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지금, 그리고 여기_행복이란 무엇인가

by 오인환

한때, 경제적 자유라는 말이 유행했던 적이 있다. 같은 시기, 함께 유행했던 말로 '파이어족'이 있다. 최대한 빨리 벌고 젊은 나이에 은퇴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그것은 사회적 '유행'이 되곤 했다. 이런 현상을 대변이라도 하듯, 2022년 대한민국 국민의 행복지수는 OECD 38개국 중 36위다. 한국인은 행복하지 않다. 30대 이상 자살률은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목표지향적인 사회 분위기가 사람들의 행복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흔히 한국을 '수출주도형 성장' 국가라고 한다. 즉, 외부적 요인변화에 민감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이 아무리 잘해도 외부에서 커다란 소용돌이가 치면 가장 먼저 흔들리기도 한다. 한국인이 내면의 단단함보다 외부의 성공이 더 중요한 것도 같은 이유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는 '허세'라는 문화가 있기도 하다. 지난 반세기, 우리는 외부적 요인에 기민하면서 동시에 '성과주의'와 '목표지향성 사고'가 있었다. 그 둘은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핵심 사상이었다. 당연히 성과와 목표는 '내부'보다 '외부'에 영향을 받는다. 쉽게 말하면 '마시멜로 이야기'의 '만족지연'이 외부 성공의 미덕이 됐다. 사회 전체가 '국가 경제 성장률'을 살피는 나라는 많지 않다. 국가 신용도에 기민한 나라도 많지 않다. 이런 불확실성은 한국인들을 불안하게 했다. 요인이 안에 있다면 능동적인 대처가 가능하다. 다만 그 요인이 밖에 있다면 언제나 수동적으로 휘둘릴 뿐이다. 한국인들의 특성에 따라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굉장히 높다. 불안을 해소하는 방식으로 한국인들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한다. 현재를 희생했다고 미래가 밝아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희생했다는 자체만으로 자체 위안을 받는다. 예전 故 신해철 님은 한 강연에서 말했다. '스펙 쌓는 일'에 부정적이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스펙을 쌓는다'는 행위로 '불안감을 해소'할 뿐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것은, 최고의 성장 방식이었다. 대충 고성장 시기에는 과거에 희생을 하면 미래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았다. 사실을 따지고 들자면, 희생을 했기 때문에 성공한 것은 아님에도 그것은 미덕으로 여겨졌다. 사회는 이미 저성장 시대로 접어 들었다. 이제는 오래 버틸 수 있는 마인드와 행복감이 먼저다. 그렇다고 미래를 준비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이용하는 것은 필요하다. 경쟁이 치열할수록 그것은 불가피하다. 다만, 그것이 '희생'의 성격이어서는 안된다. 최대한 성취감을 쪼개어 먼 미래가 아닌, 당장 오늘에 느낄 수 있는 성취를 해야 한다. '하기'와 '되기' 중 '되기' 보다는 '하기'에 충실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목표는 '되기'에 둔다. 잘못된 목표 설정과 목표 지향이 허무주의를 만든다. 누군가의 목표가 '국가대표'라고 해보자. 막연한 그의 꿈을 응원하기는 힘들다. 어떤 종목에서 국가대표를 원하는지, 어떤 재능이 있는지, 재능과 노력의 방향은 서로 맞는지를 따지는 것이 먼저다. 학교에는 의미없는 노력들이 줄세워져 있다. 학습을 통해 무엇을 배우는지 보다, 명문 학교 학생이 되는 것이 우선하기에 생기는 현상이다. 이런 목표의식은 자칫 목표달성 시, 커다란 성취감 한 번만 안겨주고 사라져버릴 여지가 있다. 심지어 그 목표마저 모호하다면 성취도 힘들뿐더러 성취해도 쉽게 허무해진다.

모든 게임은 '로그아웃'으로 마무리되지만, 게임의 최종목표는 로그아웃이 아니다. 그것은 게임의 본질이 아니다. 로그아웃을 목표로 게임을 임하는 이는 없다. 게임은 과정을 즐기는 것이지 '이루는 것'이 아니다. 자칫 최종적으로 말하는 '달성'을 쫓아가다보면 가장 끝에는 '죽음'이 있다. 최대한 빨리 은퇴한다는 것은 언젠가 허무주의에 도달한다. 언제나 승리하는 게임이란 없다. 게임에는 확률상 패배도 존재한다. 다만, 패배를 했다고 게임을 하고 있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 또한 게임의 일부다. 게임의 본질은 '즐김'이다. 그 안에서 '패배'와 '승리'가 모두 게임의 한 조각이다. 게임에서 졌다고 게임에 접속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사람은 없다. 이처럼 당연한 논리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래의 행복'을 목표로 인생에 임한다. '부자'를 목표로 임하기도 한다. 인생에는 단연코 '목표'가 없다. 달성해야만 하는 것도 없다. 다만 설정하고 달성하는 '놀이'를 하고 있을 뿐이다. 흔히 '대통령'이라고 정의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우리는 '대통령'이라고 부른다. 아니다. 역대 대통령들은 60~70년의 인생 기간 중에서 대통령 임기는 고작 5년 뿐이다. 사람의 모습은 언제나 다면적이다. 상황에 따라서 지위에 따라서 달라보이기도 하지만, 3차원 공간에 시간이라는 하나의 차원을 더 한다면 더 입체적이다. 그들은 당연히 '대통령 임기' 기간보다 '국민학생' 시절이 훨씬 길다. 때로는 국회의원이기도 하고, 변호사이기도 하며, 대기업 사장이기도 하다. 그들을 '대통령'으로 규정하고 그들의 인생을 바라보면 그럴싸한 인물평전이 만들어진다. 다만, 따지고 보자면, 그들은 평생 매순간마다 그 자체로만 존재했다. 그 어느 모습도 그들 전체를 대변할 수 없다.

목표는 일종의 망상이다. 망상은 사전적 의미로 '근거가 없는 주관적 신념'을 말한다. 미래를 계산하여 예측할 수 있다는 믿음은 자신을 신으로 규정하는 오만이다. 말 그대로 근거 없는 신념이다. 세운 목표는 달성 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쉽게 말해 '되는 것'보다 '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인간의 영역에서 능동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목표만을 설정해야 한다. '최대한 빨리 벌고 은퇴하기'는 '행동'이 아니라 '상태'에 촛점이 맞춰져 있다. 이는 목표로 삼기 어렵다. 우리의 목표는 얼마나 추상적인가. '1등급 되기', '부자되기', '살빼기', '유명해지기', '상 받기' 이 모든 것은 우리가 능동적으로 할 수 없는 것들이다. 어쩔 수 없는 일에 집중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괴로움을 만들어낸다. 경기가 어려워지거나, 다니던 회사가 부도가 나거나, 사랑하던 사람을 잃거나. 인생에는 우리가 생각치도 않았던 상황들이 벌어진다. 잘못된 목표 설정은 이런 상황에 크게 좌절하게 한다.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언제나 긍정적으로 대처 할 수 있는 목표를 취해야 한다. 경기가 좋거나 말거나, 회사가 부도나거나 말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거나 말거나, 우리는 언제나 행복해야 할 권리가 있다. 외부적인 상황에 따라 행복을 맡기게 되면 너무나 쉽게 불행을 맛보게 된다. 행복은 언제나 능동적으로 자신이 취하는 것이며 과거나 미래에서 찾을 수 없고 오로지 능동적으로 존재할 수 있고 행동할 수 있는 지금과 여기에서만 가능하다.

20221214%EF%BC%BF151105.jpg?type=w580
20221214%EF%BC%BF151111.jpg?type=w580
20221214%EF%BC%BF151116.jpg?type=w580


keyword
작가의 이전글[정치] '운'으로 보는 김영삼 대통령_김영삼 재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