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가장 이기적인 것이 가장 이타적이다

명상어플 <코끼리> 앱 계약했다.

by 오인환


얼마 전, 감사하게도 '(주)마음수업'에서 메일 제안을 받았다. 수면, 명상 앱 코끼리에 대한 내용이다. 이 앱은 45만 명이 선택한 앱이다. 최인철 교수님, MKYU 김미경 대표님, 환희지 명상 전문가 님, 마인드풀룸 곽정은 님을 비롯해 여러 전문가가 제작에 참여했다. 주제가 넘지만 함께 하기로 했다. 여러가지 이야기를 목소리로 전할 수 있게 됐다. 글로만 참여할 수도 있으나, 기왕이면 목소리로 녹음을 진행하고 싶다고 했다. 가장 이기적인 것이, 돌고돌아 가장 이타적이라는 생각에서다. 이타적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남에게 득이 되는 이기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 때론 가장 이타적인 결과가 된다. 벌과 나비는 꽃을 수정시키기 위해 수분활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벌과 나비는 이기적일수록 꽃이 이득을 본다. 내 입에 넣어 본 적 없으나, 남의 입에 맞을 거라는 확신은 '이타심'의 오류다. 자신을 성장시킬 가장 좋은 것을 곱씹고 꺼내면 반드시 누군가의 무기가 된다. 죽은 시계는 하루 두 번 정확하게 맞는다. 어설프게 움직일수록 '정확한 시간'에 명중하는 일은 멀어진다. 이기적인 것은 이타적이다. 여기서 이기적이라는 것은 어설픈 이기심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남보다 내 것이 중요하다는 '욕심'과 다르다. 남을 떠나서 나의 것은 중요하다는 인지다. 자신이 중요하면 반드시 남도 가치를 안다. 정신과의사로 현실치료와 선택이론을 창안한 윌리엄 글래서(William Glasser)에 따르면 읽는 것은 10%, 듣는 것은 20%, 보는 것은 30%, 보고 듣는 것은 50%, 토론하는 것은 70%, 경험하는 것은 80%의 기억률을 가진다고 한다. 연구에서 95%로 가장 높은 기억률을 가지는 활동은 '남을 가르치는 일'이다. 배우는 사람보다 가르치는 사람이 더 일취월장하는 이유다. 2019년 부커 상을 받은 '버나딘 에바리스토'는 말했다.


"내가 읽고 싶은 책이 세상에 없어서 직접 썼다."


이기심은 이타심을 낳는다.



글과 말을 준비하는 과정 중에 가장 위로 받는 것은 자신이다. 자신을 위로 하기 위한 가장 이기적인 '멘탈관리법'이 '죽은 시계'처럼 오롯하게 누군가를 타겟할 것이다. 더 특별하게 열심하지 않아도, 덜하지 않아도 지금만큼의 열정에 오롯하게 맞아지는 누군가를 타겟할 것이다. 죽어 있는 시계의 어설픈 움직임은 되려 타겟을 맞추기 어려워진다. 인간에게는 두가지 본능이 있다. '종족보전본능'과 '생존본능'이다. 이 둘은 무의식에서 중요한 본능이지만, 개중 '생존본능'이 '종족보전본능'보다 상위한다. '이타적 인간'이라는 환상은 생물학적으로 적합하지 않다. 가장 이기적인 생각이 가장 이타적인 생각이다. 벌과 나비가 꽃을 위해 일하고, 꽃은 또 다른 누군가를 위해 일하고, 그 누군가도 다른 누군가를 위해 존재한다면, 각자는 온전한 존재의 이유가 사라진다. 본인의 존재도 입증하지 못하는 이의 이타심은 본질을 상실한다. 그것은 아름답지도, 유토피아적이지도 않다. '나라면 어떡할까'라는 고민은 이기적이지만, 이타적이다. 나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기에, 누군가를 성찰시킬 재목이 못된다. 건방지게 가르친다는 생각이 아니라, 가장 이기적인 컨텐츠를 제작하는 것이 핵심이다. 사람의 성향은 각각 다르다. 사람들은 '혈액형' 4개로 유형을 분류하고 MBTI 16개로 분류하고, 남자와 여자로 분류해서 서로 공감하고 위로한다. 70억의 인류를 분류하기에 기가막히게 유형의 갯수가 적지만, 대게 전부다 그 유형 안으로 들어간다. 각자 다른 개성을 갖고 있지만, 보편적 번뇌가 있다. 상대의 고민을 해결해 주겠다는 자세보다, 내 고민을 해결하는 방식을 담는 것이 중요하다. 나 만큼 내 고민을 고민해 주는 이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나 또한 상대의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없다. '똥' 묻은 개든, '겨' 묻은 개든 본인에게 묻은 걸 해결하는 것이 먼저다. 자신의 것보다 상대의 것이 더 잘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생각치 못한 기회에 감사하다. 조용히 하루를 마무리할 즈음 써두는 글 몇자가 뻗어나간다. 글쓰기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모든 이들에게 말한다'는 말이 떠오른다. 단순히 나를 닮은 글들에 공감해 주는 분들이 생겨나면서 응원 받는다. 나는 지독하게도 '마이너' 같은 사람이다. 유형으로는 1%도 되지 않을 것이다. 이런 1%는 솔직하면 솔직 할수록 격없이 공감 받는다. 상대적인 숫자 1%는 찾아내면 찾아낼수록 절대적인 숫자는 많아진다. 나를 아는 사람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1%는 발견 된다. 1%는 대한민국에 50만이나 있다. 어설프게 5000만에게 좋은 이야기를 하느니, 정확한 50만을 찾는게 낫다. 모든 사람에게 선택받는 것은 그릇에 맞지 않다. 맞지 않는 이들도 함께 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모순된 것을 가지려는 행위는 욕심이다. 오른쪽과 왼쪽을 동시에 가고 싶다는 것은 모순이다. 조용히 천천히 나를 들어내며 닮은 이들을 찾아내는 것, 그들과 소통하는 것, 그것이 어쩌면 가장 이기적이면서 이타적인 방법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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