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시장 복실이 1

바들바들 떨던 복실이

by 이세

아빠는 늘 청개구리 같았다. 엄마의 부탁은 전혀 듣지 않았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엄마를 뒤로 하고 아빠는 아빠 하고 싶은 건 다했다. 명절 이면 차례상을 차리는 엄마를 아랑곳 안 하고 아빠는 친구들을 불러 카드를 치곤 했고, 개털 알레르기가 있는 엄마와 혜진이는 아랑곳없이 끊임없이 마당에다 개를 키웠다.

그런 아빠의 피를 물려받았는지 나는 털 달린 것들을 너무 좋아했다. 더럽고 털 날린다는 엄마의 푸념석인 악다구니는 늘 내 차지였다. 아빠는 커다란 개를 좋아했다. 아빠의 앨범엔 사진이 귀한 시절 시커먼 셰퍼드와 찍은 꼬맹이 아빠가 있었다. 내가 학교도 들어가기 전 몇 해 동안은 마당 한편을 공병 짝으로 막아두고 송아지만 한 셰퍼드 두 마리를 키웠다. 7살도 되지 않은 내게 그 커다란 개들은 공포였다. 몇 해를 차지하던 그 개들은 어느 핸가 병들어 죽었다 했나 시골 어디 농장으로 보냈다고 했나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 후로 내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는 아빠의 강아지 타령은 잠시 멈췄다.

희한하게도 더럽고 비린내 난다고 너무나 털 달린 동물들을 싫어했던 엄마와 혜진이와는 달리 나는 그 털 달리고 비린내 나는 동물들이 그리도 애틋하고 예뻤다. 따뜻한 덩어리의 몽글한 감촉과 꼭 끌어안을 수 있는 복슬복슬한 털을 나는 진심으로 원했다. 9살 무렵 나는 정말 간절하게 강아지 한 마리만 키우게 해달라고 매일 기도했다. 마치 미취학 남자아이들이 온갖 공룡의 이름을 외우듯 나는 강아지 도감을 하나 손에 얻고는 모든 강아지 종류의 털빛, 크기, 성격적 특징 및 유전병까지 줄줄 외우곤 했다.

키우고 싶은 강아지의 종은 자주 바뀌었지만 9살 여자아이가 키우고 싶을 법한 털이 길고 비싸 보이는 그런 애완견이 키우고 싶은 마음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때는 ‘명탐정 래시’라는 이름의 털이 긴 콜리 종류의 강아지가 출연하는 드라마가 인기였다. 보드라워 보이는 긴 털옷을 입은 래시는 영특하기도 참 뛰어났다. 또 101마리의 달마티안이라는 디즈니 만화도 유행이었는데 쉽게 볼 수 없는 점박이 무늬의 달마티안 강아지도 정말 매력 있었다. 나는 요크셔테리어라는 작은 애완견이 키우고 싶었다. 아니면 누구 귀부인 품에 안겨있을 법한 털이 긴 몰티즈의 머리에 앙증맞은 리본을 매어주며 안고 다니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런 나의 간절함은 그저 나만의 소망일 뿐 엄마도 동생들도 질색하는 애완견이 내 품 안에 안길 리가 만무했다.

강아지 그림이라도 나오는 책을 소중이 끌어안으며 언젠가는 나도 강아지를 키울 수 있을까 꿈꿔 보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어쩌다 집 근처 동물병원이라도 지나가면 그 당시 애완견 분양도 종종 함께 하던 병원에 작은 케이지 안에 꼬물거리는 알록달록한 강아지라도 보일 때면 자리를 뜨지 못하고 한참을 쳐다보고는 했다. 간절함에 때때로 엄마, 아빠에게 우리도 강아지를 키우면 안 되느냐는 볼멘소리도 해보았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매몰차게 이 좁아터진 집에서 사람과 개가 더럽게 복닥거리며 어떻게 사냐고 엄마 죽으면 키우라는 대답이나 하곤 했다. 엄마는 이미 자식들 키우는 것만도 벅차고 지쳐있었다. 엄마의 고단함을 알면서도 나는 늘 소망을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겨울을 막 지나 봄이 올락 말락 하는 날 아빠가 날 불렀다. 아빠 특유의 그 표정이 있었다. 장난기 가득한 그런데 단호한 표정. 엄마에겐 비밀이라고 했다. 난 척하고 알았다. 엄마에게 비밀이지만 나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라면 분명 재미있는 일이다. 나는 아빠의 찰떡콤비가 되어 엄마에게 비밀인 작전을 몇 번 수행한 적이 있다. 갑자기 내 입에도 미소가 번졌다. 허락보다는 용서가 쉽다는 격언을 그 어린 시절 아빠를 통해 직접적으로 겪었다. 그날 아빠는 평상시 타고 다니는 자가용이 아닌 아빠가 일할 때 쓰는 1톤 포터를 꺼내왔다.


“아빠 우리 어디가?”


“모란시장”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