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철학은 순서가 아니라, 문제에 대한 고민의 농

by 오인환

우연히 '유튜브 쇼츠' 에서 건축현장, 나무 자르는 기계를 봤다. '제재기 사용법'을 알려주는 영상이었다. 흔히 공사 현장에서 자주 보이는 물건이다. 영상 속 인물은 제재기에 대해 설명을 했다. 얼치기 흉내가 아닌, 전문가의 내공이 느껴졌다. 이 인물의 다른 영상을 찾아갔다. 인물은 애띈 소녀다. 그녀의 영상을 몇 차례 살폈다. 영상은 대게 '건축'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사용하는 용어 중 적잖게 '영어'가 들렸다. 발음을 듣고 범상치 않음을 느꼈다. 다른 영상도 찾아봤다. 그녀는 '호주'에서 유학을 했고 나이는 스무살이라고 했다. 하단에 있는 구독 버튼을 눌렀다. 가볍게 스치고 지나갔던 순간이었다. 얼마 뒤, 유튜브 쇼츠에서 다시 익숙한 얼굴과 목소리가 들렸다. 'J.J의 1분 레시피'로 오프닝을 시작하는 영상이었다. 익숙한 배경이 보였다. 영상 속 배경은 내가 매일 보는 곳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를 어디서 봤는지 잊고 지냈다. 다시 그녀의 채널을 들어가니, 이미 봤던 영상들이 있었다. 다시 찬찬히 영상을 봤다. 건축에 대한 영상이 '유튜브 컨셉'이 아니라, 진심이라는 것을 알게 했다. 느낀 것은 숙연함이었다. 처음에는 호기심, 그 다음에는 숙연함, 마지막에는 존경심이 들었다. '제주'라는 공간과 '오세아니아 유학'이라는 공통점. 그것은 삶의 모습을 더 달라보이게 했다. 나이가 차오를 때마다 무섭게 굳어가는 내 표정에 비해, 영상속 인물은 일상이 즐겁다는 듯 싱글거리고 있었다. 그녀의 인스타그램 페이지를 팔로우 했다. 인스타그램에는 '아버지'로 보이는 인물과 찍은 사진이 많았다. 인생의 종류가 다양하다지만, 어떤 선택들이 쌓이면 이처럼 다채로워지는 인생이 될지 인간적인 호기심이 들었다.


뉴질랜드에서 소매 창고 일할 때였다. 어차피 더러워지는 일에 아침마다 편하고 저렴한 옷을 입고 출근 할 때였다. 그 시기, 비슷한 일을 하는 20대 백인 여성을 보게 됐다. 그녀는 깔끔한 정장 치마를 입고 힐을 신고 있었다. 가볍게 인사를 했다. 그녀는 커다란 트럭에서 자신의 몸집만한 상자를 꺼내 들고 내려와서는 자신들의 물건을 매장에 진열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진열하던 그녀는 화장실에서 옷매무새를 다듬고 진열된 상품에 대한 재고를 파악한 뒤, 나에게 서명을 받으러 왔다. '옷'은 '허세'나 비효율이 아닌 '품격'이 느껴졌다. 생각해보면 '옷'은 그렇다. 영화에서 보는 '첩보원'들은 말끔한 정장 차림을 하고 과도한 액션을 취한다. 그 모습을 보고 '비효율'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일하기 편한 복장을 위해서라면, 모든 직장인들은 츄리닝에 티셔츠를 입고 다녀야 한다. 농사를 짓거나 건설현장에 있는 이들은 어쩐지 싸구려 작업복을 입어야 한다는 편견이 있다. 다만, '전진소녀 이아진' 님의 영상에서 의복은 굉장히 중요하다. 그것은 비효율이 아닌, 직업을 대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뉴질랜드에서 상품을 정렬하던 20대의 백인 여성의 모습은 지금도 다시 떠올리면 멋있다는 생각이 든다. 일하는 사람의 의복을 보고 사람들은 그 직업에 대한 선입견을 갖는다. 고로 진짜 그 직업을 사랑하는 이들은 자신의 일에 대한 사회적 시선과 예우도 다르길 바란다. 그런 인식을 다르게 하고 싶다고 그녀는 말한다.


'철학'은 순서가 아니라, 문제에 대한 고민의 농도다. '라떼는 말이야...'라는 말이 있다. 먼저 경험해 보니 어떻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나이가 많아질수록, 먼저 한 경험이 자랑처럼 느껴진다. 다만 철학은 순서가 아니라 문제에 대한 고민의 농도에 따라 달라진다. 예전에 유연하게 알게 된 일을 지인에게 소개해 준 적이 있었다. 지인은 처음하는 경험에 이것 저것 질문을 많이 했다. 잘 알지 못하는 지인에게 먼저 알고 있다는 우월감이 묻은 조언을 해 주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는 모르겠으나, 시간이 흐르고 내가 했던 고민보다 더 깊은 고민을 했던 지인은 그 분야에 '전문가' 수준으로 성장해 있었다. 오랫만에 만난 그와 이야기를 하다가 깨달았다. 더이상 나의 조언이 주제를 넘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먼저 경험했다는 사실만으로 더 깊이 있는 철학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문제에 있어서 가장 철학적인 고민을 한 이는 먼저 고민을 해봤던 이가 아니라, 그 문제에 대한 고민의 농도가 깊었던 이들이다. 과거 농업 중심 세계에서 할아버지와 아버지, 아들은 모두 같은 일을 했다. 아들이 하는 고민은 아버지가 먼저 경험했던 고민들이었고, 아버지의 고민 또한 할아버지가 먼저 했던 고민들이었다. 세대가 같은 고민을 할 때, 고민의 농도는 순서가 중요했다. 다만 시대가 지나면서, 세대가 달라졌다. 세대를 넘나드는 위와 아래의 고민만큼이나 좌우 친구들도 모두 비슷한 고민을 하던 시기가 지나갔다. 이제는 세대는 물론 같은 세대에서도 살아가는 방식이 각자 달라졌다. 어른들이 시키는대로, 사회가 만들어놓은 틀대로 살아가는 정답지가 사라진 세상에서 가장 농도 깊은 고민은 가장 최근까지 그 고민을 했던 사람들이다. 나이가 어릴수록 고민의 농도는 깊고 최신이다.


학교와 사회는 비슷하지만 다르다. 그녀는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났지만 배움은 그치지 않았다. 학교는 가르침을 먼저 주고 시험을 치지만, 사회는 시험 먼저 치르고 가르침을 준다. 배움에 순서가 중요하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학교를 졸업하면 배움을 멈춘다. 배움에는 순서가 없다. 학교 시험은 틀린 문제에 대한 해결법을 알려주지 않지만, 사회에서는 그 해결법도 배우도록 도와준다. 그녀가 얼마 전, 중학교 검정고시, 고등학교 검정교시를 치루고 수능시험도 치뤘음을 알고 있다. 또한 꿈에 그리던 건축학과에 진학을 앞두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유튜브 영상을 보면 언제나 싱글거리는 그녀의 뒷편에 얼마나 많은 고민과 좌절이 있었는지 책을 읽어보지 않았다면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가진 철학이 깊이가 분명 남다르다는 사실은 나이를 넘어 존경하게 만든다. 벌써 6만명이 구독하는 채널이지만, 앞으로 30만, 50만 이상으로 크게 성장할 채널 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20221216%EF%BC%BF125014.jpg?type=w580
20221216%EF%BC%BF125018.jpg?type=w580
20221216%EF%BC%BF125023.jpg?type=w580


keyword
작가의 이전글[생각] 시간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_눈빛과 신용에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