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승과 하강으로 명징하게 직조해낸 신랄하면서 처연한 계급 우화'
이동진 평론가가 영화 기생충에 대한 평론으로 이와 같은 한 줄을 적었다. 예전 같으면, 유야무야 넘어 갔을 테지만 시대가 달라져서 평론은 '논란의 중심'이 됐다. 원래 글이란 읽힘이 쓰임이다. 고로 독자들이 이해하기 쉬워야 하는게 글의 핵심이라는 것이 논란의 핵심이다. 실제로 '명징'과 '직조'라는 말은 쓸 일도 없고 써 본 적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불편한 마음을 보이는 독자들이 더러있었다. 만약 가까운 친구에게 좋은 말을 해주고자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해보자.
"Kāore te kumara e kōrero mō tōna ake reka."
아마 상대는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마오리족 언어로 겸손하라는 의미의 속담이다.
"고구마는 자신이 얼마나 달콤한지 말하지 않는다."
말을 듣는 상대가 '마오리족'이라면 의미를 바로 받아 드릴 것이다. 문화적 혹은 언어적 이질감이 없을 거라는 기대는 언어를 거부감 없이 사용할 수 있게 한다. 그렇다면 한자로 구성된 어려운 말을 사용하는 것이 '잘난 척'하거나 '권위주의'를 의미하는 것일까.
한자가 한반도로 전래된 것은 고조선 후기 쯤으로 한민족 건국 초기부터 공문서로 보편적이게 사용됐다. 현대 대한민국 국민의 90% 이상이 한자 이름과 성을 사용하고 있으며 지명 뿐만 아니라 법학, 경제학, 인문학 등 거의 대부분의 분야에 한자가 사용된다. 한자를 소통수단으로 사용한 것에 대해서는 문화적으로, 역사적으로 이질감이 없다. 가만히 보면 우리가 사용하는 한자어 중에 이해하지 못 해야 할 한자어들이 있다.
사면초가(四面楚歌)가 그렇다. 사면초가는 '사방에서 들리는 초나라의 노래'라는 의미다. 굳이 영어로 번역해 보자면 이렇다.
'The song of Cho Dynasty coming from all four directions.'
이 말은 언제 사용하는고 하면, 누구에게도 도움 받지 못하는 고립된 상태일 때 쓴다. 'The song'으로 시작하는 영문 뜻을 보면 도통 이 말을 사용할 일이 없어보인다. 다만 '사면초가'라는 말은 중학교 수준의 교육수준만 받으면 너무나 흔하게 사용되는 말이다.
'사면초가'가 본래 어떤 의미로 쓰였는지와 상관없이, 문맥상 주는 어감이라는 것이 있다. '명징'과 '직조'가 정확하게 무슨 뜻인지 알 수는 없다고 해도, 대략적으로 어떤 의미인지는 문맥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꼭 '명징'과 '직조'가 아니더라도 정확히 그것이 무슨 뜻인지 모르고 사용하는 말들은 수없이 많다. 기독교인의 71%는 '아멘'의 정확한 뜻을 모르고 사용한다. 대부분의 불자 또한 '나무아미타불'의 의미를 모른다. 10대 대부분이 사용하는 용어인 '썸네일', '어그로', '손절', '오타쿠' 등도 모두 정확한 뜻 모르고 문맥에 맞춰 쓴다. 정확한 어원이나 의미를 아는 사람은 역시 많지 않다. 그러나 사용한다. 대략적인 의미를 파악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문자를 읽어내는 능력이 아니라, 그 문자가 닮고 있는 의미를 파악하는 것을 '실질문맹률'이라고 한다. 대한민국 국민의 문맹률은 1% 미만이다. 대부분의 국민이 글자를 읽을 수 있다. 다만 우리나라의 '실질문맹률'은 75%나 된다. 문장을 읽고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다. 실제 인간은 의사소통에서 사용하는 '어휘' 수준이 크게 많지 않다. 대부분은 그저 문맥상 파악하고 이해한다. 두껍고 어려운 책을 읽고 있으면 사람들은 묻는다.
"무슨 뜻인지 알고 읽으시는 건가요?"
굳이 말하자면, 책에 있는 단어의 뜻을 모두 알고 읽는 것은 아니다. 문맥상 파악하고 넘어가는 것이다. 실제로 '다정한 물리학'이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책을 보면, 알 수 없는 '명사'들이 나온다. 모르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하나씩 단어의 의미를 찾아보고 읽을 수는 없다. 앞과 뒤의 문맥을 보면서 그 의미를 유추하는 것이다. 한 때, 나에게 영어 회화 과외를 받던 학생이 물었다.
"'Take a rest, take a picture, take over, take out' 도대체, take를 뭐라고 해석해야 하나요?"
그건 알 수 없다. 그냥 문맥상 이해하는 수 밖에 없다. 문맥상 이해를 위해서는 많이 읽는 수 밖에 없다.
"배가 아프다."
이 말은 신체의 한 부분이 아프다는 의미일지도 모르지만, 조금 전까지, 타이타닉에 대한 소개를 하고 있었다면 '배'는 운송 수단이 된다. 그것은 '단어'의 역할이 아니라 앞에 걸려 있는 수많은 문장들의 역할이다. 표준국어대사전 표제어에 제시된 명사를 기준으로 한자어는 우리말의 81%를 차지한다. '한자'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자는 '함축하여 의미를 표현할 수 있는 굉장히 효과적인 글자다.' 그것을 공부하는 것은 '중국'과는 별개의 문제이며 한자의 음과 대략의 뜻만 아는 것으로 효과적인 문맥상 의미를 유추해 낼 수 있다. 한자가 구성된 원리를 뜯어 살펴보면 '역사'는 물론 '철학'과 '인문학'을 배울 수 있다. 문자를 만들어낸 창작자의 해석뿐만 아니라, '사용자'만의 해석도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다. '여름 하(昰)'로도 사용하는 이 한자는 왜 여름을 뜻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내가 해석하기에는 '해(日)가 바르게(正) 서있는 모양'이라고 해석한다. 실제 그 글이 만들어진 원리는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그 의미와 철학을 넣어 볼 수 있다. 과거 한자 선생님은 女(계집 녀)가 들어간 한자는 몽땅 부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이후 女(계집 녀)자는 '계집'이라는 단어 대신에 '여자'라는 단어로 바꿔 사용했고 실제로 '女(여자 녀)'가 들어간 한자가 모두 부정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마다 자신의 철학대로 학습하고 이해하기 때문에 생기는 오해들이 많다. 그것은 부정적으로 보여질 수도 있으나, 그만큼 주체적인 해석의 여지가 많은 글자라는 장점도 있다.
우리의 한자가 비효율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그렇다고 보기 어려울 수도 있다. 우리의 경우에는 글자 하나당 하나의 음을 갖는 것이 기본적이 원칙이다. 옆나라 일본의 경우에는 '一日'라고 쓰고 '이치니치'라고 읽어야 할지, '스이타치'라고 읽어야 할지 문맥에 따라 달라진다. 또한 같은 한 일(一)자가 들어가도 '一人'는 '히토리'라고 읽는다. 일본 소설을 읽다보면 일본인들은 '명함'을 서로 주고 받으면서 '어떻게 읽어야 하나요?'라고 묻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 일본의 한자가 하나의 음으로 소리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웃지 못할 상황이다. 어찌됐건 대한민국에서는 한자를 '쓸'일은 많지 않다. 그저 음과 뜻을 대략 치환할 수 있는 정도의 문해력만 있다면 얼마든지 대략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흔히 'MZ세대의 어휘력'에 대한 내용이 자주 미디어를 통해서 보도가 되곤 한다. 모든 것이 그렇지만, 사실 가격이라는 것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 다수의 사람들의 문해력과 어휘력이 약해진다는 것은 그만큼 '한자력'이 값어치가 더 올라간다는 의미를 뜻한다. 한자는 앞으로 '시대에 맞지 않는 문자'가 아니라, 경쟁력이자 미래 리더에게 필수적인 도구가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다. 신동욱 작가의 '어른의 한자력'은 한자 교재라기보다 '신동욱 작가'가 한자를 보며 집필한 '에세이'다. 거기에는 자기관리에 관한 철학과 자신의 여러 이야기가 담겨 있으며, 현대인들이 직장과 사회에서 겪는 다양한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볼 만한 질문을 던진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