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0일. 그는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가슴이 아파도 말하지 않고 혼자 아팠을 것이다. 숨이 조여들듯 가슴에 압박이 왔을 것이다. 그런데 어떤 자식에게도 말하지 않고 참고 참다가 드디어 호흡이 가빠져서 병원에 가니까 수술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86세의 나이에 심장수술은 대수술이다.
'내 수술 좀 해 도'
그래도 그는 삶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았다. 수술을 하기로 했다. 수술 전날 큰딸인 내가 간이침대에 누워서 잠을 청했다. 연로한 엄마는 집에 가서 쉬시라고 했다. 수술 전날 큰손자가 할아버지를 보러 서울에서 왔다. 아버지는 차마 얼굴을 보지 못 한다. 나와 똑같다. 나도 수술할 때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아들 얼굴을 못 볼 것 같아서 부르지 않았다. 수술을 앞두면 유서라도 쓰고 싶은 심정이 든다. 차가운 수술실에서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감이 말도 못 하게 크다. 나름 대수술인데도 자식을 부르지 않는 어미는 나밖에 없을 것이다. 너무 꽁꽁 싸매서 쥐면 터질까 불면 날아갈까 키운 아들에게 작은 상처조차 주지 않으려고 부르지 않은 건데. 한 편으로는 그런 것도 경험인데라는 생각도 들고. 다시 한번 수술을 한다면 그때는 나도 덜 무서워서 아이들을 부를 수도 있겠다.
큰손자가 병실에 들어오자마자 아버지는 손을 절레절레 흔들며 보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큰손자는 제대로 할아버지 손 잡고 격려, 위로 해 주지도 못 하고 나갔다. 심장수술은 6시간 넘게 걸려서 끝났다. 중환자실에서 마취가 깨면서 간호사들 손을 다 할퀴어놨다. 사지에서 겨우 돌아온 아버지는 그 후 약을 제대로 챙겨 먹지 않는 불성실함으로 인해, 몸을 알뜰히 보살피지 못하다가 갑자기 11월 찬바람에 숨을 거뒀다. 심장마비로.
가장 깨끗한 죽음이 심장마비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다가 한번 주저앉았는데 엄마가 119를 부르지 않고 경비 아저씨를 불러서 집으로 모시고 갔다. 그리고 누워 있는 아버지가 헉 ---헉----고요...
'갔나? 이제 갔나?'이렇게 했단다.
이건 간접살인 아닌가? 적극적인 구호를 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엄마가 밉다. 이해는 간다. 돌아가시기 직전에 병시중이 잦아서 엄마도 극도로 지쳐 있었다. 더 이상 자신도 주체할 수 없어서 타인을 돌보는 게 자신 없었을지도 모른다. 인간은 이기적이니까.
그렇게 엄마의 결단으로 아버지는 집에서 조용히 숨을 거뒀다.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엄마는 그전부터 아버지랑 응급실에 몇 차례 갔을 때 연명치료는 안 한다고 서명했단다. 무조건적인 연명이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병원에 갔더라면..... 그런데 아버지는 병원에서 주사도 안 맞으려고 욕을 하곤 했다. 치매끼도 조금 있었다고 봐야 한다. 약은 먹지 않고 쓰레기통에 몰래 버렸으니까. 혈압약만 착실하게 먹었어도 오래 살았을 것이다.
아버지 제삿날이 오면 엄마는 죽일 놈, 살릴 놈 했던 걸 까먹기라도 한 듯 낭군 보러 묻힌 자리에 가고 싶어 한다. 있을 때 잘해 주지. 매일 줘 박지만 않았지 혀로 매일 때렸다. 둘은 극과 극이라고 보면 된다. 서로가 최악의 상대인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런 엄마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집 한 칸 지니고 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엄마가 아니었다면 우리도 고아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도 요즘 갱년기라 내 몸도 겨우 버티고 있어서 엄마를 보살피는 게 보통 힘든 게 아니다. 이 노노 간병을 어찌해야 할까. 아름답게 죽으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