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5세의 가문은 스위스 알프스 부근 작은 시골 영주에 불과했다. 1516년 외할아버지로 부터 왕위를 물려 받은 이후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스페인, 이탈리아 남부, 북아프리카 해안, 포르투갈의 영지를 추가한다. 이후 멕시코, 페루, 첼레 등 아메리카 신대륙의 영토와 동아시아의 필리핀 영토 또한 추가 한다. 영국을 일컬어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 부르지만, 그에 앞서 '스페인'이 먼저 해가 지지 않는 광활한 제국을 건설했다. 작은 시골 영주의 세력은 유력 가문과의 혼인하며 확장했다. 중앙 정부가 수도와 일부 요충지만 통치하고 나머지 지방을 제후나 영주에게 나눠 통치하는 제도를 '봉건제'라고 부른다. 봉건제 구조는 폭발적인 확장이 가능했다. 기존 세력을 흡수하는 방식으로 덩치를 키우기 때문이다. 다만, 이제도에는 문제가 있다. 바로 '지속적인 확장'이다. 이는 하부회원을 모집하여 수당을 분배하는 '다단계 유통 방식'을 닮았다. 무한한 확장을 전제로 구조가 유지된다는 것이다. 당시 주요 산업은 농업이다. 현대의 관념과 다르게 과거의 농토는 '무한적인 생산'이 가능하지 않다. 당시의 농업은 현대 농업과 같게 생각하면 안된다. 비료가 보급되기 전에는 지력(地力)을 회복하기 위해 휴경이 필수적이다. 고로 기존 영주의 입장에서 농토는 점차 생산성을 잃어 갈 수 밖에 없다. 중앙정부는 지배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영주에게 생산수단을 제공해야 한다. 고로 지대 확장은 봉건제 하에서 구조적인 결과였다. 스페인 제국의 패권이 침략과 탈취를 동반했다는 것은 시대적으로 불가피한 흐름이었을지 모른다. 스페인의 확장은 꾸준하게 지속된다. 대항해 시대를 통해 새로운 대지를 영주에게 나눠주는 일을 계속할 수 있었으나, 이후에는 문제가 발생한다. 남미에서 대규모 은광이 발견되면서 스페인은 전세계 금 생산량의 83%를 차지하는 부국이 됐지만, 급격한 통화량 확대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당시 전쟁과 기타 경제적 상황에 의해 재정적자가 심각해진 스페인 제국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유대인'을 추방하고 재산을 몰수한다. 이때, 총 17만명의 유대인이 추방당하는데, 그로인해 스페인 제국의 금융산업과 유통산업이 붕괴된다. 스페인의 재정문제는 더욱 악화된다. 이로인해 스페인은 독일이나 제노바 등 외국 금융가로 부터 돈을 빌린다. 그 이자가 40%가 넘어가면서 심각한 재정난에 휩쌓인다. 이들은 식민지로부터 세금을 징수하는 방법을 통해 재정을 호전 시키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추방된 유대인'을 주축으로 경제를 부흥시킨 '네덜란드'가 스페인제국으로부터 불만이 쌓인다. 이런 불만은 네덜란드 독립전쟁을 일으키게 한다. 40%의 높은 이율을 외국 금융으로 부터 사용하던 스페인 왕국은 '자국 유대인'에게 연 3%의 낮은 이율을 통해 전쟁지원금을 받던 네덜란드와 싸워야 했다. 그 결과 세계의 패권은 스페인에서 네덜란드로 넘어간다. 네덜란드는 이후 패권을 넘겨 받는다. 다만 이후 출항하는 배들 중 20%가 돌아오지 못하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를 결성하여 아시아와 무역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갖는다. 다만, 네덜란드도 스페인과 같은 문제를 갖는다. 적은 영토와 느슨한 연방제 국가는 '봉건제'의 한계에 부딪친다. 이후의 패권은 네덜란드의 장점을 흡수한 '영국'으로 넘어간다. 영국은 스페인이나 네덜란드와 달랐다. 이들은 명예혁명을 통해 정치적으로 안정적인 중앙집권을 갖고 있었다. 또한 농업 방식에 변화가 생긴다. 지주들은 기존 농업이 아니라 일손이 적게 드는 '양목축'을 하기로 한다. 그로인해 생겨난 잉여 노동력이 도심으로 이동하면서 '산업혁명'이 일어난다. 영국은 생산성이 극도로 확장되며 새로운 '판매처'가 필요했다. 과거 패권국들과는 다른 의미로 '식민지'가 필요했으며 이들은 대게 '자유무역'을 요구하곤 했다.
세계의 패권을 영국이 갖고 가던 시기 영국은 꾸준하게 무역흑자를 갖는다. 다만 영국은 북아메리카에 더 많은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 무리한 전쟁을 한다. 이 전쟁을 '7년 전쟁'이라고 하는데, 이 전쟁으로 인해 영국은 북아메리카의 퀘벡을 비롯한 대부분의 북미 지역을 얻는다. 다만 이 과정 중 심각한 재정악화로 국고가 바닥이 난다. 이에 대한 방책으로 영국은 전쟁 비용을 식민지 주민들에게 부담하는 정책을 폈는데, 이에 따라 식민지 주민에게 '설탕, 차, 종이, 유리'등에 세금을 물렸다. 지나친 세금 징수에 식민지 주민들은 반발하고 폭동한다. 대표적으로 1773년 보스턴 항구에 실려 있는 홍차를 불태운 사건이다. 이를 '보스턴 차 사건'이라고 부른다. 이 사건으로 미국은 영국으로 부터 독립한다. 영국이 7년 전쟁을 통해 아메리카 대륙의 식민지화를 확장하려고 했으나 결국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게 된 것이다. 이후 미국은 '석유'와 '철강' 산업이 활성화 된다. 자동차, 철도가 주요 산업의 핵심이 되면서 미국은 세계 제조업의 최강국으로 발돋음한다. 보호주의를 통해 엄청난 생산성을 갖게 된 미국은 이후 공급력 폭발이라는 문제로 인해 '대공황'이 일어난다. 이 대공황을 해결할 수 있었던 원인으로 세계대전이 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미국은 세계라는 커다란 시장을 확보하고 엄청난 패권국으로 발돋음한다. 수 백년에 걸처 이동했던 패권의 이동을 보면 가장 중요한 것은 시대의 흐름이다. 시대가 만들어낸 흐름에 잘 올라탄 국가는 비록 '작은 규모'거나 '식민지'라고 하더라도 다음 세대의 패권국으로 올라선다. 언제나 '자유주의'로 진화해 왔을 것 같은 세계 무역의 흐름은 실제로 '보호주의'와 '자유주의'를 오가며 팽창과 축소를 반복한다. 시대의 흐름을 아는 이들은 줄 곧 다음 흐름을 깨닫고 현명한 투자를 통해 큰 부를 얻기도 한다. 실제로 스페인 제국으로부터 추방된 유대인들은 네덜란드를 비롯해 현재 북미까지 적절한 투자를 통해 지금도 세계 패권을 쥐고 있다. 세계의 패권은 국가명을 달리 이동하지만 그 기회는 언제나 국적과 무관하게 열려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