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알려 주는 모든 문제에는 해답이 있었다. 때문에 열심히 고민하다 보면 나에게만 열리지 않은 해답을 찾을 수가 있었다. 대부분의 문제에는 보기가 있다. 정말 아니다 싶은 3개를 재껴두고 나면, 남은 두 개만 고민할 여지가 있었다.
살다가 마주치는 모든 문제에 해답이 있다고들 한다. 하지만 해답이 있을 거라는 착각은 시간만 축 내는지도 모른다. 이미 삶아진 달걀을 바라보며 날 계란이 될 해답을 찾느라 하루를 고심해도 방법은 없다. 모든 문제에 해답이 있을 거라는 착각에서 벗어나, 그 문제 자체를 벗어나는 편을 택하는 것이 낫을지도 모른다.
"문제를 삼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데, 문제를 삼으면 문제가 된다"는 중국 격언이 있다.
가슴 아픈 일을 겪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매번 그 문제를 꼭 껴안고 살아가는 행위는 뜨거운 냄비를 두 손에 움켜쥐고 냄비가 식어야 내가 다치지 않는다고 기다리는 일과도 같다. 냄비를 들고 서서 손이 타들어가는 줄도 모르고 가만히 냄비를 식힐 방법을 떠올리느니, 그 뜨겁고 뜨거운 냄비를 화들짝 하고 던져버리는 편이 나를 보호하는 일일 지도 모른다.
내가 들고 있던 냄비는 내가 무지 아끼는 냄비였다. 도저히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손에서 놓는다면 다시는 그 냄비를 사용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양손이 뻘겋게 달아오르다 못해 시커멓게 타들어가는 도중에도 나는 그 냄비를 꼭 움켜쥐고 있었다. 이제 그 냄비에 손을 떼어 놓기로 했다.
모든 문제에는 해답이 있을 거라는 착각은 살면서 자주 하게 된다.
하지만 이는 내가 문제를 문제로 받아들였을 때만 있는 환상 같은 것이다. 사실 어쩌면 그 자체가 문제가 아녔는지도 모른다. 쥐고 있는 냄비를 놓아버리면 잠시는 나에게 그 같은 행복이 없을 것 같은 착각과 우울에 빠져 들겠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끝까지 들고 있느라 익어버린 손으로는 다른 냄비뿐만 아니라 그 냄비조차 쥘 수 없다.
너무 뜨겁다면, 잠시 놓아두고 기다리자. 그것도 아니라면, 잽싸게 놓아버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