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친구가 퇴근을 하고 집으로 가면서 하소연하는 전화가 걸려왔다. 남자, 여자 둘 다 출근을 해야 하는데 남편은 양복 차려입고 소파에 느긋이 앉아 있다가 여자가 차려놓은 밥상을 받아먹고 나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 국 퍼서 먹으라고 해'라고 했더니 그게 안 된다는 것이다. 왜 안 될까? 오래된 습관이자 나름 완벽주의 탓일까? 경상도 가부장적 분위기 탓이라 말하는데 지금 이 시대에? 나도 30대 때는 에너지도 있고 해서 다 차려 주기도 했으나 시대가 다시 30년 가까이 흐르지 않았나. 그럼 여기에 맞춰도 되는데. 하긴 우리가 젊은 시절 노부부들을 보면 어찌 저리 할마이는 물까지 갖다 주고 할배는 받아만 먹는지 요상한 광경이라 생각했던 것을 지금 우리 나이에도 아직 그러고 있는 집이 많다. 나도 상대방이 나보다 노동강도가 세다고 생각해서 퇴근하고 가서 밥 차리고 도시락까지 싸줬으니. 내 몸이 한계에 다다라 온몸을 벅벅 긁어대면서도. 그래서 더 빨리 퇴직했는지도 모른다. 친구한테 이제 세상도 바꼈으니 아침에 차려주지 말고 다 해 놓은 국 퍼다 먹게 하고 넌 출근 준비하라고 했더니 그게 안 되는게 '자기 문제'라고 했다. 안 된다고 생각하니까 안 되는 거지. 한번 해 보라고 했는데도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남자에게 자기가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걸 은연중 주지시키려는 걸까. 다른 건 안 해도 이것만은 한다라는. 모든 부부간의 일상은 종말을 고했지만 아침밥 혹은 저녁밥은 내가 챙긴다. 그것밖에 할 게 없으니까. 그러면서 속으로 성질내고. '어찌 스스로 밥 챙겨 먹을 생각도 안 하냐고.' 근데 남자가 내가 챙기겠다고 했는데도 관두라고 했단다. 이건 뭔 쏠? 그러니까 겉으로 투정하면서도 그의 손발을 묶어 놓고 내가 주는 대로 먹어라. 난 너를 사육하겠다. 최소한 밥만은. 요런 사육본능이 있는 건 아닐까. 가장 중요한 밥만이라도 내 맘대로 하겠다. 그렇지 않고서야 혼자 퍼 먹겠다는 것도 못 하게 했다니. 사랑이 넘치는 것도 아니고.
뭐, 이해 못 할 구석이 이것뿐만 있는 건 아니다. 나와는 많이 다른 가치관을 갖고 있다. 친구라고 다 비슷한 건 아니고 깊이 들어가 보면 완전히 다른 우물을 파고 있는 이들도 있으니까. 그들은 그들의 세상에 살고 나는 내가 만든 세상에 살고 그렇게 한세월 살다 가는 거지 뭐~