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연초에 학교를 옮겼다. 학교 사회는 매우 좁아서 한 다리만 건너면 모두 연결되어 있다. 한 학교에서 5년이란 년수제한이 있기 때문에 5년이 되기 전에라도 다른 학교로 옮긴다. 그러다 보니 대충 누구 이름만 되면
'아, 누구'라고 하면서 그에 관한 대략의 리포팅은 할 수 있게 된다. 즉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일종의 평판이란 것인데 그 평판이 사람을 때때로 죽일 수 있다는 걸 다들 아실 것이다. 이상한 성격이라는 둥, 그의 20년 전 이력까지도 완벽히 꿰면서 줄줄줄 외우고 있다. 무성한 소문들로 인해 새로운 하나의 인격체가 탄생되어 있다.
새로 간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부장을 할 것인가, 담임을 할 것인가. 본인의 희망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사이지만 그래도 선택의 여지는 있는가 보다. 요즘은 기피하는 부장 자리도 많아서 자리가 있나 보다. 학년부장은 가장 어려운 부장이다. 학년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를 처리하는 수사반장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년부장을 주저하니까 그럼 담임을 맡을 것 같다는 답변을 듣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나중에 안 결과 담임도 빼 주는 특혜(?)를 입었던 것이다. '이게 웬 횡재냐' 하면서 신나라 했다.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새로운 학교에 가면 무조건 담임을 시키는 고약한 학교 관례가 있는데 횡재를 얻었으니 올해는 운수가 좋으려나 해서 신이 났다.
첫날 교장실에 가서 신입교사들과 인사겸 차 한잔을 하게 되었다. 이때 나에게 어디를 근무했었냐고 물어보았다. 그래서 '00 중학교'라고 하니 그 학교 교감이 자기 집사람이라고 한다. '앗' 그러면 그 교감이란 사람이 나를 좋게 말해 주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둘 간의 충돌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 교감의 얼굴, 말씨, 행동이 아직도 생생하다. 10년이 넘었는데도. 그런 매우 이상한 사람을 첨 봤기 때문이다. 그 사람으로 인해 암까지 걸렸다고 호소하는 교사도 본 적이 있다.
나와의 사연은 이렇다. 그 당시 보충수업이란 게 있었는데 무조건 모든 학생들이 참여하게끔 하는 것에 대해 나는 반대했다. 우리 반 아이들은 거의 안 하고 두어 명 정도 방과 후 수업을 했다. 다른 반 아이들이
'왜 저 반만 집에 가냐'고 자기 반 담임에게 항의했다고 한다.
'그럼 네가 그 반 하지 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데 항상 자율을 내 세우니 그 교감은 내가 정말 미웠을 것이다.
교무회의를 왜 도서실에서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자신의 눈 안에 모든 것이 다 파악되어야 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각 테이블마다 학년 담임들을 앉혔다. 누가 안 왔나 금방 확인이 된다. 아무튼 원탁회의처럼 테이블별로 앉아서 재미있는(?) 회의를 한 것 같다. 내가 손을 들고 뭐라고 하면 뭐라고 답변하다가 답변이 막히면 남아서 얘기하자고 한다. 남아서 어쩌고 저쩌고 각자 자기 말만 한 것 같다. 그러다가 어느 날 신학기 교과서를 분리 작업해서 아이들에게 배부를 하기 위해 박스를 뜯어서 정리를 해야 했다. 그래서 도서실에서 당분간 교무회의를 할 수 없다고 교감에게 얘기를 하니까 '노'라는 답변을 들었다. 참 황당하다. 도서실 관리자는 나이고 교과서 분배도 내가 해야 하고 방학 들어가기 한 달 전에 이 작업을 하지 않으면 아이들이 나오지 않는 방학 때는 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필요에 의해 요청을 하였으나 거절을 당하고 이제 별수 없이 강행해야 함을 알았다. 그래서 박스를 뜯고 작업을 하고 있는데 문을 팍 밀고 들어와서 '하지 말라고 했는데 왜 하느냐'라고 한다. 그래서 '그럼 어디서 작업을 하냐?'라고 하며 서로 언성을 높였다. 교감이 먼저 언성을 높이니까 따라서 높인 것이고 너무 말 같지 않은 말을 하니 답답해서 언성이 올라간 것이다. 아마 그녀와 나는 두고두고 뇌리에 남았을 것이다. 그렇게 교사 대 교사가 싸우는 일은 잘 없기 때문이다.
이 교감이 남편 교장에게 '걔 미친년이야. 사사건건 반대하고.'이렇게 인수인계를 했을 것이다. 그래서 교장은 창피당하지 않으려고 몸조심을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부장, 담임 업무도 빼고 교감 바로 앞에 책상을 마련해 놓고 감시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무리한 지시 전달은 하지 않고 나의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하, 내가 잘못 산 건 아니구나. 나를 왜 무서워하냐. 잘못한 게 없으면'
새로 부임한 행정사한테는 학교 생활이 어떠냐고 친교적 언사를 하면서도 나에겐 말 걸기조차도 하지 않는다. 쪼잔하기는. 직접 부딪혀서 알아보지도 않고 무조건 피하다니. 아니면 자기편으로 만들 배짱도 없으니. 허약한 노인으로 보인다. 그는 나를 투명인간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몇 개월을 지내다가 아주 막무가내는 아닌 걸로 보이니까 몇 마디 말을 붙인다. 물론 형식적인 말들이지만.
예전에는 정말 왕처럼 굴었던 교장, 교감들도 많았다. 요즘은 많이 개선이 되었지만. 이제 그 거대한 꼬리표 왕국을 벗어나니까 기분이 좋다. 내가 학교를 나간다고 하니까 교장이 웃었다. 얼마나 미운 오리 새끼였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