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많이 흐리다. 최소 두 달은 입을 봉하고 있으려고 했으나 성급한 탓에 말하고 말았다. 내가 서울에 온 지 4일이 되도록 밥 먹을 때도 별다른 말이 없고 방에서 게임과 인터넷 세상만 오가는 아들을 불러 앉혔다. "3년간 게임만 하던 애가 "우리 엄마는 자식을 믿고 기다려주었다."고 하길래 이제 게임세상에서 벗어나서 자기 길로 갈 줄 알았다."고 운을 뗐다.
- 네가 그 말을 하길래 뭔가 변화가 있을 줄 알았다
이제 방 밖으로 나가야 하지 않겠니?
--그런데 의욕이 없다는 말이 되돌아왔다. 엄마가 마련해 준 집에서 딱히 돈이란 걸 벌어야 할 이유를 못 찾았다고 한다. 진짜 핑계인지 가짜 핑계인지는 모르겠으나. 집 한 칸 있으면 장가라도 보낼 줄 알고 겨우 마련한 그 집에서 똬리를 틀고 게임만 하는 아들을 만들어 냈으니. 항상 계획과는 다른 결과가 주어지는 게 인생인가 보다.
사람 간에 분명히 능력 차이는 있다. 사실 능력치가 많이 평균에서 벗어난 사람도 기를 쓰고 먹고살려고 노력하는데 평균 이상 혹은 최상 능력자인데도 불구하고 방을 벗어나지 못하는 그가 이해되지 않는다. 집 한 칸 있다고 집을 뜯어먹을 것도 아닌데. 무기력한 그를 이해할 수 없다. 남이라면 이해하지 않으면 그만이고 안 보면 그만인데 자식은 그렇게 안 된다는 것. 그래서 나의 주근거지를 벗어나서 지금 아들이 사는 곳으로 온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나의 노후도 막막하다. 계속 질질 끌려다녀야 한다. 그렇다고 포기하고 자를 자신도 없다.
집안에 엄마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에겐 불편할 수 있다. 엄마를 안심시켜 빨리 보내려고 그런 건지는 모르겠으나 오늘은 집 밖으로 나갔다. 갔다 와서 어떤 거짓말을 하더라도 다 받아줄 것이다.
3년 전, 가방을 메고 매일 도서관에 간다더니 피시방에 앉아 있었던 걸 들키자 도망가버렸다. 이제는 다시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기쁘게 맞이할 것이다. 편안했던 자기 울타리에 엄마라는 존재가 떡 하니 버티고 있으니 불편한 집이 되어 버렸다.
며칠 후 요즘 취미로 치던 피아노를 가지고 올 것이다. 10년 정도 엄마와 떨어져서 생활하다가 이제는 같이 살아야 한다. 피아노를 치고 있는 엄마를 보면 무슨 생각이 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