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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유치원 등원 거부하는 아이?

by 오인환


얼마 전부터 다율이가 눈만 뜨면 하는 말이 있다.


"오늘 유치원 가는 날이야?"


매일 가는 날이라고 답해도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유치원 가는 날인지를 확인한다. 유치원 가는 날이라도 답을 하면 '오늘은 진짜 안갈꺼야'라고 이어 말한다. 거기에는 대답하지 않는다. 유치원 등원 차량은 9시 5분 정도에 도착한다. 눈을 뜨고 옷을 갈아입고 식사를 마치고도 시간이 남는다. 아이들은 장난감과 인형을 통해 한참 놀이를 한다. 그리고 9시 5분에 '빵'하고 '유치원 차량 클락션'이 울리면 부랴 부랴 뛰어나간다.


"친구들 기다리겠다. 빨리나가자!"


그러면 거의 쫓겨나듯 밖으로 내밀려진 아이는 현관 쯤에서 되묻는다.


"마스크는?"


"아! 맞다. 아래층에 내려가면 꺼내줄께"


슬리퍼를 대충 신고 아이의 등을 반 강제적으로 밀어 넣으며 1층으로 간다. 아이들이 가방을 고쳐 매는 사이에 1층으로 들어가 마스크를 꺼온다. 영아용 마스크로 구입했는데도 마스크는 커서 귀를 한번 묶는다. 귀에 대충 걸어 놓고 아이에게 말한다.


"'선생님, 좋은 날이에요'라고 말하고 친구랑 싸우지 말고, 하율이, 다율이 서로 잘 챙기고, 재밌게 놀다와!"


그러면 허둥지둥 유치원 차에 올라탄다. 그 뒤부터 여유가 생긴다. 생각해보니 남들보다 걷는 시간이 부족한 일상을 보내는데, 유치원과 집까지의 거리는 걸어서 10분 정도다. 헬스장에서 제자리 걸음도 해야되고 아이들과 시간도 보내야하는데, 항상 시간이 부족했다. 어제 선생님께 등하원 차량을 보내지 말아 달라고 말씀드렸다.



킥보드를 타고 유치원 등교를 한다. 태풍이 지나간 하늘은 맑았다. 바람은 선선했다. 가을 날씨에 실내에서 실내로만 이동하며 생활하는 것이 뒤늦게 옳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아빠랑 오늘부터 걸어가자!'


아이들은 그러자 킥보드를 꺼내온다. 사실 오랫동안 유치원 등원을 거부하는 아이에게는 어떤 이유가 있었을까. 곰곰히 생각해보니 쫓겨나듯 이별하는 '등원 문화' 때문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킥보드를 타니 아빠를 앞지르고 한참을 나아간다. 신나게 노래도 부르고 소리도 지른다. 앞뒤로 차가 오지 않는지 살피면서 가는 길이 조금 신경 쓰이긴 하지만 아이들은 유치원까지 금방 도착했고 준비 중이던 선생님과 마주쳤다. 걸어서 등원하는 아이들이 많이 없는 모양이다. 차량으로 등원해 준다고 해도 부모의 입장에서는 빨리 보내놓고 '할일 해야지'가 대부분일 것이다. 나도 다르지 않았다. 보내놓고 돌아오는 길까지 총 20분이다. 등원과 하원을 걸어서 하면 40분의 걷는 시간이 생기더라는 걸 깨닫는다. 만약 헬스장이 어두운 형광등 밑에서 제자리를 걷는 것이 아니라, 태양광 조명을 비추고 산들바람이 불어오는 시스템, 주변에는 자연경치가 펼쳐지는 3차원 기술을 도입한다면, 아마 나는 그 곳에 최소 수십 만원의 월 회비를 내고 다녔으리라. 다시 생각해보니, 그것이 바로 이미 공짜로 주어진 자연에 있었다. 오래 전 부터 그런 고민을 한 적이 있다. 진짜 종이같은 질감의 전자책을 만지면서 했던 생각이다. 전자책의 질감이 정말 종이 같았다. 정말 종이처럼 가벼웠고 종이처럼 색깔이 보였다. 어쩌면 나중에 종이처럼 접을 수도 있고 종이처럼 물에 젖어도 말려 쓸 수 있는 기술력이 있으려나. 그 고민의 끝은 이렇게 결론났다. 그처럼 '종이'와 같을거면 종이를 쓰면 더 좋은 거 아닌가. 물론 전자책이 갖고 있는 장점을 종이가 대체하진 못한다. 다만 분명 종이와 닮아지는 곳의 최종점은 '종이'일 뿐이다.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는 일, 내가 시간을 내어 운동을 해야하는 일, 이 둘을 한 번에 해결하는 일은 다시 떠올려보니 등하원을 걸어서 하는 일인 듯하다. 개인적으로 직장생활을 하는 남들보다는 '시간적 여유'가 더 있는 편이다. 누군가는 '경제적 자유' 혹은 '파이어족'이라는 삶이라고 부르는 그런 일상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조금 더 여유로워질 수 있도록 시간관리를 확실히 하면 아이들의 일과 시간에 짧게 업무를 마무리 지을 수 있는 지경에 올 것이다. 내 능력과 시간이 가능하다면 아이들의 의사를 물어보고 '홈스쿨링'도 고민하고 있다. '학교'는 사회성을 배우는 무척 중요한 공간이지만, 학교를 다니지 않았다고 '사회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학교를 다녔다고 사회성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 나 개인적으로는 '집단생활'에 적응하지 못한다. 얼핏 겉으로 무던하게 지내는 것 같아 보일 수도 있으나, 집단생활에서 오는 피로는 좀처럼 회복이 되지 않는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모두 졸업했음에도 내 사회성이 어느학교 중퇴자들 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사회성은 고여진 집단에서 자리를 차지하는 것 외에도 많은 부분에서 배울 수 있다고 본다. 모쪼록 재밌게 등교를 하고나니, 다율이가 더이상 '유치원 가는 날이야?'라고 묻진 않을 것 같다. 다만 혹여라도 등원을 너무 싫어한다면, 어차피 하고 싶었던 '홈스쿨링'을 연습한다는 셈치고 유치원을 휴원해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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