의 원리다. 보험은 일종의 '확률'이다. 분명 보험의 혜택을 받은 사람들이 있다. 나 또한 '자동차 보험'과 '화재보험'을 비롯해 몇가지 필수적인 보험을 갖고 있긴하다. 다만 아주 교묘한 확률 조정을 하면 카지노에서 딜러와 플레이어의 동등한 게임은 1~2%의 확률 차이로 딜러가 이긴다. 얼핏 50대 50일것 같은 카지노 '바카라'는 51대 49의 확률이다. 카지노는 결코 플레이어게 돈을 잃고 망하는 법이 없다. 보험은 교묘한 확률을 이용한다. 카지노에서 모든 사람이 돈을 잃는 것은 아니다. 소수의 누군가는 따가기도 한다. 보험도 그렇다. 보험은 그렇다. 언젠가 '개인 트레이너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던 적이 있다. '의사'는 병이 들면 만나는 사람이고 '트레이너'는 병이 들지 않게 도와주는 사람이에요. 결국 건강은 이미 벌어진 뒤에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전에 지키는 것이라고 했다. 월 얼마가 되는 보험료면 차라리 더 건강한 것을 먹고, 더 건강하게 운동하는 것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