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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Oct 02. 2022

[미래] 코로나 이후 뉴노멀 시대_지나치게 연결된 사회


 지나치게 연결된 사회, 그 속에서 코로나는 어떻게 움직였고 사회는 어떻게 변화하나. 2019년 이전의 질서가 끝났다. 어서 코로나가 종식되고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여길지 모른다. 다만 대부분의 지식인들이 말하는 미래는 '뉴노멀의 시대' 즉, 새로운 표준이 자리잡는 시대다.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는 것은 '양말'을 신지 않고 남의 집 방바닥을 누비는 것과 같다. 마스크는 '의약품'이 아니라 '의류'로 자리했다. 개인은 자신의 개성을 나타내는 디자인과 색을 고르고 바지 치수를 파악하듯 마스크 사이즈를 알아야 한다. 14세기 유럽에는 흑사병이 유행했다. 당시 영국 귀족들은 재채기 할 때, 꺼내 쓸 수 있게 왼쪽 가슴 호주머니에 천이나 면 등 가벼운 원단을 넣고 다녔는데 이 '행커치프'는 현재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없던 문화가 생기고 그것이 '노멀'로 자리를 잡는 새로운 '뉴노멀 시대'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대비하고 있을까. 매일 그날의 날씨보다 먼저 확인할 수 있는 '코로나 감염자 및 사망자 통계'는 조간 신문처럼 전국민에게 문자 배송된다. 아이스브레이킹을 하거나 하루를 시작하는 간단한 인사처럼 '확진자 통계'는 '숫자' 이상의 문화로 자리잡는다. '오는 날씨 좋네요' 처럼 '오늘도 확진자 많네요'가 일상 인사처럼 굳어지는 시대. '밥 먹었어?'나 '좋은 아침'처럼 우리의 인사도 점차 뉴노멀로 변해간다. 과인 연결은 이 문화적 변화와 확산을 빠르게 한다. 사람과 바이러스의 연결, 국가와 국가의 연결, 타인과의 연결 등 복잡하게 다중적으로 얽혀 있는 사회의 연결 고리를 통로 삼아 코로나 바이러스는 '감염 확산' 뿐만아니라 다양한 '문화적 확산'을 일으킨다.



 미국 내에서 '인종차별문제'는 '흑과 백'의 문제였다. 물론 아시아인에 대한 차별도 없지 않으나 역사적으로 보자면 흑인에 대한 차별을 떠올린다. 다만 팬데믹에 의해 등장한 새로운 차별 문제가 생긴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출원지로 꼽히는 '중국인' 즉 아시아인에 대한 차별이 그렇다. 유럽 내에서도 남유럽인들에 대한 차별도 발생한다. 코로나는 백인들이 대규모 사탕수수 밭을 가꾸기 위해 아프리카인들을 사고 팔며 그들에게 가졌던 인종차별적 고정관념처럼 새로운 역사적 고정관념을 생성하며 인종차별을 만든다. 대체적으로 '마르쿠스 가브리엘'이라는 독일 철학자는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케인즈주의자로 보여진다. 문제에 대해 여러 방향으로 고민해보는 '철학자'의 시선은 좋았으나, 개인적으로 찾아보기에 논리적 모순이 적지 않았다. 다양한 관점이 들어나 좋았으나 대소 개인의 정치적 성향이 강하게 묻어 있는 책이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여지의 주장이 다소있다. 생각이 다른 저자의 책을 읽으며 자신의 생각과 비교해 보는 것 또한 '독서'가 가진 매력이자 장점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구나'


누군가의 이야기를 읽고 나의 생각과 비교해가며 상대의 논리를 바라보고 자신의 논리와 비교해 보기에 얇지만 찬찬히 사색하며 읽을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게중에는 공감되며 또다른 인사이트를 불러 일으키는 대목도 있다. 바로 '통계'에 관한 이야기다. 코로나 초기가 지난 이후, 코로나 확진자 추이 통계를 보여주는 일을 불편하게 여겼다. 마치 스포츠 시즌 성과를 비교하듯 국가 순위를 따져가며 누가 더 방어에 선방했는지를 따지는 것이 정치적 의도를 제외하고는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심이 들었다.



 매체는 꾸준하게 감염자와 사망자 그래프를 보여주며 사람들을 위축시켰다. 코로나가 어떤 병인지 파악되기 전, 그 치사율이 극도로 부풀려 예측됐을 때, 사람들은 그 병에 대해 위기 의식을 가졌다. 그것을 경계하고 살폈다. 다면 현재는 그렇지 않다. 코로나 사망자수는 예상보다 적다. 코로나 전염병에 대한 경각심을 갖는 것은 물론 좋다. 그것이 국가의 존폐에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사안일지도 모른다. 책에는 관련 내용이 없지만, 대한민국의 상황을 봤을 때 관점을 달리 봐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세계 최고의 자살률'과 '세계 최저의 출산률'을 갖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이 보고 받아야 할 것은 코로나 확진자수와 사망자수가 아니라 '출산자수'와 '자살자수'다. 코로나는 사실 '연결된 세계'가 얼마나 유기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계기다. 심각한 유사 상황에 개인과 국가, 세계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고 움직여야 하는지 팬데믹 사태를 통해 시뮬레이션 했다. 국가 비상사태에 국가는 자신들만의 시스템을 구축하고 법을 신속하게 제정하며 민관이 공동으로 움직여 다수의 안전에 힘썼다. 이 이후 사회는 당연히 코로나를 통해 배웠던 경험을 실제로 사용해야 한다. 국가와 국가, 타인과의 연결이 어떤 식으로 작동되는지를 전세계가 경험한 이때, 정치는 더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자신들의 실수를 반성하고 복기해야 한다. 저자는 자신의 철학을 거침없이 쏟아 부었지만 실제 내 주장과 부딪치는 부분은 상당했다. 공감되는 부분도 분명했다. 다만 비슷한 사람의 생각만 편집적으로 받아드리는 것 또한 '민주주의의 역행'과 같다. 아마 책을 읽고 누군가는 무릎을 치며 공감할 것이고 누군가는 의구심을 가질 것이다. 이처럼 다양한 생각이 자유롭게 허용될 수 있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민주주의다. 경제, 정치, 문화 등 여러면에서 젊은 독일 철학자와 생각을 비교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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