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은 악인이 형벌을 받는 곳이다. 뜨거운 불구덩이 속에서 영원히 고통 받는 장소다. 단테는 지옥을 그렇게 묘사했다. 왜 단타는 지옥을 그렇게 묘사했을까? '단테의 신곡, 지옥 편에는 고통 받는 악인들이 등장한다. 흔히 알고 있는 유명인들도 등장한다. 악하다고 묘사되는 다수의 인물이 등장한다. 게중에는 단테의 개인적 라이벌도 꽤 나온다. 많은 사람들이 단테의 신곡이 어렵다고 생각한 이유는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낯설기 때문이다. 단테는 고통스러운 '지옥'을 묘사하고 그 안에 자신이 싫어하는 이들을 함께 넣어버렸다. 단테는 지옥을 그렇게 묘사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자신의 악행을 성찰하도록 의도했다. 단테의 신곡은 이름과 소재가 주는 묵직함은 분명하게 있으나 그 원어는 La Divina Commedia다. 원어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Commedia'는 '희극' 혹은 '희곡'을 뜻한다. 단테는 신이 만든 무자비한 고통의 공간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극적인 이야기를 전달 한 것이다. 문화적 배경이 서양과 많이 다른 동양에서는 이 'Commedia'를 어떻게 번역해야 할지 고민했을 것이다. 'La Divina Commedia'의 이름을 고민하던 일본 작가 '모리 오가이'는 당시 '희극'의 개념이 모호한 동양인들에게 이 노래를 알리기 위해 '곡'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 노래는 3행으로 이뤄져 있다. 각 행은 11음절로 이뤄져있고 이 구성은 음율을 만들어 우리의 '한시'나 '판소리'처럼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했다. 이 노래가 재밌는 이유는 3행 33곡 3부로 구성됐다는 점이다. 숫자 3은 히브리어에서 알파벳 '김멜'에 해당된다. 성경에서는 이 숫자를 굉장히 신성히 여기는데 '성부, 성자, 성령'이라는 삼위일체가 하나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숫자 3은 고대인들에게 완전성을 의미한다. 그것은 곧 '신', '하나님'의 숫자라고 봤다.
단테가 묘사한 것처럼 성경은 지옥을 묘사했을까? 지옥(地獄)은 들끓는 불구덩이와 상관없다. 한자 지옥(地獄)은 단순히 땅에 갇힌다는 의미일 뿐이다. 영어 Hell은 구덩이에 빠진다는 의미다. 구덩이에 빠졌을 때, 소리친다는 Yell과 누군가를 부를 때, Hello는 지옥인 Hell과 같은 어원을 사용하고 있다. 구멍인 Hole을 비롯해 Help 또한 지옥과 같은 어원을 공유한다. 여기에 불구덩이에서 무자비한 고통을 생산하는 장소라는 의미는 없다. 일부 성경에서는 '지옥'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지만 여기서 '지옥'은 '단테가 묘사한 불구덩이'라기보다 '땅속 혹은 구덩이'를 뜻한다. 히브리어 원어를 살펴보면 해당 단어들은 '무덤'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즉, '지옥에 가라'라는 말은 무한히 생산되는 '신(하나님)'이 만든 불구덩이에서 고통받으라는 의미가 아니라 '죽음'을 의미한다. 이런 일은 생각보다 많이 벌어진다. 2009년 6월 10일 에릭 크누드센(Eric Knudsen)라는 사람은 숲에서 출몰하는 검은 양복을 입은 깡마르고 이목구비가 없는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커뮤니티에 올린다. 당연히 이 이야기는 그가 만들어낸 이야기다. 이 괴생물체는 팔다리가 많이 달리고 촉수로 걸어다니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 괴생물체를 '슬렌더맨'이라고 불렀다. '슬렌더맨'의 이야기는 그러나 점차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사람들은 점차 이 창작물을 '실물'로 믿어버린다. 이에 에릭은 자신이 창작자이며 모두 거짓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점차 '슬렌더맨'을 보았다는 목격자들이 전 세계에서 나오기 시작하고 각종 사진과 고대 기록 및 벽화가 등장한다. '허구'의 이야기가 어떻게 변형되어 '실재'가 되어가는지를 볼 수 있는 예다.
'단테'의 기록물을 보고 '저것은 틀림없는 지옥의 모습일꺼야'라고 생각한 누군가는 다른 누군가에 지옥의 모습을 묘사할 것이다. 99%가 허구인 드라마 허준이나 김진명 작가의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처럼 허구는 자칫 어떤 사람들에게 진실로 받아들여진다. 진실로 받아들여진 허구는 진실보다 더 자극적이고 흥미롭다. 가짜 뉴스가 진짜 뉴스보다 더 빠른 파급력을 갖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단테의 '신곡' 중 '지옥'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난해함과 어려움을 이야기 했다. 거기에는 클레오파트라가 등장하고 플라톤이 등장하며 소크라테스나 카이사르 등이 등장한다. 이미 알고 있는 이들에 대한 내용에 대해서는 쉽게 이해하며 읽을 수 있으나 그밖에 생소한 이름에 대한 묘사에 대해 어려움을 토한다. 이것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 시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인물들을 등장시킴으로써 '지옥'이라는 장소의 정체성을 부여하고자 한 것이다. 만약 단테의 희곡이 700년만 늦게 나왔더라도 거기에는 '히틀러'나 '스탈린' 등이 지옥 문에서 줄서 있는 묘사가 있었을 것이다. 인간의 뇌는 분명한 것만 경험하고 보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아주 바보같은 구석이 있다. 인간이 100년 넘게 서아프리카에 존재한다고 믿었던 '콩산맥'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사람들이 서아프리카에서 콩산맥을 봤거나 넘었다는 기록을 했다. 1000년 전 단테의 창작물은 오랜기간 다양한 문화들과 섞여 다른 글들의 출처로 작용했다. 글을 번역하는 과정에 출처는 서로 인용하고 사용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불신하는 이유로 '뜨겁게 불타는 지옥'을 예로든다. 고전이라고 꼭 어렵고 딱딱하게 볼 것이 아니라, 해리포터를 읽는 마음으로 즐겁게 읽는다면 이 단테의 신곡을 더 재밌고 유익하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