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히도 남편이 엄마의 정서를 담당하고 있다. 나는 진짜가 아닌 가짜 감정을 표출하는 데에 미숙하다. 싫으면 표정에서 100퍼센트 나온다. 싫은데 좋은 척 할 수가 없다. 지금은 엄마와 정서적 독립을 하고 있기 때문에 많이 반항적이다. 사사건건 틱틱거린다. 남편이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화를 낼 때가 있다. 그래서 식탁에 저녁을 차려 놓고 혼자 거실에서 티브이를 본다. 이 핑계, 저 핑계 대고.
오늘도 점심을 안 먹었다고 혼자 식당에서 밥을 먹고 퇴근해 온 남편에게 엄마를 모시고 가서 저녁을 먹게 했다. 내가 계산을 미리 해 두었더니 먹고 들어오면서 언제든 먹어주겠다고 말하며 남편이 장난스레 웃는다. 참 고마운 사람이다. 내 감정을 이해해 주니 다행이다. 누군가 옆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참 난감하다. 관계가 더 나빠질텐데 중간에서 윤활유 역할을 잘 해 준다.
엄마는 딸보다 더 싹싹한 사위와 너무 즐겁게 얘기를 한다. 노인들은 수다를 떨 대상이 대체로 빈곤하기 때문에 누군가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을 만나면 쉬지 않고 이야기를 한다. 앞뒤도 맞지 않는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늘어 놓는다. 같이 장단 맞춰 주는 사람이 있으니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