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어찌됐던 1년 뒤에 죽기로 결심한 사람의 이야기다.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잘 하는 것도 없는 작가가 어느날 갑자기 라스베이거스에서 죽기로 작정한다. 작가 하야마 아마리는 파견 사원으로 계약직 일을 하고 있었다. 이뤄 놓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다. 몸무게 70kg에 3평짜리 조그만 방. 29살 여성은 서른이 되는 생일날을 죽기로 작정한다. 그녀의 삶의 목표는 '죽음'이다. 낮에는 평범한 파견직 회사원이고 밤에는 호스티스로 일한다. 주말에는 누드모델을 한다. 그 와중에 얻게 되는 다양한 감정과 생각이 책에 담겼다.
삶이 무한하다는 착각은 누구나 갖는다. 고로 해야 할 말을 못하고 하고 싶은 것을 못하며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기도 한다. 삶의 유한성을 정하면 이 모든 것이 사라진다. 사실 별거 아닌 일이지만 조금의 부끄러움만 감수한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은 얼마든지 많다. 예전 미국 오바마 전 대통령은 '한국'기자들에게 질문의 기회를 주었다. 그 행사의 개최국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재차 미국 대통령이 '한국 기자'에게 질문 발언권을 주려고 해도 아무도 거기에 질문하지 않는다. 실제로 우리는 '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남들에게 간단한 질문도 하지 않고 모르는 것도 잘 묻지 않는다. 이런 사회에서는 질문을 하거나, 조금 큰 소리를 내는 등 '튀는 행동'을 하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용기가 필요하다. 한국과 일본이 이런 면에서 비슷한 정서가 있다. 사소한 것에 큰 용기를 내야 하는 사회구조 속에서 우리는 꽤 정신적 피로를 갖는다. 아마리는 실제로 전형인 일본 여성이었으며 내성적인 편이었다. 그런 그는 자신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겪으며 '죽음'에서 멀어진다.
개인적으로 '일본문화'가 조금 낮설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자신이 하지 못할 일을 해냈다는 용기를 얻는 과정과 직업이 '호스티스'와 '누드모델'이라는 것이다. 작가는 낮에는 '파견직 여사원'에서 밤에는 '호스티스'로 일한다.
'호스티스?'
일본에는 '호스티스'라는 접대문화가 발달됐다. 최저임금을 훨씬 웃도는 급여를 조금 더 쉽고 빠르게 벌 수 있다. 일본 소설을 보면 이 '호스티스'에 관한 이야기가 종종 나오는데, 우리나라 보다는 보편화되고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혔다고 한다.
'호스티스'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나 또한 예전 일화가 하나 생각이 났다. 해외에서 학생비자로 체류하던 기간, 주 40시간을 합법적으로 일을 할 수 있었다. 학비는 고사하고 생활비이나 벌어 볼 요량으로 인터넷 카페를 뒤적거렸다. 일자리는 많지 않았는데, 낮에는 학교를 다녀야 했기 때문에 밤에 일할 수 있는 곳을 찾았기 때문이다. 거기에 흔히 말하는 '꿀알바'가 있었다. 시급은 적지만 자신의 능력에 따라 하루에 2~300불까지 벌수 있다는 구인공고였다. 연락을 드리고 그곳을 찾았다. 만 스물 정도였는데, 도로변에 있는 건물 뒷편으로 또다른 형태의 건물이 나왔다. 그곳 3층으로 갔다. 거기에는 내 또래 젊은 남성과 여성이 보였다. 사장이 안내하는 곳에 도착하자, '노래방 기계'가 있는 곳이 있었다. 그곳에서 면접을 봤다.
사장은 물었다.
"학생, 여기 뭐하는 곳인지 알고 지원했어요?"
사장은 나에 대해서 묻지 않고, 업무에 관해서만 장황하게 설명했다. 업무는 간단하다. 손님이 오면 신나게 같이 놀아주면 된다. 기본급은 7불인데, 잘 하는 친구는 하루 300불까지 가져간다고 말했다. 자세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난생 이런 세계가 있구나.'하고 느낀 날이다. 당연히 그 일은 하지 않았고 '현지 바'에서 '유리잔 닦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다만 그때, 그곳의 상호와 분위기. 그것들이 불현듯 떠올랐다.
죽기로 작정하면 무슨 일을 못할까. 작가 아마리의 생각이 그랬을 것이다. 나는 하지 못했다. 그녀는 호스티스에서 일한다. 죽는 날의 '라스베이거스'를 떠올리며 주말에는 누드모델로 일한다. 그녀의 그런 이중생활에 관한 이야기는 때로는 통쾌하지만 그 목표가 결국 '죽음'이라는 점에서 씁쓸하기도 하다. 하고 싶은 것이 없던 이를 비로소 움직이게 했던 최종 목표가 '죽음'이라는 점에서 더 그렇다. 누드모델이나 호스티스는 하나의 직업이고 법의 테두리에서 일하는 합법적인 일이다.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선뜻 선택하기 힘들다. 생각해보면 삶에는 죽음보다 힘든 것이 있기도 하다. 그런 이유로 누군가는 삶보다 죽음을 택하기도 한다. 다만 따지고 보면 '죽음'보다 힘든 것 조차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죽음'을 벌써 선택할 이유가 없어지기도 한다. 이런 저런 생각이 많이 들게 하는 수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