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는 기회다
나무 이야기다. 겨울이 오면 해는 일찍 떨어진다. 해가 일찍 떨어지니 광합성을 하지 못한다. 광합성을 못하니 에너지가 적어지고, 에너지가 적어지니, 생존에 위협을 받는다. 생존에 위협을 받은 나무는 자신의 몽뚱아리에서 가장 불필요한 것을 덜어 낸다. 여름에 모세관 현상으로 체온을 조절하고 태양 에너지를 공급받는 '나뭇잎'을 덜어내기로 한다. 나무는 가지에서 잎으로 들어가는 에너지 파이프라인의 벨브를 잠근다. 에너지 공급에 문제가 발생하면 잎은 말라들기 시작한다. 광합성을 하지 못하니 녹색을 띄지 않는다. 그렇게 떨어지는 것이 낙엽이다. 낙엽이 지지 않으면 나무는 긴 겨울 말라 죽는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상황 상 가장 불필요한 것을 덜어낸다. 불필요한 것을 알며 미련하게 함께 안고 가는 것은 '생존'에 위협을 준다. 언제나 '봄'이면 좋다. 다만 형이상학적으로 우주의 모양은 '원'이다. 은하가 둥글고 태양계가 둥글고, 지구가 둥근 것은 그것이 우주의 기본 모양이기 때문이다. 우주의 모든 것이 둥글고 '회전'하기 때문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은 곧 우주의 법칙이 된다. 위 아래로 출렁이며 전진하는 '경기순환곡선'도 '원'을 풀어 그린 것이고, 흥망성쇠가 반복하며 번영한다는 인류 역사도 '원'을 풀어 쓴 것이다. 저혼자 우주를 떠나 독자적인 존재라면 모를까, 우주에 속해 있다면 우리는 '원'을 닮아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맞이한다. 마침 원의 성질을 닮아, 이는 겨울이 지나면 다시 '봄'으로 순회하며 전진한다.
그것이 우주의 법칙임을 모르기에 성장할 때는 성장만 할 것 같고, 무너질 때는 무너지기만 할 것 같다. 갈 길을 알고 가는 자와 막연하게 상황에 매몰된 자의 차이는 여기서 발생한다. '한라봉 농사'를 짓다보면 '적과 작업'을 하게 된다. '적과 작업'이란 멀쩡히 달려 있는 열매의 다수를 손으로 뜯어내는 작업이다. 봄에 꽃이 피고 여름에 작은 열매가 열리면 농사꾼은 가지 하나를 잡고, 가장 실한 열매 하나를 제외한 나머지를 다 뜯어 버린다. 아깝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멀쩡하고 실한 놈들을 뜯어내는 일은 가슴 아프다. 만약 마음이 약해 열매를 덜 뜯어내면 그 해 농사는 망친다. 반드시 하나를 위해 달려 있는 나머지를 모두 뜯어내야 한다. 개중 가장 실한 녀석에게만 에너지를 집중 공급하기 위해서다. 그것을 '몰입'이라고 부르는 것도 좋은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영화를 보고 싶지만, 주어진 시간이 한정적이라면 하나만 해야 한다. 이를 경영전략 학자 '마이클 포터'는 '선택과 집중'이라고 했다. 국가 경제가 부도 나기 직전, 우리를 성장시던 '방식'은 '다각화'다. 조금 부정적인 단어로 말하자면 '문어발식 확장'일 수 있다. IMF를 맞이한 겨울이 되자, 우리는 한라봉 적과 작업처럼 가장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내기 시작했다. 과거에 맞았던 것이 지금도 맞는다는 착각은 '원'을 닮은 우주를 '직선'으로 착각하는 삶과 닮았다.
과거 몽골민족은 '조랑말'을 타고 세계를 지배했다. 몽골이 이처럼 뻗어 나간 이유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유목민'이었다. 유목민은 정착하지 않고 언제나 이동한다. 온갖 소유재산을 가지고 있는 우리와 다르게, 그들은 언제나 가볍게 살았다. 이곳에 있다가 저곳으로 갈 때, 무엇을 버려야 할지 항상 고민했다. 생존에 가장 필요한 필수적인 것을 골라내는 능력은 '소빙하기' 시대에 빛을 바란다. 그것을 나는 '본질을 파악하는 능력'이라고 본다.
'본질을 파악하는 능력'
잡다한 수 만가지 중에서 핵심가치를 단 번에 파악하는 능력. 다른 말로는 통찰력이다. 오래 머물러 있을수록 가진 것이 많을수록 그 중 핵심을 찾는 것은 어려워진다. 2021년 10월에 있던 일본 하원 선거에서 군마현 오타시는 '코로나 안녕'이라는 문구가 적힌 연필을 선거에 사용하려고 했다. 다만, 선거기일이 앞당겨지면서 일본 행정부는 급하게 공무원을 동원하여 연필 1만개를 수작업으로 깎았다. 연필로 직접 후보자의 이름을 적어서 투표한 일본의 특이한 선거 방식 때문이다. 누가봐도 비효율적인 선거 방식이지만, 일본정부는 관행을 바꾸지 못했다. 살다보면 그런 것들을 보게 된다. 최초에는 분명 그러할 이유가 있었으나, 나중에는 '이유'가 사라지고 '전통'만 남는 행위 말이다. 행위를 위한 행위만 남으면 그것은 반드시 겨울에 덜어내야 한다. 겨울이 오고 덜어내야, 봄에는 새싹이 돋는다. 나무가 영생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덜어낼 때를 알기 때문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비숍 근처에 있는 '므두셀라'는 5000년이나 된 나무다. 나무는 덜어내고 새로 키워내고를 반복하며 영생한다. 이들에게는 둥근 나이테가 있지만 이는 영광의 흔적이다. 나이테는 경제 그래프, 삶의 모양처럼 우주를 닮았다. 점차 확대되어가며 원으로 성장한다. 목재에서 나이테가 많을수록 단단하다고 본다.
위기는 기회다. 슬럼프는 되려 단단하게 성장하게 한다.
아무 일도 없다면 좋겠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라는 마음가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