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어 터진 떡볶이, 무너진 성수대교
"혜민아, 혜민아 일어나 봐. 이모 말 좀 들어 봐 봐. 너도 그렇게 생각해? 대학도 안 나온 사람이랑 결혼은 절대 안 되는 거야?"
선아 이모는 12살 꼬맹이에게 대답을 구할 지경으로 간절했다. 그리고 나는 이모를 다른 남자에게 뺏길 수 없었다.
"이모.. 나는... 나는... 어른들 말 듣는 게 좋다고 생각해. 이모가 너무 아까워"
나의 대답에 눈동자도 목소리도 손도 발도 얼어붙은 이모는 그대로 이불을 덮고 아무 말 없이 누워 미동이 없었다. 엄마는 이모에게 일주일간 외출금지를 선언했다. 꼼짝도 못 하고 갇힌 이모는 미라가 된 듯 움직이지 않고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소리 없는 눈물만 흘렸다. 나는 이모가 좋아하는 굴다리 밑 리어카에서 파는 떡볶이를 사 와서 말없이 이모 옆에 두고 나왔다. 한참 뒤에 방에 돌아가 보니 이모가 그렇게 좋아하던 떡볶이는 손도 안 댄 채 퉁퉁 불어 터져 있었다.
성수대교 상판이 무너져 내리듯 우리 집에 무언가도 떨어져 나간 거 같았다. 차가운 며칠이 지나고 이모는 단호한 표정으로 외출을 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날씨였다. 이모의 귀가 시간이 늦어지자 엄마 아빠의 표정도 굳어졌다. 엄마는 곧 잡아올 듯 대문 앞을 서성거렸다. 나는 코끝에 한기를 느끼며 이불속에서 잠이 들락 말락 하고 있었다. 오래된 새시 창문 너머 날카로운 여자 목소리와 한껏 고조된 엄마의 화난 목소리, 그리고 싸우는 듯한 아빠의 고함이 들려오는 듯했다. 몽롱함을 이겨내며 부스스 일어나 앉는 새에 다시금 눈가가 붉은 이모가 단호한 표정으로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이모는 가방을 싸기 시작했다. 뒤따라 들어온 엄마가 이모의 어깨를 잡고 다시 소리 질렀다.
"저거 봐, 저런 놈이랑 저런 놈이랑 결혼을 하겠다고? 너와 결혼하겠다고 우리 집 앞에 와서 언니와 형부 얼굴도 제대로 못 쳐다보고 뒷걸음치며 도망가는 놈이랑? 너 제정신이니?"
"언니 제발 좀 그만해, 사람 잡으려고 그렇게 죽일 듯 노려보고 서 있는 데 누군들 안 도망가고 배겨? 나 더 이상 못 참겠어, 은아 언니네가 있을게"
그날 이모는 우리 곁을 떠났다. 나의 아이의 세상과 어른 세상을 이어주던 다리가 무너져 내렸다.
시간이 조금 더 흘렀다. 어느 날 엄마가 잠든 어린이들을 머리맡에 두고 아빠와 나지막이 대화를 시작했다.
"우리 엄마 참 속도 좋아. 선아 그 결혼 그냥 받아들이셨잖아."
외할머니는 어린 예비 사위를 위해 손수 식사를 차려주시고, 혼수까지 마련했다고 했다.
"그저 우리 딸이랑 오순도순 살면서, 곱게 어여쁘게만 봐주게나"
외할머니는 그렇게 막내딸의 손을 잡아주었다. 엄마는 다시 무심하게 말을 이어갔다.
"그 어린놈의 자식이 말이야, 구급차 몰다가 역주행해서 감옥 가게 되었대. 어린애를 쳤다더라. 군대도 안 간 놈이..."
잠결에 들리는 말이 날카롭게 머릿속을 파고들며 꿈나라의 여행을 망쳐버렸다. 인생의 장난 같은 뜻밖의 사건들은 시간과 사람을 구분하지 않고 찾아왔다. '이영애'처럼 하얗고 날카로운 선의 이모의 얼굴과 불어 터진 시뻘건 떡볶이, 낱장의 피아노 악보들이 회오리처럼 뒤섞이며 어그러지다 어느 순간 정전이 되듯 시커메졌다. 어디에 발을 디뎌야 할지 두리번거리며 방황하고 불안했다. 나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었을까. 나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성수대교가 무너진 그 해, 내 마음속 또 하나의 다리도 그렇게 무너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