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너무 많이 먹은 탓에 오천보 달성을 위해 현충사로 달려갔다. 실컷 걷고 나서 분갈이 해 줄 화분이 생각나 화원으로 갔다. 두 달간 꽃을 피우는 호접란도 사고. 흐뭇한 생각만으로 신이 나서 과속으로 갔다. 무늬콩고에 어울릴만한 화분을 고르고 흙을 골랐다. 그런데 적당한 흙이 안 보인다. 계산대 위에 화분과 다육이 흙을 얹었다. 그러고 나서 호접란을 고르러 갔는데 맘에 드는 게 없다. 다시 와서 계산대 앞에 섰다. 아까부터 화분을 계산대에 얹어놓고 나처럼 왔다 갔다 하는 아저씨가 서너 개의 화분 앞에 서서 계산을 기다리고 있다. 난 아저씨 뒤에 서서 주인과 점원이 서로 영수증을 얹어놓고 상의하는 걸 쳐다봤다. 우리 쪽을 바라보라는 듯 - 다육이 흙 말고 다른 흙은 없어요?라고 묻자 주인 여자가 - 흙, 있어요- 라며 한마디 툭 던지고 다시 점원과 영수증을 보며 궁리하고 있다. 뭔가 상의를 해야 하는 일이 있겠지. 가게이니까. 그런데 내 앞에 서 있는 아저씨는 아무 말 없이 대기 중이다. 아, 갑자기. 사고 싶지 않아졌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 지 몰라서. 화분과 흙을 제자리에 갖다 놓고 나가면서 보니까 그제야 점원이 물건 계산을 하고 있다. 몇 초만 기다리면 됐나? 내가 너무 성급한가 라는 생각을 하면서. 근데 내가 다른 흙이 또 있냐고 물었을 때 대기하는 손님이 두 명이나 되면 계산을 먼저 해 주러 오든지, 잠깐만요. 죄송합니다라고 하고 자기들 볼일을 봐야 하는 것 아닐까. 자기들 볼일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게 하는 건 아니지 않나라는 생각에 울컥 나와버린 나.
주인은 우리가 가고 난 다음에 가게일에 열중해도 되는데 굳이 손님 세워놓고 자기들 일을 먼저 처리한다? 이런 것이 순간적으로 거슬렸다. 손님에 대한 배려가 없는 거다. 한 마디만 하면 몇 분은 기다릴 수 있다. -잠깐만요라고 하며 양해의 웃음이란 게 있지. 너의 시간을 배려하는 의미에서의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