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세상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 뭐야?"
"대통령..."
전두환 전 대통령이 정권을 잡았던 시기에 태어나 노태우 전 대통령으로 군사 정권이 이어지는 동안 어린시기를 보냈던 내가 유치원에서 작성해야 하는 '꿈'이라는 질문에 아버지께 여쭤봤던 건 '누가 가장 높은 사람이냐'라는 당돌한 질문이었다. 아버지는 군사독재 시대의 마지막을 보내고 있을 때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대통령'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에게는 누구도 함부로 이야기하지 못한다고 했다. 누구도 넘을 수 없는 산이라고 했다. 아마 절대다수가 들고일어나도 꿈쩍하지 않는 그들을 보며 절대자의 힘을 보셨을지도 모른다.
성인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연히 청소를 하다가 유치원 시절 적어내야 했던 '앞으로의 꿈'을 봤다. 그 내용에 나는 '대한민국 대통령'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게 뭐를 의미하는지는 몰랐다. 그저 나의 가능성의 최고치를 적었던 것 같다. 그렇게 자신감이 가득 찬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린 시절에는 모두가 그러겠지만 무서운 것도 없고 거칠 것도 없다. '무지'에서 나오는 자신감은 용감함으로 보이기도 했다. 뜨거운 주전자를 손바닥으로 덮썩 잡아버리거나 엄청나게 매운 고추를 한 입 크게 베어 무는 건, 용기가 아니라 무지였다. 어린이가 용감한 것은 용기가 있어서가 아니라 무지하기 때문이었다.
단 한 번, 뜨거운 주전자에 손을 데거나 상처를 입는 학습을 거듭할수록 뜨겁지도 모를 것들을 견제했다. 빨간 음식은 먹지 않게 됐다. 어른들이 맵지 않다고 물에 헹궈주는 김치도 지나치게 맵다고 지레 겁을 먹었다. 대통령이 꿈이던 아이는 뜨거운 것에 데고 매운 것을 베어 문 아이처럼 다양한 삶의 상처를 학습을 해야 했던 것 같다. 학교를 다닐 때마다, 매년 귀찮을 정도로 물어보는 '장래희망'은 조금씩 '현실 순응'에 맞춰져 가야 했다. 낮 뜨거운 장래희망 따위는 개나 줘버리고, 내 수준에 가능한 일자리를 갖는 것이 맞다는 순응이 자리를 잡아갔다.
......
'꿈이 대통령일 수도 있지'
20살이 갓 된 나이에, 친한 친구 녀석이 고백할 것이 있다고 말했다. 녀석은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너는 뭐가 되고 싶냐?"
평소 장난기 많던 친구 녀석의 질문이 의외였다. 하지만 나는 대답했다. "뭐... 주체적으로 사는 사람? 직업으로 치면 뭐가 있을까.. 사업가 정도? 기왕이면 해외를 왔다 갔다 하며 비즈니스 하면 재밌을 것 같네.."
내가 대답하자 친구는 자신이 되고 싶은 게 있다며 말했다. "나는 뭐가 되고 싶냐면... 웃지 마. 나는 대통령이 되고 싶어"
20살에 약간 황당한 꿈이었지만, 남의 꿈을 비웃을 생각은 없다. 녀석의 얼굴을 살폈다. 녀석은 진지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뭐... 꿈이 대통령일 수도 있지'
문뜩 내가 어린 시절 적었던 장래희망이 생각이 났다. 녀석의 진지한 표정을 살펴보니, 이루던지 말던지를 떠나 자신의 가능성에 조금도 양보하지 않은 그 패기가 마음에 들었다. 녀석과 나는 성인이 된 그 이후로도 자주 꿈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녀석의 꿈은 '대통령'에서 '국회의원'으로 다시 '대학교수'로 다시 '카페 사장'으로 바뀌어갔다. 그때마다 녀석이 스무 살에 했던 패기 있던 표정이 생각난다. 이루지 못하는 꿈이라도, 꿈이란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삶이다. 좋은 꿈을 꾼 날에는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좋은 꿈을 꿔서 더 행복한 하루를 보낸다. 다만 녀석의 꿈이 조금씩 바뀔 때마다, 녀석에게 나를 투영해 바라보곤 했다.
나는 성장하고 있지만 분명 노화되고 있었다. 나이가 들수록 상처가 많아질수록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고 움츠려 드는 일들이 많았다. 20대 초반에 해외에서 유학을 했을 때, 도저히 스스로 감당하기 힘든 시간이 존재했다. 마치 들어 올릴 필요도 없이 그것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온몸의 힘을 부들부들 떨며 견뎌내야 했던 하루를 온전히 견뎌야 하는 고통의 순간이 나의 어린 시절 뜨거운 주전자와 같았다. 그때 나는 다르게 대응했다. 만지지 말아야 할 고통의 순간을 초인과 같은 힘으로 넘어섰을 때, 다음 성장으로 넘어간다는 것을 알았다.
운동을 할 때, 바벨을 가슴 위에서 부터 머리 위로 밀어 올리는 도중 갑자기 힘이 약해지는 시점을 말하는 '스티킹 포인트'라고 한다. 이 처럼 겨우 견딜 수나 있을 것 같은 무게에 짓눌려 있을 때, 그것을 견뎌내면 우리의 근섬유는 상처를 입지만 그 찢어진 근섬유 사이에 단백질이 채워지며 더 크고 단단한 근육으로 성장해간다.
20대 초반에는 무언가를 잊기 위해서, 겨우 짊어질 현실을 초월한 더 큰 고통을 스스로에게 안겨 주는 일을 했다. 만 스물, 극한으로 먹고 극한으로 운동했다. 눈을 뜨면 움직이고 잠도 자지 않고 먹지도 않았다. 긴 하루를 짧은 단위로 조개어 스쳐 지나가는 나쁜 생각과 기운을 잊기 위해 무거운 것을 들고 무턱대고 뛰었다. 목욕탕에서 온탕에 몸을 담그는 것이 두렵던 어린 시절에도 그랬다. 아주 살깟이 뻘게지는 온탕보다 더 뜨거운 열탕에 몸을 담가 나를 극한으로 몰아붙이고 나면, 뜨거웠던 온탕 따위는 미지근한 물일 뿐이었다.
유학 시절 나의 고통은 '운동'이라는 극한의 상태로 밀어 넣었다. 어떤 생각이 물밀듯 나에게 몰려오면 숨이 헐떡 거릴 만큼 달렸다. 모든 에너지를 소진하고 나면 기진맥진하고 잊혀야 할 산더미 같은 현실이 잊혔다. 당시 극한으로 몰았던 나의 행동 때문에 운동을 하고 있지 않은 지금의 근육 비중도 평균 이상이고 체력도 강하다. 극한을 넘어서면 내가 초월했던 한계점은 저 밑에서 나를 바쳐주는 지지선이 되어주었다.
나이 서른, 다른 종류의 더 강력한 극복해야 할 것들이 생겼다.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어떻게 나를 극한으로 몰아 초월할 수 있을까? 어쩌면 20대 젊은 내가 선택했던 '운동'을 넘어, 나는 '책'이라는 것을 선택한 것일까.
워낙 책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요즘 부쩍 책에 미쳐 있는 듯하다. 그것을 쥐고 있으면 현실이 지극히 멀어지고 모든 것을 초월한다. 돈, 명예, 관계 등의 모든 것을 초월한 넓은 시야가 생겨난다. 거기에 다시 눈을 뜨면 짧게 쪼개진 단위들 사이로 '현실'이 비집고 온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어쩌면 활자 중독자처럼 2020년을 보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바쁘면 바쁜 대로, 여유가 있으면 있는 데로 활자를 끼고 살아가고 있다.
분명 시간이 지나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 그때 나가 좌절하고 다시금 '뜨거운 주전자'를 대하는 것처럼 트라우마로 간직한다면 나는 성장이 아니라 노화될 것이다. 그것을 과감하게 뛰어넘어버려야 할지도 모른다. 이 고통의 시간을 '책'으로 채우고 나면 이번 스티킹 포인트 뒤에 찢어진 근섬유를 채운 '지성'이 얼마나 나를 성장시킬지 모른다.
포스팅의 제목처럼 나의 꿈은 대통령이 아니다. 정치에는 관심도 두고 있지 않다. 핸드폰을 뒤적거리다 보니, 이처럼 예전 어플로 손금을 봐 둔 사진이 보였다. '대통령 손금'이라니... 생각해보니 예전 어린 시절이 갑자기 기억이 났다. 어린 시절, 나는 왜 대통령이 되고 싶었을까? 아마 내가 될 수 있는 가장 최고의 지위를 목표해봤는지도 모른다. 가능성에 한계를 두지 않았던 그 시절 패기는 물론 지금은 없다. 콩나물이 아무리 성장해 낸다 해도, 콩나물은 더 큰 콩나물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 하지만 기린만큼 크고 싶다는 열정을 갖고 크는 것이 죄는 아니다.
지금도 나의 꿈은 주체적인 삶이다. 5년의 짧은 임기를 마치면 당연한 순서로 사법재판을 받고 교도소로 들어가게 되는 대한민국 대통령 따위는 그 한계의 근처도 가지 못한다. 직업으로 한정해 두고 싶지 않다. 나는 주체적인 삶을 살고 싶다. 결국 인생의 모든 것은 '행복'을 위한 일 아닌가 싶다. 태양을 보고 던지면 달까지 간다고 했던가. 그때의 패기를 다시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아주 쉽지 않은 하루와 하루를 보내고 있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좋지 않은 상황을 좋다고 믿는 건 긍정이 아니라 자기 망상일 뿐이다. 현실을 직시하자. 이것을 더 큰 성장의 기회가 될 수 있도록 간신히 스티킹 포인트를 극복하여 찢어진 근섬유 안에 영양분을 채워 넣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