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정리하지 않는 책들이 옆으로 누웠다. 위로 쌓인다. 한 번 누운 책은 꺼내보기 어렵다. 사람과 닮았다. 일단 쉽게 눕혀 놓는데, 서 있는 책보다는 누운 책을 다시 집는 일은 좀처럼 없다. 누운 책은 먼지가 쌓인다. 그 위로는 다시 꺼내지 않을 책이 눕는다. 다시 먼지가 쌓인다. 반복한다. 선택받지 못한 정보가 누워 있는다. '미라클 모닝'이라는 말이 유행하는 듯 하다. 아침에 반드시 일찍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우유가 맞지 않는 '유당불내증'인 사람도 있고 우유가 잘 맞는 사람도 있다. 주량도 사람마다 다르고 키와 몸무게도 다르다. 각자가 다 다른 몸과 신체를 갖고 있는데 모두가 같은 시간이 최적의 컨디션을 만들어 낼 거라고 생각치 않는다. 다만 늘어지는 주말 아침, 이불 속에서 밍기적 거리는 시간이 길어지면 그날 하루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게으름이 쌓인다. 일단 씻고 바닥을 딛고 있으면 이상하게 할 일들이 많아진다. 사람이 책과 닮았다. 누운 책들을 일으켜 세웠다. 책이 누워 있으면 다시 읽고 싶지 않다. 기본적으로 찾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다시 읽고 싶은 책을 찾을 때 한참 걸린다. 'control 버튼 + f'를 누르고 싶다. 좌에서 우로 스캔을 하며 넘어가는 와중에 누운 책들은 걸러진다. 다시 상하로 작업을 다시 해야 겨우 찾아 낼 수 있다. 먼지가 쌓여 있거나 다른 책들 아래로 눕혀진 책은 찾아도 보게 되지 않는다. 동양철학에서 머리는 하늘이고 발은 땅이라 했다. 하늘의 기운은 척추를 타고 내려와 발이 딛고 있는 땅으로 흐른다. 척추가 곧아야 하고 어깨를 펴야하며 자세가 틀어지지 말아야 할 이유라고 했다.
아이가 고양이를 만진다. 새로운 물건에 호기심을 갖는다. 고양이도, 아이도 호기심이 왕성하다. 새로운 것은 만지고 본다. 아이가 무릎으로 기어 다니던 시기, 아이는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을 입에 넣었다. 쌍둥이 녀석들은 서로의 발가락도 입으로 들어갔다. 새로운 것은 호기심이다. 태어난지 수 개월 되지 않은 이에게 모든 것은 새로운 것이다. 모든 것은 호기심 덩어리다. '꿈의 해석'의 저자 '프로이트'는 '유아 성욕'을 주장했다. 쾌락을 얻거나 욕구를 충족하는 경험의 변화를 유아기부터 설명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출생 직후부터 1년 반까지 '구강기'라고 부른다. 어미의 젖을 빨거나 먹는 것에 지대한 관심을 갖는다. 그 뒤로 항문기, 남근기, 잠복기, 생식기로 심리성적 발달 과정을 구분했다. 단순히 말할 순 없지만 각 발달 과정은 모두 '새로운 것'에 대한 탐구와 연결된다고 본다. 남성이 여성에게 끌리거나, 여성이 남성에게 끌리는 것처럼 이성에게 끌리는 것은 자신과 '다른' 혹은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황교익 맛 컬럼니스트'는 나이가 들면서 시간이 더디게 가는 이유를 '호기심'과 연결지어 말했다. 굉장히 공감했다. 새롭지 않은, 탐구할 것 없는 세상일수록 재미가 떨어진다. 프로이트의 말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인간은 대게 '새 것'에 대한 호기심을 가진다. 그것이 사라지는 것은 달가운 일은 아니다. 왜 숟가락 뒷편에는 얼굴이 거꾸로 반사되는지, 뜨거운 국그릇은 갑자기 식탁 위를 미끄러지듯 움직이는지, 밥을 먹을 때 조차 세상은 호기심 천국이었다. 나이가 들어가며, '원래 그런가보다'하고 넘어가는 일들이 많아지면 세상은 지루하고 재미 없는 것들이 되어간다. 책은 '네가 아직도 모르는게 많단다'를 알려준다. 다시 세상을 호기심 천국으로 채워주는 마법서들이 꾸준하게 대기하고 있다.
책이 3~4천 권이 넘는다. 60%는 읽은 것 같다. 40%는 사놓고 읽지 않았다. 그것을 츤도쿠라고 한다. (tsundoku). 나는 츤도쿠인가. 오타쿠이기도 하다. 정리하면서 생각이 들었다. '제 정상이기는 한가.' 어머니는 어린 시절, 책을 읽어야 한다고 하셨다.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이야기'라는 책을 선물로 주셨다. 절판된 책이다. 그 책을 읽고 사촌의 집에서 '어린이 삼국지 3권'을 빌려 읽었다. 이렇게 4권. 수 백 번을 읽었다. 그래서 첫 인상이 중요하다. 책이 재밌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어머니가 사주신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이야기'라는 유머책이었다. 어머니는 그 책 한 권이 이렇게 커져 버릴 것이라고 알지 못하셨다. 우표를 수집하는 취미처럼 책도 수집할 수 있다. 굳이 모두 읽을 필요는 없다. 냉장고에 먹을 것이 쌓여 있으면, 먹지 않아도 든든하다. 냉장고 오른쪽 문에는 작년에 사놓은 케찹이 그대로 있다. 케찹은 구매 당일 모두 먹으려고 산 것은 아니다. 원래, 소금, 간장, 케찹 등 모든 것이 그렇다. 적절하게 쓰이기 위해 구매하는 것에는 별로 죄책감이 들지 않는다. '오타쿠'일지 모른다. 어쩐지 츤도쿠와 어감이 비슷하다. 유학시절에, 일본인 친구가 있었다. 뜻이 무엇이냐 물었다. 모른다고 했다. 다른 일본인 친구는 모두 알던데 그 친구는 왜 모르는지 모르겠다. 오타쿠라는 단어가 일본에서도 그닥 좋은 어감은 아닌듯 하다. 그래서 숨겼는지 모른다. 의문이다. 사람들은 이상하게 '책'에 대해 환상이 있다. 단순히 '책 좋아한다'는 사실만으로 사람을 높게 평가하는 경향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일부러라도 읽는 책'은 사실 기호이고 도구라고 본다.
아이가 고양이와 뽀뽀한다. 불현듯 '뽀뽀뽀'라는 프로그램이 떠오른다. 1981년 5월 25일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 뽀뽀뽀가 mbc에서 첫 방영을 했다. 1975년생 부터 이것을 봤을 것이다. 이 방송은 2013년 8월 7일 종료했다. 2005년생이 마지막으로 봤을테다. 30년 한 세대가 같는 프로그램을 봤다. 7755회가 방영됐다. 실제 아이만 보진 않았을 것이다. 아이를 갖고 있는 부모 세대도 봤을 것이다. 75년 생 이후 어린이들은 프로그램을 보다가 다시 아이가 같은 프로그램을 보는 장면을 보게 된다. '뽀식이', '뽀미언니' 등 가족의 족보를 이상하게 꼬아버린 이 프로그램인 2013년 종료됐다는 사실은 너무 아쉽다. 지금도 이용식 아저씨는 '뽀식이 형'으로 기억된다. 아마 아저씨를 '형'으로 기억하는 수많은 아이들은 같은 동질감을 가질 것이다. 유발 하라리는 '상상의 매개체'를 이야기했다. 혈연이 아닌 관계가 국가와 회사 등으로 협업이 가능하게 한 이유는 같은 국적과 같은 민족, 같은 종교를 갖고 있다는 믿음 때문이라고 했다. 30년, 한 세대를 묶어주던 매개체에 아쉬움이 남는다.
점점 책으로 둘러 쌓인다. 사실 더 쌓여도 괜찮다. 이동진 평론가 님의 서재를 봤더니 아직 나는 괜찮은 수준일수도 있겠다 싶었다. 모여지는 책들은 언젠가 아이가 꺼내 읽겠지 싶다. 이제 막 말을 떼던 어린 아이들이 '아빠'라는 말을 하자마자 했던 다음 말은 '아빠치'였다. '아빠 책'. 아이들의 얼굴이 찍혀진 책도 출간됐다. 최소 나보다는 책에 대해 먼저 접한다는 사실만으로 아이들의 미래가 나보다 더 나아질 것이라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