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멀리 해라. 별거 아닌 일이지만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 가벼운 시간약속은 '약속'을 임하는 상대의 자세를 알 수 있다. 약속은 상호 '신용'을 담보로 한다. 약속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신용'이 없는 것이다. '신용'은 사전적 의미로 '믿음성의 정도'를 의미한다. 믿지 못하는 상대와는 어떤 일도 할 수 없다. 믿음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의 다수는 '거짓말'에 익숙하다. 자신의 '신용'을 담보로 체결한 약속을 가볍게 여기는 이는 '도리'나 '책임', '의무'에 무책임하다. 인간은 예로부터 사회생활을 통해 문명을 만들었다. 사회적으로 관계를 쌓는 와중 자신에게 쌓여지는 몫에 '체면'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상대에게 믿음직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는 것으로 사회적 평판을 쌓는다. 그것을 하찮게 여긴 이와는 그 어떤 일도 함께 해서는 안된다. 아주 높은 확률로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는 이들은, 거짓말에 능숙하고 믿을 수 없다. 최초의 문명이 발달할 시기, 인간에게는 '물물교환'이라는 경제생활이 존재했다. 상대를 믿지 못하니, 눈에 보이는 현물의 가치를 즉각 교환하는 방식이다. 이런 원시 경제 방식에서 진화한 것이 '신용경제'다. '금'이나 '은'이 아닌 명목화폐를 만들어 없는 것을 있다고 믿는 것은 교환의 수단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켰다. 보다 큰 규모의 상거래에서 어음과 수표가 유통되고 소유권한을 쪼개어 나누어 갖는다. 상대의 '체면'을 담보로, 미래의 돈을 빌려 주기도 하고 그것을 보증하여 사채나 융자를 꺼내주기도 한다. 현대 자본주의는 온통 '신용'으로 이루어진다. 빵 한조각을 사먹기 위해, 비슷한 정도의 물건을 맞교환하는 이들은 없다. 대부분은 마그네틱 혹은 IC카드에 부여된 의의 숫자만 들고 다니며 교환한다. 돈 한푼 없이 수 천 만원 짜리 차를 구매하거나 수 백만원짜리 스마트폰을 가지고 나온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을 담보로 한다. 그것을 우습게 생각하는 이들과는 '일대일 물물교환' 수준의 경제적 활동만 허락하고 결코 신용경제 수준의 업무를 하지 않아야 한다.
유대인들은 과거부터 금융과 경제 교육을 특화했다. 이들은 과거 '척박한 중앙 아시아'에서 중계무역을 하곤 했다. 즉, 동서양이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혈안되어 있는 동안, 이들은 '신용'을 높여야 했다. 좌측에서 생산한 물품을 우측으로 넘기며 '수수료'를 받는 형태로 부를 키워온 이들에게 '믿음'은 절대적인 것이다. 유대인들은 다른 어떤 지역에 비해 '믿음'에 대한 교육을 철저하게 받는다. 현대 사회를 기반하는 것은 누가 뭐래도, '기독교'다. 기독교, 이슬람교, 천주교 할 것 없이, 이들의 종교는 대게 유대교에 뿌리를 하고 있다. 유대인들의 신앙에 대한 '믿음'은 유별났다. 기독교를 믿거나, 믿지 않거나 기독교가 만들어낸 질서에 살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과거 로마시대 변방 유대인들의 종교였던 '기독교'는 로마의 황제 '콘스탄티누스'의 개종에 의해 폭발적으로 확장했다. 로마가 서쪽과 동쪽으로 나눠진 뒤, 권력 투쟁을 위해 콘스탄티누스는 개종을 통해 '동쪽' 세력을 흡수했다.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이들을 커다랗게 하나로 결집 시킬 수 있는 것은 누가 뭐래도 '종교'다. 믿음 없는 종교는 없다. 로마가 기독교를 포옹한 뒤부터, 기독교는 세계적인 결집 매개체로의 역할을 한다. 생산성 확대보다 믿음을 중요하게 생각한 유대인들은 현대에 와서 어떤 의미가 있나. 유대인들은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덕분에 이들은 노벨 경제학상의 65%를 차지한다. 이들의 산업은 대게 '생산업', '제조업'보다는 '금융업', '서비스업'에 치중된다. 언론, 방송, 영화, 에너지, 지적재산 등의 무형의 것을 매매한다. 이들에게 신용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런 신용은 서로 같은 것을 믿는다는 확신에 의해 만들어진다. 자신이 '신'에 대한 믿음만큼, 상대도 신앙의 대한 믿음이 깊다는 믿음이 서로 간의 믿음을 만들어 낸다. 서로 알지 못하는 상대를 대번에 믿는다는 것은 상대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각각이 절대자에 대한 믿음의 정도를 신뢰하는 것이다. 그깟 10분, 20분 늦는 것에 대해 관대한 사람들이 많다. 인간은 누구나 사회적 체면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호모 사피엔스가 문명을 만들어 낸 것은 '함께' 했기 때문이다. 최초의 인류가 등장한 것은 440만 년 전이지만 439만7000년을 독자적으로 발전하다가 기원전 3000년 전에 모여산다. 그것이 최초의 문맹인 메소포타미아다. 400만년 넘게 독자적인 발달을 하던 인류는 오랜 기간 석기시대를 살아간다. 다만, 이들이 강가에 모여 살기 시작하자, 청동기, 철기 문화로 즉각 이동했다. 혼자서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독자적인 인간은 440만년 석기시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인간의 눈에는 '흰자위'가 존재한다. 상대에게 자신이 어디를 보고 있는지 알려주기 위해 '진화'했다. 커다란 눈은 고로 믿음의 상징이 됐다. 예로부터 인간은 '커다란 눈'을 동경했으며, 남성들은 눈이 큰 이성에 매력을 갖기도 했다. 커다란 사업을 일구는 이들을 보면, 이들의 눈이 보통사람들에 비해 크고 빛나는 것을 알 수 있다. 관상학적으로 눈이 크기 때문에 어떻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큰 눈이 상대로 하여금 '믿음'을 만들어 낸다는 의미다. 그것은 '관상학적'이 아닌, '생물진화론적'이다. 상대를 믿을 수 있는지 없는지, 그것을 대번에 알아차리는 것은 쉽지 않다. 종교의 다양성이 확대된 오늘날, 종교가 없는 이들도 상당한 오늘날, 상대의 종교에 대한 믿음을 살펴 볼 수도 없다. 그때, 그 사람의 신용도를 단번에 알 수 있는 것이 하나 있다. '시간에 대한 믿음'. 능력이 아무리 출중하더라도 시간 약속을 가볍게 여기고, 거짓말이 능숙하며, 신용이 없는 사람은 결코 믿지 마라. 언젠가 반드시 배반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