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차량 보닛이 전하는 둔탁함을 느꼈다.
비는 세차게 내리고 있었고 남자의 차에 부딪친 '무엇'은 보이지 않았다.
"뭐.. 지?"
남자는 핸들에 머리를 파묻고 있다가 살며시 고개를 들었다.
"저기요!! 살려주세요."
20대 여성이 피투성이가 되어 남자의 차 문을 두들겼다.
'으악!'
남자는 가속페달을 밟았다.
'부웅'
차는 여성을 뒤로하고 앞으로 나아갔다.
백미러를 통해 확인한 여성은 새빨간 피가 흐르고
몸에서는 하얀 연기가 피어나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비에 젖은 모양이로군...'
남자는 여성을 뒤로하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도울 수는 없었다.
'살인비'에 젖으면 사실상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남자는 얼마 전부터 내리는 '살인비'를 기억했다.
뉴스는 그것에 '살인비'라는 이름을 붙였다.
내리는 비에 살갗이 닿으면 살은 뜨거운 물에 닿은 비누 조각처럼 녹아내렸다.
처음에는 예민한 사람들만 피부 트러블이 생기던 게
어느 날부턴가 '일본 동부'와 미국 서부에서 사망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첫 사망자가 난 뒤로
벌써 1년이 흘렀다.
살인비는 영하로 떨어지는 겨울에도 눈으로 바뀌지 않았다.
빗물은 처음에는 식물들을 누렇게 만들더니
점차 '작물'을 죽이기 시작했다.
만 1년 만에 곡물가격은 천정부지로 오르고
사람들은 외출을 삼갔다.
비 때문에 사망한 사람보다 아사자가 많아지면서
정부는 '비상미'를 풀었다.
풀린 비상미가 모두 '배송사'로 넘어오면서
남자가 일하는 택배사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다.
소름 끼치는 것은 그 많던 배송 물량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줄어 들었다는 것이다.
금값이 된 쌀을 무료로 배포해도
가져가지 않는다는 것은 그렇다.
사람들이 많이 남지 않았음을 의미하기도 했다.
남자는 물류센터에 도착했다.
발송을 기다리는 '비상미'가 가득 쌓여 있음을 봤다.
차에서 내리고 물량을 보자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하...'
남자가 깊은 한숨을 쉬자, 옆에서 한마디 한다.
"동래 씨, 뭘 새삼스럽게 그래... 비 오는 날 당연한 거 아냐?"
각오는 했지만 막상 바라보니 감당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동래에게 말을 건 남자를 바라보니 반팔에 반바지, 슬리퍼 차림이다.
"오늘 오다가 비에 젖은 여자를 봤어. 우리도 시간문제일 뿐이야. 복장은 최대한 갖춰 입어."
동래의 말이 끝나자 반팔, 반바지 차림의 남자는 되물었다.
"이 찜통더위에 옥내 저장소에서 그렇게 입고 일하다간, 동래 씨가 먼저 죽어.."
남자는 웃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땅이 심하게 흔들리더니 쌓여 있던 비상미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옥내 저장소에 쌓아둔 물건들이 우르르 무너지기 시작하고
급기야 지붕의 일부가 무너져 내린다.
무너진 지붕에서는 여지없이 비가 쏟아진다.
밖은 천둥 번개를 동반한 돌풍이 함께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