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잔 세 번째 이야기 1

3-1 서울역 그 미로

by 이세

병원을 나와 계단을 내려가는 병민의 발걸음이 휘청거린다. 반복되는 아찔함을 간신히 내려 누르며 주머니 속에 처방약을 가만히 쥐여보았다. 국보 남대문에서 서울역까지 짧은 구간은 까딱하면 딴 길로 빠져 뱅글뱅글 돌기 십상이다. 병민은 어디로 가야 할지 지금이 몇 시인지 모든 감각을 잊은 채 서울역 지하도 입구를 통해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여전히 그 일대에는 코를 찌르는 지린내를 풍기는 노숙자들이 점처럼 박혀 있었다. 수많은 통로 구멍으로부터 쏟아져오는 인간들을 피해 가며 서울역 14-1번 출구를 나오자 저 멀리 남산타워의 뾰쪽한 침과 양 옆에 우뚝 솟은 으리으리한 건물이 보였다. 그는 무작정 앞만 보고 걸었다.

병민은 검색엔진을 열면 자주 광고가 나오는 국내 대형 보험사의 고객관리부장이다. 기특하게도 큰 아이는 병민의 대학 후배가 되어 야무지게 미래를 준비하고 있고, 둘째는 내년에 수능을 친다. 남은 퇴직까지 2년, 그 뒤면 쉴 수 있었다.

서울역에서 남산 산책로로 이어지는 길 뒤편 후암시장 골목골목을 지나 발길 닿는 대로 걷다 보니 그는 어느새 옛 수도여고 자리를 지나 남영동 뒷골목 초입에 도착해 있었다. 얼큰한 생태탕 냄새를 지나 고소한 스테이크와 부대찌개 끓이는 냄새를 지나왔다. 퇴근 후 바로 정신과에 들러 긴 상담을 마치고 한참을 걸었으니 허기가 져야 할 때였다. 병민은 전혀 배고픔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제 그냥 어딘가 들어가 좀 앉아 있고 싶었다. 골목 끝 후미진 곳에 반짝이는 간판이 보였다.

“달잔”

병민은 입구로 빨려 들어가 듯 계단을 내려갔다. 달잔의 계단 입구는 아까보다 더 좁고 어두웠지만 왜 인지 병민의 정신은 더 또렷해지는 것 같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따뜻한 조명 아래 미소 짓는 사장으로 보이는 여자와 벽 한 켠에서 줄무늬 고양이와 장난을 치고 있는 남자가 보였다. 가게 안에는 그가 한동안 심취했던 재즈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오늘도 정갈한 톤의 혜진이 그를 맞이했다. 약간의 망설임이 일렁이는 눈, 병민은 Bar에 앉았다. 혜진은 주저 없이 병민에게 얼음이 가득 담긴 시원한 물을 내었다. 말없이 놓인 잔을 움켜잡고 흡수하듯 물을 들이켰다.

‘아, 약도 먹어야 하지.’

병민은 메뉴판을 뒤적이는 손을 멈추고 혜진에게 말했다.

“칵테일 하나 추천해 줘요. 오늘은 영 못 고르겠네. 그리고 시원한 물 한잔 더 부탁해요.”

작가의 이전글달잔 두번째 이야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