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아이모 3

혜민아 혜민아 일어나 봐

by 이세

그즈음 선아 이모는 조심스럽게 만나는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이모가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동사무소 옆에 소방서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모보다 2살 어렸고 아직 군대도 다녀오지 않았다고 했다. 검정고시를 마치고 바로 소방서에서 구급차 운전을 하고 있었다. 키가 크고 서글서글하니 훤칠했고 자기 목소리를 크게 내기보다는 조곤조곤한 이모의 말을 가만히 들어주는 편이었다. 이모가 요즘 꼭 끌어안고 있는 워크맨도 그 남자가 월급을 모아 사준 거라고 했다. 거기까지만 들은 엄마는 이미 머리끝까지 열이 올라서는 노발대발 하기 시작했다. 당장 아빠에게 달려가 이모의 말을 이르고는 가만두지 않겠다고 씩씩 거렸다.


"얘 대체 네가 뭐가 모자라서 그런 남자를 만나? 고졸도 기가 차는데 검정고시? 그게 말이나 되니?"


엄마는 거의 뒤로 넘어가기 직전이었다. 외할머니가 엄마에게 대신 맡겨둔 막내딸에게 큰언니로서가 아니라 엄마로서 대신 화내고 있었다. 없는 살림에 간신히 유일하게 서울 명문대로 유학을 보낸 선아 이모가 대학 문턱도 넘지 못한 조건도 변변찮은 남자를 사랑한다는 사실이 믿기 힘들었던 건지 엄마는 아무 말이나 퍼부어대고 있었다.


"군대도 아직 가지 않았다고? 너보다 어린 풋내기에? 너 지금 이게 가당키나 한 상황이니?"

"언니 사람을 봐, 정말 괜찮은 사람이야. 언니가 어떻게 이렇게 말할 수 있어? 언니는 이해할 줄 알았어"


나는 굳게 닫힌 안방문 너머 조용히 귀를 대고 까치발을 든 채, 엄마의 성난 목소리와 간신히 울음을 삼키며 사랑하는 남자의 편을 드는 이모의 목소리를 엿들었다. 그리고는 더 묵직하게 자르는듯한 아빠의 목소리가 나오는 순간 화들짝 놀라 고양이 걸음으로 내방으로 뛰어들어왔다. 두꺼운 솜이불속에 숨어 잠든 척했다. 눈 두 덩이가 시뻘게진 채 돌아온 선아 이모는 이불속에 나를 흔들어 깨웠다.


"혜민아, 혜민아 일어나 봐. 이모 말 좀 들어 봐 봐. 너도 그렇게 생각해? 대학도 안 나온 사람이랑 결혼은 절대 안 되는 거야?"


선아 이모는 12살 꼬맹이에게 대답을 구할 지경으로 간절했다. 그리고 나는 이모를 다른 남자에게 뺏길 수 없었다.


"이모.. 나는... 나는... 어른들 말 듣는 게 좋다고 생각해. 이모가 너무 아까워"


나의 대답에 눈동자도 목소리도 손도 발도 얼어붙은 이모는 그대로 이불을 덮고 아무 말 없이 누워 미동이 없었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