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아이모 2

바빠진 이모

by 이세

"이렇게 하면 오히려 손이 고와진다?"


그 많은 밥그릇과 국그릇들을 이모는 뽀드득 씻어냈다. 학교 갈 때면 잔뜩 엉킨 내 머리칼을 빗겨주고 양 갈래로 예쁘게 땋아주던 것도 늘 선아 이모였다. 나는 이모랑 피아노 치며 노래 부르는 시간들이 참 행복했다. 엄마의 성화로 아무리 피아노 학원을 다녀도 좀처럼 늘지 않는 나와는 달리 이모는 악보만 있으면 척척 샾이 5개나 붙은 곡도 플랫이 4개나 달린 곡도 능숙하게 연주해 냈다. 이모는 늘 '엘리제를 위하여'로 피아노 연주를 시작했고 나와 동생들이 곧잘 따라 부르던 '제이에게'라던지 '일과 이분의 일'같은 가요를 연주해 주었다. 엄마가 큰 고모네서 얻어온 낮은 도 소리가 반음 안 맞는 낡은 피아노로 선아 이모와 우리는 동요도 참 많이 불렀다. 이모랑 젓가락 행진곡도 많이 합을 맞췄다. 마무리는 늘 이모의 손이 현란하게 움직이는 '은파'였다.

일요일 오전이면 엄마와 이모와 목욕탕엘 갔다. 선아 이모는 유독 피부가 하얗고 둥글고 큰 눈과 오뚝한 코에 서양 여배우 같은 턱 선과 입술을 갖고 있었다. 얼굴뿐만 아니라 이모는 몸매도 서양형이었다. 굉장히 글래머러스해서 엄마와 이모는 늘 다이어트와 살 빼는 법을 고민했다. 나는 선아 이모가 너무 좋았다. 이모의 이국적이고 예쁜 얼굴도 좋았고 풍만하고 굴곡진 몸매도 좋았다. 목욕탕에 가면 엄마 대신 내 팔다리 때를 밀어주던 것도 늘 선아 이 이모였다.


"어이구 이 때 봐라 아주 국수가 밀리네"


이모는 늘 나를 놀렸지만 어딜 가든 날 꼭 데리고 다녔다. 슈퍼에 가서 엄마 심부름을 할 때도 시내 서점에 나갈 때도 미용실에 갈 때도 동네 사진관에 가서 증명사진을 찍을 때도 이모는 나를 데려갔다.


"언니랑 동생이 많이 닮았네요"


언니가 아니고 이모라고 말하지 않았다. 닮았다는 소리가 나는 내심 듣기 좋았다. 그렇게 이모는 우리의 큰언니가 되어 서울에서의 4년 대학생활을 차곡차곡 채웠고 나와 동생들도 이모 곁에서 무럭무럭 자랐다.

나의 12살 여름방학이 지나고 9월이 되면서 우리 모두는 각자 바빠졌다. 이모는 대학을 졸업하고 집 근처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나는 나대로 5학년 2학기를 맞이해 바빴다. 혜진이는 지난 학기의 인기에 힘입어 학급 회장이 되었다. 우리 집의 대들보는 유치원에서 대장 노릇을 하느라 피노키오처럼 코가 우쭐했다. 왜인지 선아 이모의 귀가 시간이 자꾸 늦어졌다. 어딜 가던 나를 데리고 가던 이모가 혼자 조용히 나갔다 늦는 날이 많아졌다. 잘 쓰지 않던 일기장을 다시 끄적이더니 서랍 깊숙이 숨겼다. 집에 들어와서도 김건모 2집 테이프가 꽂힌 워크맨만 품에 안고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잠들어 버렸다. 어느 날은 집에 들어오는 이모의 볼이 살짝 발그스름했고 나는 불안했다.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낯선 무언인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10월, 성수대교가 무너졌다. 학교 갔다 돌아오면 켜진 텔레비전 화면에서는 연신 울고 있는 희생자 가족들의 인터뷰가 흘러나왔고 졸업을 앞두었다는 고등학생 언니의 교실 책상 자리에 놓인 하얀 국화가 비쳤다. 귀가 따갑도록 대한민국의 안전불감증에 대해 온갖 매스컴이 성토하고 있었다. 그즈음 선아 이모는 조심스럽게 만나는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