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천지인(天地人) 혹은 삼재(三才)로 보는 세상

by 오인환

석 삼(三)자를 보면 동양 철학을 알 수 있다. 가장 위에 있는 선은 '하늘', 가장 밑에 있는 선은 '땅'을 의미한다. 여기 하늘과 땅 사이에 사람이 있다. 천지인(天地人)은 하늘과 땅, 인간이 어울어고 각각 대등한 위치에 존재한다. 어느 하나가 독보적이지 않고 적절하게 조화를 이룬다. 삼재(三才)는 오래부터 한반도에서도 사용됐다. 얼핏 기억하기에 부채나 대문, 북 등에서도 보인다. 태극기의 둥근 원에 음과 양으로 나눠진 '태극'이 있다. 이 태극문양은 음양태극이라고 하는데, 여기에 노란색이 하나 더 추가된 것이 삼태극(三太極)이다. 예전부터 일본과 한국에서는 이런 삼태극을 자주 사용하곤 했다. 삼태극은 셋이 서로 균형을 이룬다. 서로 조화롭다. 여기서 하나만 빠지더라도 그 균형은 무너진다.

예전 정치인들은 이 삼태극의 균형을 중요하게 여겼다. 하늘과 땅, 인간의 조화 말이다. 그래서 임금 왕(王)자는 석 삼(三)자를 위에서 아래로 관통한다. 현재 정치는 다르다. '인간'만 중요하게 생각할 뿐이다. 임금 왕(王)에서 하늘을 의미하는 하나가 빠졌다. 이를 걷어내면 흙 토(土)가 된다. 진정한 '정치'는 땅과 사람만 지배하는 것이 아니다. '하늘의 의미'를 아는 것이다. 하늘과 땅, 인간의 조화로움은 '자연스러움'을 말한다. 자연스럽다는 것은 '이치에 맞다'는 것이다. 여기서 '인간'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홍익인간(弘益人間)이라는 단군 건국 이념을 보면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라는 의미가 있다. 왜 단군은 '조선인'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포괄절인 관념을 사용했을까.

국가주의 이념은 '국가'를 가장 우선시 한다. 가령 '의사'가 전쟁 중 적군을 치료해야 하는 상황이 왔을 때, '애국'과 '인간' 중 무엇이 옳은 일일까. '이어령' 선생은 '한국'과 '일본'이 축구경기를 빗대어 이를 말했다. 두 국가가 치열하게 경기를 한다. 한국이 골을 넣으면 기뻐한다. 반대로 골을 먹히면 분해한다. 이에 대한 철학적인 고찰이 있다. 스포츠에서 국가를 빼면 모든 기쁜 일도 분할 일도 없다. 인간이 골을 넣고 골을 먹는다. 어느 인간이 골을 넣던 그 자체가 의미가 있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게티즈버그 연설에서 민주주의의 정신과 기본 원리를 밝혔다. 여기서도 국가주의가 빠진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번역된 표현에서는 '국민'이라는 표현이 사용된다. 다만 에이브러햄 링컹의 원어 표현은 다르다.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국민이 아닌, 사람'이 들어간다. 홍익인간의 건국이념과 닮았다.

'공자가어', '여씨춘추' 등의 책에 '형나라 사람이 활을 잃어버린 이야기'가 나온다. '형나라 사람'이 활을 잃고 찾지 않았다. 그러니 말했다.

"형나라 사람이 잃은 것은 형나라 사람이 주울 것이다. 그러니 찾아서 무엇하겠는가."

그러자 공자가 말했다.

"거기에 '형나라'을 빼는 것이 옳다."

사람이 주울 것이니 괜찮다는 의미다. 여기에 '노자'는 다시 말했다.

"거기에 사람도 빼는 것이 옳다."

경계선을 하나씩 해체할 때마다 포용성이 높아진다. 그것이 가족이고, 친구이고, 한국인이고, 인간이기 때문에 사람은 포용성이 적어진다. 경계선을 모호하게 선택하는 일은 포용성을 높인다. 인간을 넘어서 생명을, 생명을 넘어서 존재를 포괄하는 사랑이 더 포용적이다. 어느 한쪽을 명확하게 선택하는 것이 아닌 '모호함'이 아니라, 어느쪽도 포용할 수 있는 '위대함'이다.

이어령 선생에 따르면 나그네에게 신념은 버려야 할 짐이라고 한다. 신념에 사로잡혀 답이 정해져 있는 사람과 대화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길을 떠난 나그네는 어제와 오늘, 내일이 달라야 한단다. 이 철학이 나와 매우 닮았다. 어떤 상황에서도 분명한 자기 신념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긴 하다. 다만 양쪽 패를 모두 가지고 있으며 상황마다 대처하는 이와, 무조건적으로 변하지 않는 신념을 가지는 것은 다르다. 예전에는 어떤 목표를 가질 때, '배수의 진'을 치곤 했다. 퇴각로 없이 뒤로 물러서면 '죽음' 뿐이다라는 결심은 때로 목표를 강력하게 이루게 하기도 한다. 다만, 언제부턴가 그것이 옳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안 될 수도 있지..뭐..'

항상 플랜B를 가지고 여유있게 상대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렇다. 살다보면 실패할 수도 있다. 실패할리 없다는 생각, 자신의 신념이 잘못될리 없다는 확신에 빠지면 꽤 고통스러운 시간을 갖게 된다.

학교와 책, 스승으로부터 배운 것이라도 모든 것을 의심해보고 이미 알고 있는 내용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것이다.

지구온난화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가져봤다가, 부정적인 시각을 가져본다. 정치에 대해 '진보'적인 생각을 해봤다가, '보수'적인 생각도 해본다. 서로 상충되는 여러가지 주제를 가지고 다양한 생각을 해본다. 그것이 분명 서로 다른 주장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어찌보면 일관적이지 않다. 다만 언제나 일관적이라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다. 순풍이 불 때는 돛을 올렸다가, 역풍이 불면 돛을 내리기도 하는 것이다. 최초에 내린 결단을 바꾸는 것은 상황에 따라, 시간에 따라 달라야 한다. 어떻게 인간은 하늘과 땅 사이에서, 그 둘을 조율하는 중요한 위치가 되는가. 아마 절대적 존재인 '하늘'과 '땅'에 비해 유연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하늘과 땅 중간에서 이 둘을 모두 포용하고 넓게는 횡으로 종으로 포용하며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존재이지 않을까 싶다. 두 눈은 이상을 향해 두고, 두 발은 현실을 향해 두어야 한다고 한다. 하늘과 땅의 적절한 조화로움을 알고 조율할 수 있는 능력은 역시 삶을 지혜롭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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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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